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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성원, 베토벤 속으로 스며들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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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성원, 베토벤 속으로 스며들다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29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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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저음역의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풍부한 울림을 선사하는 현악기 첼로. 담백하고 과장 없는 첼로와 닮은 연주자 양성원(48)이 이끄는 트리오 '오원'이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 앨범을 이달 초 출시했다.

서울(9월8~9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과 부산(14~15일 영화의전당 두레라움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 연주를 성황리에 마친데 이어 12월1~2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베토벤 삶의 고해성사와 같은 첼로 소나타 6곡과 변주곡 9곡 전곡을 완주한다.

 

◆ “베토벤 음악, 좋은 공연 듣는 게 아니라 삶의 소중한 순간 직면하는 것”

베토벤 탐사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양성원을 추석 연휴 직전 여의도의 한 캐주얼 카페테리아에서 만났다. 강단(연세대 음대 교수)과 국내외 무대를 오가는 틈틈이 방송 출연을 하는 일정 중 짬을 낸 그의 얼굴에 빛이 일렁였다. 청중과의 충만한 나눔이 만들어낸 표식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어려움이 다가오고, 어떻게 이겨낼 지가 관건이다. 베토벤은 작품을 남길 때마다 안으로 파고들어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집요하게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투명해짐으로써 복잡한 환경을 이겨냈다. 복합적이면서 순수하다. 고비에 맞닥뜨렸을 때 한 껍질 벗고 성장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 베토벤 곡을 연주했을 때 순수예술의 가치를 절로 깨닫게 된다. 베토벤 연주는 좋은 공연을 ‘듣는 게’ 아니라 삶의 소중한 순간을 ‘직면’하는 것이다.”

양성원과 오랜 음악 친구들인 엠마누엘 슈트로세(피아노), 올리비에 샤를르에(바이올린)는 7년 전 슈베르트 프로젝트를 위해 실내악단 트리오 오원을 결성한 뒤 음악여행을 함께 해오고 있다.

“작곡가의 정수가 남겨진 보물 같은 곡들이 실내악 레퍼토리에 너무나도 많다. 세 사람 모두 워낙 실내악을 좋아한다. 각자의 스케줄을 조정해 만나선 끊임없이 토론하며 소통한다. 궁극적 목표는 균형이다. 이는 곡에 깃든 작곡가의 영혼을 찾아서 전달하기 위해서다. 솔로곡은 본인이 빛나야 한다. 우리 셋 다 청중의 갈채를 받기 위한 플레이는 너무 잘 아는 솔리스트들이다. 하지만 균형을 맞춘다는 건 환호보다 고요함을 만들어내는 거다. 스토리 라인이 이어지게끔 하면, 해석이 뜨고 내가 가라앉으면, 명곡의 혼만 남기고 연주자가 사라지면 청중은 곡에 훨씬 집중한다. 그게 피부로 느껴질 때 희열에 젖게 된다.”

트리오 '오원'의 올리비에 샤를르에(바이올린), 양성원(첼로), 엠마누엘 슈트로세(피아노)

특히 이들이 베토벤에 천착한 이유는 베토벤을 연구함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항상 시대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작품들을 창조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 클래식 음악이 귀족계급의 쾌락을 위해 만들어졌다면, 베토벤은 인류를 위해 작곡했다. 그의 용기에 감동하게 되는 이유다. 양성원과 친구들이 음악을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 음악으로 인도한 가족, 야노스 슈타커 그리고 자유로운 감성의 파리

해외 유력 매체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톤과 뛰어난 선율감각”(英 그라모폰), “웅장한 사운드, 유려하면서 강력한 연주력”(英 선데이 타임스), “넘치는 상상력과 빛나는 테크닉,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음정”(美 워싱턴포스트)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세계가 주목한 1세대 첼리스트 정명화와 조영창, 송영훈·장한나·이상 엔더슨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그는 지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해석과 연주로 한국의 첼로 수준을 입증했다.

