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6 13:40 (월)
[SQ현장] '심판매수' 전북현대 김빠진 징계, 그보다 더 중한 것은?
상태바
[SQ현장] '심판매수' 전북현대 김빠진 징계, 그보다 더 중한 것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9.30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인 일탈로 밝혀진 사건으로 중징계는 애초부터 무리…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얽힌 부패 고리부터 끊어야

[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심판매수' 파문에 휘말렸던 전북 현대의 징계는 결국 '솜방망이'로 끝났다. 

솜방망이라고 했지만 애초부터 이탈리아 세리에A 유벤투스나 지난해 경남FC와 비교하면서 하위리그 강등같은 중징계를 내리기는 무리였다. 구단에서 조직적으로 심판을 매수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지 않은 이상 무거운 징계를 부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30일 오전 상벌위원회를 열어 7시간여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전북 구단에 1억 원의 제재금과 함께 승점 9점 삭감 조치를 내렸다. 

▲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에 참석, 규정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승점 삭감 징계는 곧바로 적용되면서 선두 전북과 2위 FC 서울의 승점차는 14에서 5로 줄었다. 앞으로 6경기씩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FC 서울로서도 역전 우승의 희망은 남아 있게 됐다.

하지만 축구팬들이 느끼는 체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유벤투스는 조직적인 심판 매수와 승부 조작으로 인해 우승 자격이 박탈되고 세리에 B로 강등되는 중징계를 당했다. 경남 구단의 경우 제재금 7000만 원과 함께 승점 10점이 깎였다. 경남 구단의 경우를 놓고도 '솜방망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전북이 받은 징계는 이보다 더 가볍다.

◆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어쩔 수 없는 연맹의 한계

조남돈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장은 전북 구단에 무거운 징계를 내리기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오히려 조 위원장은 사태의 심각성과 전북 구단이 한국축구에 차지하는 위상 등을 고려해 최대한 줄 수 있는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고 주장한다.

조남돈 위원장은 "심판에 대한 금품 제공은 승부조작 여부를 떠나 심판의 인격과 공정성에 대한 공격적 행위"라며 "이는 축구팬들에 대한 배신 행위이고 결국 축구 그 자체에 대한 모멸적 행위이며 반스포츠적인 행위"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조 위원장은 "사안의 규모에서는 전북 구단의 경우는 경남보다 가볍다"며 "그러나 전북이 한국축구에서 차지하는 선도적 위상과 팬들에 대한 심각한 신뢰도 저하 초래, 부적절한 사후 처사 등으로 인해 발생한 높은 비난을 감안해 최대한 줄 수 있는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 조남돈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장이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전북 현대 징계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처럼 팬들이 생각하는 것과 징계 내용에 괴리감이 있는 것은 바로 이번 사건이 개인의 일탈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물론 심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봉이 몇 천만 원 수준인 전북 스카우트 차 모씨가 심판들에게 용돈이라며 500만 원을 줄 수는 없다. 조 위원장도 이를 모르지 않다.

조 위원장은 "전북 구단은 이번 사관과 관련해 심판에게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금품 제공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스카우트의 급여 수준에 비춰볼 때 1회 100만 원은 결코 적지 않으며 그런 적지 않은 금액을 대수롭지 않게 줄 만큼 심판들과 특수하게 가까운 사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심판들에게 돈을 줘야 할 스카우트의 개인적인 사정도 없었고 금품 수수를 한 심판이 이미 경남 구단에서도 부정한 청탁으로 돈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문제는 법원이 구단이 개입했다는 정황 증거를 잡지 못했다는데 있다. 부산지방법원 역시 스카우트 차 모씨에게 실형을 내렸으면서도 정작 전북 구단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법원이나 검찰 모두 전북에는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장이 비자금까지 조성하면서 심판들을 조직적으로 매수한 경남 구단보다 무거운 징계를 내리기는 무리가 따른다. 

유벤투스의 경우 단장이 자기 아들이 설립한 회사까지 개입시켜 조직적으로 심판 매수 공작을 폈고 자기 뜻대로 심판 판정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심판실까지 찾아가 소란을 피웠을 정도로 이탈리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유벤투스와 전북을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운데) 등이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허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연맹의 차후 방지 의지 없다면 아무리 무거운 중징게도 무의미

이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들은 조남돈 위원장을 향해 집중 공격(?)을 가했다. 취재진들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실망감과 함께 징계가 너무 가볍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잊은 것이 있다. 과연 중징계가 능사냐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 조치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무거운 징계를 내려야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한다"는 논리도 있지만 그 어떠한 처벌이라도 범죄를 100% 막아내지 못한다.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역시 연맹의 개선, 개혁 의지다. 팬들이 전북에 대한 중징계를 바랐던 것도 연맹이 부정부패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계만 있고 사후 조치가 없다면 이 또한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역시 아쉬운 것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자세다. 조남돈 위원장의 기자회견에 앞서 연맹은 허정무 부총재 등이 나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직접 머리를 숙였다. 권오갑 총재 명의로 만들어진 사과문에는 심판 쇄신 및 개혁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심판판정의 정확성 제고를 위해 비디오판독 시스템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연맹이 "국제축구연맹(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의 방침에 따른 절차적 문제와 재원 확보 등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 많다"고 밝힌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 많은 문제를 일찌감치 꺼냄으로써 '보여주기식'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자칫 검토만 하고 흐지부지될 위험성도 없지 않다.

▲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운데)가 30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사과문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오히려 이날 기자회견은 허정무 부총재도 나와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어야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앞으로 학연과 지연, 인맥 등 사사로운 정이나 유혹에 얽매이는 폐단을 어떻게 근절시킬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자리가 없었다. 

더 나아가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한국 축구에 만연한 부정부패 문화를 어떻게 척결해나갈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연맹이 발표한 사과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고 상벌위원회도 그 공허함을 메워주지 못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