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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이슈] 현장과 소통없는 '로컬룰' 홍역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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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이슈] 현장과 소통없는 '로컬룰' 홍역 언제까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4.16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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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23세이하 의무 출전 규정·KBL 외국인선수 제도 등 감독들 반대 목소리…KBO리그 촉진룰은 제도 변경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제가 KBL에서 제일 오래 한 감독인데 원년부터 지금까지 감독자 회의를 수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 뭐 하러 모이냐'는 자조섞인 얘기가 나옵니다. 모든 것은 단장들이 모인 KBL 이사회에서 결정하는데 현장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습니다."

올 시즌 프로농구 통합 우승을 차지한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이 열변을 토했다. 유재학 감독은 지난 15일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서 열린 '외국인 선수 제도와 국제 경쟁력 제고'를 주제로 한 한국 농구 발전 포럼에서 작심한 듯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제도 변경에 현장 지도자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날 포럼이 열린 것은 KBL이 흥행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챔피언결정전 한 경기는 프로야구 중계 일정 때문에 평일 오후 7시에서 오후 5시로 경기 시간이 변경됐다. 팬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KBL은 TV 중계를 맞춰주기 위해 그대로 밀고 나갔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 제도까지 다시 변경하기로 한 것은 팬들은 물론이고 현장 지도자의 비판을 불렀다.

외국인 선수 선발 및 기용 제도처럼 한국 프로 스포츠에는 적지 않은 '로컬룰'이 존재한다. 관중들의 흥미를 끌어 모으면서 인기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보니 규정이 조변석개하고 악법이 되기도 한다. 비단 프로농구뿐 아니라 KBO리그와 K리그에서도 현장과 소통되지 않은 로컬룰이 존재한다. 현장 지도자의 볼멘 소리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이 경기 도중 심판 판정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유재학 감독은 15일 한국 농구 발전 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심판의 자질이 아닌 잦은 판정 제도 및 기준 변경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진=KBL 제공]

◆ 국내 선수 기회 박탈하는 외국인 선수 제도…준비 없이 도입한 판정 기준 오락가락

KBL은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2명을 동시에 출전하는 방안을 재도입하기로 했다. 그동안 외국인 선수 출전 제한 규정이 있어 함지훈(모비스)이나 최부경(서울 SK), 김종규(창원 LG) 등 빅맨이 성장하고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 2명의 외국인 선수가 동시에 선다면 국내 선수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물론 두 쿼터에 제한한다고 하지만 외국인 선수에 대한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외국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은 맨발로 193cm 이하인 선수를 뽑도록 했다. 이른바 신장 규정의 부활이다. 외국인 선수의 화려한 개인기를 통해 KBL의 인기를 끌어올리겠다는 방안이다.

발상은 김영기 KBL 총재에서 나왔지만 제도 도입을 수용하고 결정하는 것은 10개 구단 단장들이 모인 KBL 이사회다. 만약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거부하면 그만이지만 KBL 이사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KBL 이사회는 또 공청회 등을 통해 여러 의견을 듣지도 않고 결정했다. 10명의 단장에 의해 KBL의 모든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통이고 일방통행이다.

이에 대해 유재학 감독은 "외국인 선수 선발만 보더라도 자유계약으로 했다가 드래프트로 했다가 자주 바뀐다. 드래프트로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몇몇 단장님들이 모여서 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농구가 잘 나갈 수 있는 것을 막았다"며 "회의실에서 몇몇 분들이 낸 결정이 한국 농구를 이끌어왔다. 사외이사 제도를 두거나 이사회 회의 내용을 대중에 모두 공개하는 야구처럼 KBL도 공개할 의향은 없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KBL 경기 이사를 지냈던 김동광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단장들이 감독과 이사회 회의 내용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소통이 안된다"며 "단장들이 감독들과 자주 만나 대화로 소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KBL이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변경하면서 리카르도 포웰 등 기존 외국인 선수들이 소속팀과 재계약하지 못했다. [사진=KBL 제공]

이번 시즌 뜨거운 감자였던 U1 파울에 대한 판정도 주먹구구식으로 변경하다보니 현장에서 혼란을 겪은 경우다. 속공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서둘러 바꾸다보니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취지까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 팬들을 끌어모으는 농구를 하겠다며 기존 로컬룰 대신 국제농구연맹(FIBA)룰을 도입하고 속공 파울인 U1 파울을 신설했다. 하지만 너무 서둘러 바꾸다보니 심판은 물론이고 현장 지도자들까지 이해가 부족해 판정 기준이 뒤죽박죽이 됐다.