그를 음악으로 인도한 것은 가족과 파리, 전설적인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였다. 서너살 무렵 피아노를 시작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접었다. 골목길에서 딱지놀이와 팽이치기를 즐기는 소년의 산만함을 바로잡기 위해 부모님이 첼로 공부를 시켰다. 형(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워낙 월등하게 바이올린을 잘 해서 주어진 게 첼로였다.

바이올린과 달리 첼로를 교습 받을 땐 앉아서 혼나는 게 편했고, 자신의 몸집만한 악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린 꼬마에게 있어 매일 연습하는 것만큼 고독한 게 없으나 참을성 있게 활을 켰다. 그러다 7세 때 관람한 야노스 슈타커 내한공연. 첼로 선율의 강렬함을 일깨운 영웅이 소년 양성원의 삶으로 들어 왔다.

 

서울 은석초등학교를 다니다 11세에 프랑스 초대 문화대사로 부임한 아버지(전 서울대 교수·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를 따라 10대의 10년을 파리에서 보냈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현지에서 음악·문학·미술·체육(태권도·보디빌딩) 등 문화적 자양분을 쑥쑥 흡수했다. 파리 고등음악원에 다니며 수많은 명 공연들을 접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워갔다. 졸업 후엔 야노스 슈타커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 인디애나주립대로 유학을 떠나 슈타커를 사사했다.

“10대 시절엔 클래식 작곡가보다 비틀스가 더 좋았고, 오토바이를 몰며 아바 음악을 이어폰으로 늘 들을 정도로 심취했다. 음악을 전공하면서는 차이코프스키나 라흐마니노프가 베토벤보다 더 위대한 줄 알았다. 점점 성숙해지면서 조용히 다가온 대상이 바흐와 베토벤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끌렸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단계가 있었겠지만. 되돌아보면 파리에서의 10년은 내면에서 자신을 찾는 시기였다.”

◆ “글이나 음악 모두 좋은 문장, 프레이징 찾는 과정”

프로페셔널 연주자로 무대에 서온 지 30년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무대 위에서 느끼는 긴장은 여전하다.

“특히 새로운 도전을 했거나 소중한 곡을 연주했을 땐 떨림이 배가된다. 이 떨림이란 건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과 기대다. 떨림이 있음으로써 나를 둘러싼 겹이 하나씩 벗겨지며 곡들이 피부 안으로 장착되는 듯하다. 예술은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시간이 걸려 조금씩 깊어지는 게 음악이다.”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학교로 향하기 위해 인터뷰를 마감할 무렵, 요즘 유명 작가의 표절 파동 이후 어수선한 문단을 빗대 말을 꺼냈다.

“소설가 윤후명 선생이 최근 ‘글 쓰는 사람들의 최고 위기다. 작가의 중요함을 사회에서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는 말을 하더라. 글은 우리 마음의 번역이지 않나. 역설적으로 나쁜 글이 나올 때 좋은 글을 더욱 열심히 찾게 된다. 글이나 음악이나 모두 좋은 문장, 프레이징을 찾는 과정이다. 더 아름다운 소리 그리고 좋은 삶을 찾는 거라고 본다.”

■ Who’s 양성원? 서울 태생으로 파리 음악원과 인디애나 대학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취득했으며, 명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의 조수를 역임했다. 2006년 올해의 예술상, 2009년 제4회 대원음악연주상, 제1회 객석예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 음대 교수이자 영국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RAM)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페스티벌 ‘오원’ 예술감독이다.

EMI에서 발매된 코다이 데뷔 앨범은 영국 그라모폰지 ‘에디터스 초이스’(2002)와 ‘크리틱스 초이스’(2003)로 선정됐다. 라흐마니노프와 쇼팽의 낭만적 작품집(2002),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집(2005), 베토벤 첼로 소나타와 바리에이션 전곡집(2007), 슈베르트 작품집(2009),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과 둠키 트리오(2010), 프랑스 클라리넷 앙상블 레봉벡과 ‘뮤지컬 게타웨이’(2012)’,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대공’(2013), 브람스 첼로 소나타와 슈만 작품 모음집(2014)을 유니버설/데카 레이블을 통해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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