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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인과 명태는 때려서 다스려야 한다' 데라우치 총독의 일제 무단통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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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인과 명태는 때려서 다스려야 한다' 데라우치 총독의 일제 무단통치 조명
  • 안효빈 기자
  • 승인 2019.02.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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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효빈 기자]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다. 3.1운동은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당한 후에도 일제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조선인과 명태는 때려서 다스려야 한다.' 조선총독부는 강제병합 후 식민지 조선을 길들이기 위해 칼과 총, 채찍을 앞세웠다.  

17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조센징은 때려서 다스려라 - 일제 무단통치' 편이 방송된다.

 

'역사저널 그날' 패널 이윤석이 1912년 법제화된 태형령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KBS 제공]

 

1910년 8월 22일 조선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은 한일 강제병합을 체결한다. 병합 체결 후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조선의 완벽한 복종을 위한 조치를 단행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일제 무단통치 아래 시행된 조치들에 대해 조명한다.

1912년 데라우치 총독은 조선 태형령을 법제화한다. 전근대적인 형벌인 태형은 형판에 눕혀 볼기를 때리는 형벌로 죽음에까지도 이르게 할 정도로 매우 잔혹하다. 그러나 이처럼 잔인한 형벌이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처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태형이 부과된 기상천외한 죄목들을 살펴본다.

데라우치는 태형령에 이어 헌병경찰제를 도입한다. 전국에 헌병경찰 기관들이 설치되었으며 헌병경찰은 늘 칼을 차고 다니며 민중의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다. 데라우치는 학교 선생님부터 공무원까지 칼을 차게 해 공포의 일상화를 진행한다. 이와 같이 무력의 형태로 민중을 다스렸던 '일제 무단통치' 시대에 대해 알아본다.

 

조선물산공진회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사진= KBS 제공]

 

이 시기 총독부의 책략을 읽을 수 있는 대규모 행사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홍보하기 위해 경복궁 근정전 상공에서 에어쇼가 펼쳐졌다. 

전각 대부분을 허물고 경복궁에서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는 신문물과 이벤트가 넘쳐나고 116만 명이 관람한 당대 최대의 이벤트였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이러한 빅 이벤트 속 일제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조선 문명화에 대한 선전을 계속하였다. 당시 일제는 쌀 수확량이 늘었다고 선전하였으나 수확된 쌀 대부분이 일본으로 유출되고 조선의 쌀값은 폭등했다. 조선 문명화의 다른 증거인 공립보통학교 수 증가 역시 민족 교육을 방해하기 위한 일제의 수단이었다. 

'문명화'라는 미명 아래 기만적 형태를 보이는 일제는 충격적인 정책을 추가 도입하려 하는데 친일파 이완용마저도 반대한 이 정책에 대해 파헤친다.

화려한 선전 속에 행해진 일제 무단 통치의 민낯은 17일 '역사저널 그날'의 '조센징은 떼려야 한다-일제 무단 통치' 편에서 더욱 자세히 확인 할 수 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누구?

막부시대 말기 스오국(현 일본 중남부 야마구치현)에서 1852년에 태어난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무사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장관 격인 육군대신을 지내던 1910년 3대 한국통감을 겸임했다. 이해 강제병합 이후에는 육군대신을 여전히 겸하면서 초대 조선총독으로 취임했다. 

데라우치는 초대 한국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와 인연이 깊다. 데라우치가 태어난 스오국은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이다. 데라우치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 당한 사건으로 제2대 한국통감 소네 아라스케가 사임하자 후임으로 3대 통감이 됐다. 

데라우치는 헌병에게 경찰권까지 부여한 헌병경찰제도 등을 만들어 식민지 조선을 무단통치했으며 1916년 6월 24일 조선총독을 사임하고, 같은해 10월 19일에는 총리대신이 돼 한국과 중국에서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불명예스럽게 총리직에서 사퇴한 뒤 1년 후인 1919년 11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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