유재학 감독은 "사실 KBL 심판들의 수준은 떨어지지 않는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시즌마다 새로운 규정이 최소 1개씩 생긴다는 것"이라며 "심판들이 적응할만 하면 규정이 바뀐다. 새로운 규정에 대한 실수가 나오면 심판이 감수해야 하는 손해가 크다고 들었는데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다.

◆ 다른 나라에는 없는 K리그만의 23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3년부터 23세 이하 선수를 출전 엔트리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도록 했다. 2013년 23세 이하 선수를 엔트리에 1명 포함시키도록 한 것에서 시작해 지난해는 엔트리 2명 등록으로 확대했다.

올시즌은 더욱 확대됐다. 엔트리 2명 등록에 1명을 무조건 선발 출전하도록 했다. 또 K리그 클래식은 23세 이하로 그대로 유지하고 K리그 챌린지는 22세 이하로 변경했다. 특히 23세 이하 선수가 1명만 들어가면 교체카드를 2장으로 하고 1명도 없으면 교체카드를 1장으로 하기로 했다. 23세 선수들이 올림픽 예선 등의 이유로 대표팀에 차출되는 경우는 예외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이 제도를 시행한 것은 아시안게임 또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연령대 선수들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어린 선수들도 K리그 클래식 또는 챌린지에서 출전 기회를 정상적으로 잡을 수 있게 됐다.

▲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올 시즌부터 엔트리에 K리그 클래식은 23세 이하, K리그 챌린지는 22세 이하의 선수를 2명 넣고 1명은 선발 출전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감독들은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사진은 성남FC의 23세 이하 선수인 황의조. [사진=스포츠Q DB]

하지만 이는 역차별의 소지가 있다. 감독들이 그동안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을 엔트리에 넣지 않은 것은 해당 선수의 경쟁력 때문이었다. 어리더라도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에서 뛸만한 경기력을 갖고 있는 선수라면 구태여 이런 규정을 만들 필요도 없다.

이에 대해 김학범 성남FC 감독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들어갈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준다고 하는데 지금 23세 선수들은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 다른 나라에도 없는 의무 출전 규정으로 K리그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된다"며 "실제로 중국 리그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같은 제도를 시행했었는데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고 밝혔다.

남기일 광주FC 감독도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유망주가 있으면 키우는 것도 맞다. 하지만 23세 이하 선수를 꼭 넣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특히 시민구단의 경우 선수층이 얇고 전력도 떨어지는데 여기에 23세 이하 선수를 반드시 선발로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다. 시민구단뿐 아니라 기업구단 감독들도 이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최진한 부천FC 감독도 "22세 이하 선수들은 팀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조직력에 융화되기가 쉽지 않다. 선수 한 명이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라며 "물론 큰 틀에서는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것이 맞다고 보여지지만 다른 방법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다른 나라에는 없는 K리그의 '로컬룰'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지난 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홈 그론(home grown) 우대 정책을 비판하면서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경기 출전 선수 명단에 21세 이하 선수 3명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도록 했는데 결국 이들은 만년 서브로 머물러야 했다"며 "인위적인 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어린 선수들이 경기에 뛸 수 있는 별도 리그를 만들거나 그런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서 지난 15일 열린 한국 농구 발전 포럼에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채 각종 제도를 변경하는 등 불통과 일방통행식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사진=스포츠Q DB]

◆ 타석 벗어나면 자동 스트라이크, 촉진룰 변경한 KBO리그

KBO리그도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촉진룰 때문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타자가 타석을 벗어나면 스트라이크 하나를 더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2스트라이크의 긴박한 상황에서 타자가 무심코 타석을 벗어났다가 삼진을 당하는 사례가 시범경기에서 여럿 있었다.

타자가 타석에서 자주 벗어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야규 규칙상 타자는 타석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릴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규정이 현장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은 스트라이크 하나를 올리는 페널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양상문 LG 감독은 "타석을 벗어나면 곧바로 스트라이크를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장과 충분한 의소 소통 없이 만들어진 것인만큼 감독자 회의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말했고 김성근 한화 감독도 "야구가 재미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야구위원회는 스트라이크 대신 벌금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여자프로농구와 배구에서도 현장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로컬룰이 있었다. 여자프로농구의 경우 덩크슛을 하면 3점으로 인정한다는 로컬룰을 운영했다가 아무도 시도하지 않자 사라졌다. 심지어 볼 거리를 제공한다며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쫄쫄이 유니폼을 입히기도 했다. V리그도 백어택 공격에 대해 2점을 줬다가 선수들이 백어택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향후 제도를 변경하려고 한다면 공청회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와 팬들의 의견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소수만이 모이는 이사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행 구조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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