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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故 최은희 별세...분단의 남과 북, 그리고 미국 망명에도 불꽃처럼 타오른 신상옥-최은희 영화 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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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故 최은희 별세...분단의 남과 북, 그리고 미국 망명에도 불꽃처럼 타오른 신상옥-최은희 영화 예술혼
  • 김주희 기자
  • 승인 2018.04.1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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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주희 기자]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그리고 두 번의 납북과 두 번의 탈출. 반세기 넘게 사랑과 모험의 여정 속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불꽃처럼 살았던 배우 최은희.

16일 향년 92세로 별세한 배우 故 최은희는 생전에 자신의 영화 인생을 “기쁨과 슬픔이 버무려진 참 행복한 삶"이라고 요약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갈 즈음 동갑내기 신상옥 감독을 만나면서 사실혼 관계를 벗고 새로운 동반자를 맞은 최은희의 영화인생은 활짝 피게 됐다. 1954년 결혼한 뒤 신상옥-최은희 페어는 히트작들을 만들어냈다.

신상옥의 영화철학을 담아내는 얼굴이 최은희였다. 신상옥은 생전에 자신의 영화관을 이렇게 요약했다. “다른 장르와 달리 영화는 흥행이 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래서 어렵다. 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하면서 동시에 예술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 ‘관객의 눈높이’라는 것이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많이 낮다. 그러면서도 까다롭고 날카롭다. 금방 싫증내고 변덕도 심하다. 그런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고, 꿈을 주고, 문제의식도 제기해야 하는 것이 영화의 소임이다. 대중과 너무 밀착해서도 안 되고, 너무 앞서가도 곤란하다.”

2006년 4월 세상을 떠난 신상옥 감독은 예술과 흥행의 균형을 잡는 영화철학으로 대중적인 감각과 예술적인 혼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작곡가 길옥윤-가수 패티김 부부 이전에 영화계에서 새로운 커플 협업시대를 개척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신상옥이 300여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최은희는 3분의 1가량에 출연했다.

올드 팬이 아니어도 세인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빨간 마후라’로 공군의 이미지를 끌어올린 한국판 블록버스터로 평가된다.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대사 한마디 없는 사랑을 열연했다. ‘열녀문’에서는 전통적인 여성관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줬다.

1961년 최은희는 라이벌 배우 김지미과 맞붙어 흥행으로 이긴 것은 영화계에 남겨진 전설적인 일화다. 김지미가 주연하고 홍성기 감독이 연출한 ‘춘향전’과 맞붙는 ‘성춘향’은 40만 관객을 끌어모아 압승을 거뒀다.

최은희는 1978년 홍콩에서 강제 납북된 이후 5년 만에 북에서 2년 전 이혼한 신상옥을 다시 만나 영화에 출연, 북한영화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국내 여성 3호 감독으로서 직접 영화도 만들기도 했다. 북에서 재회해 부다페스트 성당에서 반지를 나눠 끼며 재결합한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1986년 오스트리아에서 탈출에 성공, 북한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이후 1999년 미국에서 10년 망명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마지막 영화인생을 불태웠다. 1990년 신상옥이 제작한 ‘마유미’에 최은희가 출연하면서 남과 북에 이어 미국생활에서도 협업을 이어갔다.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고 다시 납북돼 1985년 ‘소금’으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는 영예도 누렸던 배우 최은희.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빈소에서 최은희는 신상옥 영정을 향해 사랑가로 추모했고 12년 뒤 그의 곁으로 떠나갔다.

남과 북의 분단시대를 넘나든 배우 故 최은희. 해방공간부터 분단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가오면서 꽃길을 걷가다 가시밭길로 접어들기도 했지만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신상옥과 함께 이인삼각으로 우리 영화계에 남긴 거대한 발자취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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