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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희, 봉사와 트로트 가수로 '제2의 인생' 시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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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희, 봉사와 트로트 가수로 '제2의 인생' 시작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11.0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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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탤런트 노현희(43)를 만난 날은 ‘2015 대한민국 최고 연예대상’ 시상식이 열린 10월30일 오전이었다.

주최 측인 대한민국음악작사가협회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전국 방방곡곡에서의 활발한 활동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점이 두드러졌다”고 트로트 신인가수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장에 가기 전 삼청동에 들른 그녀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1991년 KBS 공채 탤런트 14기로 데뷔했으니 경력 24년차인 베테랑이 ‘신인상’이다. 동기는 이병헌 손현주 김정난 김호진 등이다. 탤런트이자 뮤지컬배우로 활동했고, 대학로 극단 ‘배우’ 대표의 트로트 가수 변신은 신인상만큼 드라마틱하다.

 

“가수 활동을 오래한 것도 아닌데 얼떨떨해요 음원을 오픈하고 데뷔한 진 얼마 안됐지만 이전부터 봉사활동을 위해 일반 트로트 가수들처럼 각 지역을 순례해 와서 상을 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 20대 시절 숱한 음반제의 거절...마흔 넘어 노래로 우여곡절 밝게 승화

90년대 인기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는 발랄한 명자로 사랑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재능이 많았던 노현희는 KBS2 ‘도전 1000곡’ 왕중왕을 5차례나 차지했고, 황제전 우승까지 했다. 당시 음반 제의가 밀려들었으나 가수 병행을 선택하진 않았었다.

“20대 때는 연기만 하고 싶었고. 결혼도 앞둔 상태라 이런 저런 이유로 피했죠. 이제야 용기를 갖고 시작하게 됐어요. 나이도 마흔이 넘었으니 성인가요라는 게 어렸을 때와는 달리 다가오더라고요. 서민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게 성인가요인데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소화할 수 없었겠죠. 그동안 겪은 우여곡절을 밝게 승화시켜서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시기가 된 듯해요. 꼭 노래를 잘해서 가수를 한다기보다.”

결혼과 이혼, 성형 부작용, 활동 중단 등 힘든 일들을 여러 차례 겪으며 노래로 위안과 희망을 얻어왔다. 노현희에게 음악은 ‘음학’이 아니라 ‘약’이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다닐 때 임종을 앞둔 암환자가 노래를 들려달라고 해서 손을 꼭 잡고 불러준 적이 있음. 말도 안 되게 불렀는데 진심이 통해서인지 덜 아파하시더라고요. 갈망하는 분들한테 원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그게 노래가 아닐까요?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원하시는 것들을 해드렸을 때 그분들이 즐거워한다면 보람이 크죠.”

◆ 90년대부터 봉사활동 시작...‘경로당 아이유’ 별명 생겨

노현희는 젊은 세대를 위한 행사보다는 어른신들 행사에 자주 간다. 노인대학, 노래교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무의탁 노인모임, 노숙자를 위한 무료배식소 ‘토마스의 집’ 등을 다니며 노래와 춤으로 재능기부를 한다. ‘경로당의 아이유’란 별명이 생길 정도로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노현희의 열성팬이 됐다.

그녀의 봉사활동은 역사가 꽤 길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당시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홍성룡 CP가 노현희를 장애인 행사에 자주 초대했던 게 인연이 돼 시작했다. 한때 한국장애인 고용안전협회 홍보대사까지 맡아 시화전, 백일장 사회를 맡고 노래를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에 목소리 재능기부에도 참여했다.

“그런 일을 했을 때 언젠가는 저도 도움을 얻게 되더라고요. 장애인 봉사를 하러갔다가 친해진 사람이 누구를 소개시켜줘서 옥매트 광고를 하는 식으로요.(웃음) 무엇보다 그분들이 저를 필요로 하고 좋아해주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크죠.”

 

지난 2013년 극단 배우를 창단해 기획부터 출연, 홍보까지 도맡아 화제가 됐다. 지난해엔 정기공연 ‘나의 스타에게’를 무대에 올렸다. 인천대, 명지대, 서울예술종합학교, 장안대에서 10년간 겸임교수, 전임교수로 가르쳤던 제자들과 함께 꾸린 극단이다.

“학교에서 연극·뮤지컬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밤새 작업했던 게 극단으로 연결됐어요. 아이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니까 도움이 됐으면 했고, 개인적으로도 무대는 뽑히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서 할 수 있고 현장에서 나를 검증할 수 있잖아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기쁨도 크고요. 공연이 있으면 뭉치고 평소엔 각자 열심히 살아가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죠.”

◆ ‘미대 나온 여자’ 학벌 외모지상주의 일침...세월로 면역력 생겨

지난 8월 세미 트로트 싱글 ‘미대 나온 여자’는 작곡가 한승훈, 노현희와 친분 두터운 작사가 한경혜가 만든 곡으로, 학벌과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자신감을 강조한 노랫말이 특징이다.

“거의 내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경혜 작사가와 밤새 전화통화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냈어요. 이번 곡이 템포가 빠른데다 가사도 많아 트로트 버전 ‘잘못된 만남’이라면 2집은 다함께 손잡은 채 부를 수 있는 편한 노래로 꾸미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마음고생이 남긴 그늘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오래 살아온 자들만이 내뱉을 수 있는 ‘진’ 농담과 긍정의 기운이 툭툭 튀어나올 뿐이다.

“안 좋은 일들이 겹치다보니 회복 탄력성이 생겼어요. 처음에 상처가 나서 빨간약을 바를 때가 가장 아프다가 굳은살이 생기면 무감각해지잖아요. 예전의 저를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변해버린 날 보면 놀라면서 온갖 말을 쏟아내죠. 한땐 울렁증이 생기고 머릿속이 하애졌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라 그래’ ‘보다 보면 익숙해져’ 하면서 꿋꿋이 방송하고, 쿨하게 웃어 넘겨요. 침착해지고 여유가 생긴 건 나이와 세월 덕분인 것 같아요.”

연예인 자살사건이 일어나면 “너 괜찮니?”란 안부 문자가 100통은 와있다고 호탕하게 웃어넘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하루하루다. 골골거리다가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힘이 불끈 솟는다. “무대에서 생을 마감하면 영광스럽겠다”는 그녀의 말이 뻔한 레토릭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배우는 물과 같아야 해요. 와인잔, 뚝배기에 담길 때마다 모양이 변해야 하지만 노래하는 노현희는 배역의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드러내면서 신나게 즐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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