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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외된 공간에 주목하는 김희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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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외된 공간에 주목하는 김희연 작가
  • 박미례 객원기자
  • 승인 2014.02.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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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박미례 객원기자] 토목건축이 폭주하는 서울 하늘 아래. 늘 우리네 눈 앞엔 진행형의 공사장이 흔하게 펼쳐져 있다. 지어지고 부서지고, 새 것이 되었다가 이내 곧 낡은 것이 된다. 이 도시는 오로지 앞만 보고 전진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때론 콘크리트 바닥에 꽂힌 채 서있는 한 그루의 가로수가 서글퍼 보이기까지 한다.

김희연 작가의 ‘숨죽인 그늘’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새파란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듯 무성한 나무가 정지 상태로 서 있다. 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 없이 방치된 건축물이며 무심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단한 풍경이다. 5년 넘게 성북구 석관동에 살고 있다는 작가를 동네에서 만났다.

▲ 김희연 '정지한 낮'(2012년) Acryl on linen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석관동에서 살게 됐어요. 난생 처음 오래된 주택 골목가에 살아본 거예요."

어릴 적부터 신도시나 아파트에서 생할했다는 작가는 비좁은 옛집들이 자리한 석관동의 느린 환경이 현재의 작업에 큰 영향을 줬다며 말을 이어갔다. "차가 없어서 많이 걸어다녀요, 그래서인지 도시 구석구석이 더욱 눈에 밟히죠."

작가가 거주하는 이 도시를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매만져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신도시보다는 진도시가 저는 좋습니다. 인공과 자연이 침범하듯 침범하지 않는 묘한 어울림이 있어요." 작가가 말한 진도시라는 단어가 귀에 맴돈다. 지고 있는 도시. 낯설고도 익숙한 단어다.

"제가 주목하는 풍경이란 기념비적이거나 역사적인 순간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시간을 살아내며 자연스럽게 이뤄진 공간이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풍경이기도 해요. 제 작업은 망각의 장소를 다시 작업실에서 불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함께 존재하나 잠시 머물고, 빌려쓰다 버려지는 익명의 풍경에 건네는 안부의 인사처럼 들린다. 작가의 말은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한다. 브레송이 말한 예측하고 기다림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은 찰라의 번뜩임이 아니라 그가 긴 시간 바라보고 느꼈기에 본인만이 잘라낼 수 있는 애정 어린 시선의 창일 것이다.

김 작가는 작업실에서 홀로 그림과 마주 앉아 있을수록 화폭에 그려지는 대상에 더욱 애착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림을 제 손으로 그려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고유의 손맛이 담겨 있는 회화의 본성은 그 어떤 최첨단 테크닉도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맛' 같은 거다. 또한 그는 평소 역사물이나 다큐멘터리, 신문 등을 통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하려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동시대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김 작가의 작업실인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다시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읽어봤다. 일상의 진부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풍경들, 우리가 매번 스쳐갈 만큼 무관심하거나 쓰임이 다해 곧 버려질 듯 무기력한 장소들이다. 하지만 사람 한명 보이지 않는 그림 속에서는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난다. 그 곳엔 이야기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귀기울일 수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않을까.

◆ 김희연 작가는?

서울대 동양화과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 졸업. 2012년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선정 작가 및 갤러리현대 윈도우갤러리 전시, 갤러리버튼의 2인전 등 다수의 그룹전 개최. OCI미술관 창작 스튜디오를 거쳐 올해 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작업할 계획이다. 낡은 도시의 한 구석 혹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켜난 사물을 관찰하며 생겨나는 감정을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려낸다. 현실 속 너무나 익숙한 장소, 도시의 소외된 공간을 재주목하는 데 관심이 많다.
 

redfootb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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