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6) 경기대 황금샅바의 힘 '땀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上)

'34년 역사' 경기대 씨름부…전용체육관 설립으로 찬란한 '최강 전통' 잇는다

2015-04-23     이세영 기자

[300자 Tip!] 경기대학교 씨름부는 올해로 창단 34년을 맞은 씨름 명문이다. 한라장사 12회 우승에 빛나는 김선창을 필두로 2008년과 2012년 천하장사를 차지한 윤정수(동작구청), 한라급 이주용(수원시청), 올해 설날 금강장사에 오른 임태혁(현대코끼리), 이달 보은 한식대회 금강장사를 차지한 최정만(현대코끼리) 등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출중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경기대를 통해 배출되면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 대선배이자 사령탑인 김준태(53) 감독의 빼어난 선수 수급 능력과 학교 측의 아낌없는 지원, 선수들의 남다른 노력이 ‘씨름 명가’ 경기대를 떠받치는 힘이다.

[수원=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경기도 수원 경기대 근처에 위치한 한조씨름체육관에는 선수들의 기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회 우승을 밥 먹듯이 하고 있지만 선수들의 눈빛에서 자만심을 읽을 수 없었다.

자율적인 훈련을 소화하되 선배들을 주축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샅바를 잡는 것부터 시작해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신중하게 기술을 익혔다.

경기대 씨름부가 정상을 지켜오고 있는 비결에는 35년간 한 자리를 지킨 김준태 감독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기대 81학번인 김 감독은 신입생 때 창단된 씨름부의 주장을 맡다 코치를 거쳐 1990년 정식 사령탑이 됐다. 이후 지금까지 25년간 지휘봉을 잡고 있다.

김 감독은 “원래는 졸업 후에 체육교사를 하려 했는데 씨름부 1회 멤버로서 학교에 남는 게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왔다”고 미소를 띠었다.

출발이 좋다. 지난해 11월 전국대학장사 최강전 단체전에서 경남대를 꺾고 우승한 경기대는 지난달 열린 올 시즌 첫 대회 회장기에서도 개인전 강세를 보였다. 비록 단체전에서는 4강에도 들지 못했지만 개인전 7체급 가운데 역사급(100㎏ 이하·이효진)과 용장급(90㎏ 이하·이정훈), 경장급(75㎏ 이하·지대환) 등 3개 체급을 석권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각각 2개, 1개를 땄다.

김준태 감독이 올해 특히 기대하는 선수는 주장 이효진(22)과 장사급(150㎏ 이하) 임진원(22)이다. 이효진은 부상 회복 후 기량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임진원은 지난해 대학씨름최강전에서 최우수선수(MVP)를 받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부상을 털고 회장기 개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효진은 “지난해 네 번째 대회를 치르는 도중 무릎을 다쳐 마음이 아팠지만 이번에 우승해 기분이 좋다”며 “훈련 분위기는 좋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활기가 넘친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 감독은 “이효진은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정신력도 뛰어나다. 앞으로 더 잘 될 선수다”라며 “임진원도 이번 회장기에서는 2위에 그쳤지만 가지고 있는 재능이 많아 롱런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여수공고 재학시절 모래판을 평정한 신입생 고강석(19)은 경기대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꾼다. 그는 “형들로부터 새로운 기술 등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빠른 시간에 내 것으로 만들어서 우승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 김준태 감독의 비범한 스카우트 능력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지요. 학부형 집 앞에 숙소를 잡아놓고 잔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웃음)”

경기대가 명문으로 자리잡은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우수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모은 것이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대한씨름협회 경기위원장을 지낸 김 감독은 초·중·고교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특성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다른 대학 감독들은 대부분 대학부 경기만 보지만 김 감독은 아마추어대회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어린 선수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이것이 그의 비범한 스카우트 능력을 만든 자산이었다.

스카우트 능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김준태 감독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보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학부형들이 그만 시키겠다고 했는데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데려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효진의 경우 울산대 진학이 기정사실화돼 있었음에도 김 감독이 그의 아버지를 수차례 설득한 끝에 경기대로 데려온 케이스다. “학부형들 설득시키면서 마신 소주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웃는 김 감독이다.

◆ 씨름전용체육관 건립, 과감한 투자의 정점을 찍다

경기대가 오랜 시간 명문으로 자리잡은 데는 학교 측의 꾸준한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장학금을 아낌없이 지급하고 있으며 전지훈련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광교 씨름전용체육관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더욱 끌어올릴 전망이다. 2013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염태영 수원시장, 최호준 전 경기대학교 총장이 업무협약(MOU)을 체결함으로써 공사가 이뤄졌다.

경기대 수원캠퍼스 내 위치한 체육관은 지상 2층, 연면적 2000㎡,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씨름전용경기장으로 배구, 농구 등 실내 종목을 병행할 수 있는 이동식 전통 모래경기장이다.

김 감독은 “이전에 있던 씨름경기장이 노후화돼 선수들의 경기력 하락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며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돼 선수들의 사기가 올라 있다”고 웃어보였다.

아울러 경기대는 씨름을 다른 나라에 알리고 교내 씨름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올해로 34년째 씨름-각력 교환경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해를 바꿔 번갈아 대회를 연다.

일본 오키나와현 민속경기인 각력은 일본의 전통종목 스모와는 다르게 씨름과 유사하나, 도복을 입고 허리샅바를 맨 채 경기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 상대의 양 어깨가 바닥에 닿게 해야만 이긴다는 점도 씨름과 다르다.

매년 대회를 치르고 2년마다 한 번 씩 일본에 가야 하는 만큼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학교 측에서 이를 모두 부담하고 있다. 김준태 감독은 “2년에 한 번씩 해외에 씨름을 알리는 기회가 생겨 정말 좋다”며 “선수들도 이 점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상을 지켜야한다는 부담감을 주진 않았다"

운동부를 운영하는 모든 학교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을 중시한다. 경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땀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게 김 감독의 지론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있겠지만 땀의 대가는 반드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노력을 강조합니다. 땀을 흘린 것만큼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주지시킵니다. 아이들의 선배이기도 한 홍성태 코치가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을 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올 시즌에 대비해 제주도에서 실시한 동계 전지훈련에서는 체력과 기술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체력훈련을 했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실전훈련, 오후 8시부터는 웨이트트레이닝 등 야간훈련을 소화했다. 선수들은 야간훈련 이후에도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샅바를 잡았다. 정상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학기 중에도 계속됐다.

오랫동안 정상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하지만 김준태 감독은 그 몫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선수들에게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래판에서 제 실력을 발휘해야 할 선수들이 다른 생각을 한다면 경기력이 떨어지고 팀마저 흔들릴 것입니다. 저는 오로지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끔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연습한대로만 하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면 결과도 잘 나옵니다.(웃음)”

[취재후기]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 선수단의 전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선수와 감독, 학부형, 학교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야 성적도 나아진다는 것이다. 김준태 감독은 “우리 씨름부는 다른 건 몰라도 팀워크가 잘 돼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팀워크란 운동부 주체 간 관계를 의미한다. 감독과 선수, 학부형과 학교, 감독과 학교 등의 관계가 탄탄하게 유지됐기에 오늘날 경기대가 존재한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그 관계의 중심에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믿어주는 신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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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015@sportsq.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