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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믹스더블 '화산듀오' 박정화-김산, 비실업팀의 절박함 [SQ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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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믹스더블 '화산듀오' 박정화-김산, 비실업팀의 절박함 [SQ인터뷰]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2.2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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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진짜 오로지 컬링이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있다.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박정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노력했으면 했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김산)

지난해 12월 모든 컬링인들의 꿈과 같았던 코리아컬링리그가 마침내 출범했다. 대회 개막에 앞서 주목받은 건 여자부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팀킴’ 경북체육회, 현 국가대표 ‘컬스데이’ 경기도청, 전 국가대표 ‘팀민지’ 춘천시청이 모두 참가하기 때문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 외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종목은 믹스더블. 경북체육회B의 송유진이 수려한 외모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큰 인기를 얻었고, 그 파트너 전재익까지 스타덤에 올랐다. 둘은 2019~2020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그야말로 코리아컬링리그 첫 시즌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른바 ‘송송커플’은 지난 18일 의정부컬링경기장에서 열린 제10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결승에서는 웃지 못했다. 

그들을 물리친 건 박정화(27)-김산(27), 두 스물일곱 동갑내기로 구성된 경기도컬링경기연맹이었다. ‘화산듀오’로 불리는 두 사람은 ‘비실업팀’의 간절함을 안고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빙판에 서고 있다. 스포츠Q(큐)는 이 둘의 절박함에 주목했다. 누구보다 컬링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정화(왼쪽)와 김산으로 구성된 경기도컬링경기연맹 믹스더블 팀 '화산듀오'가 전국동계체전에서 송유진-전재익(경북체육회B)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사진=김산 본인 제공]

◆ 전국체전 우승의 의미, ‘화산듀오’ 생명연장?

박정화-김산은 7엔드까지 5-7로 끌려갔지만 마지막 8엔드에 3점을 따내면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두 사람이 전국동계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13년 만이다. 박정화는 회룡중 2학년, 김산은 의정부중 3학년이던 2007년 중등부에서 각각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고, 두 사람은 이제 한 팀으로 또 다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김산은 “13년 만에 딴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내가 8월에 전역하고 8월 말부터 (박)정화와 함께했으니 팀을 결성한지 반년 밖에 안됐다. 전국체전에 앞서 두 차례 대회에 나갔는데 모두 예선 탈락했다. 코치가 없어 둘이서만 훈련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왔다. 우리 둘이 열심히 한 결과가 나와서 좋았다. 주니어 국가대표 시절 우승했던 것보다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박정화 역시 마찬가지. “생각했던 것보다 성적이 안 나왔었다. 체전 우승이 아니었으면 국가대표선발전에 나갈 포인트가 부족했다.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면 안 되는 상황,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갔던 대회였다”며 맥락을 같이 했다. 

다가오는 5월 경 개최될 대표선발전에는 현 대표(경북체육회A) 포함 8개 팀이 나설 수 있다. 일반부 5개, 고등부 3개 팀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대표선발전에 나서기 위한 포인트를 충족했으니 자연스레 화산듀오의 시즌이 연장된 셈이다. 

또 코리아컬링리그에서 4승 4패(슛아웃 1승 1패)로 5승 3패(슛아웃 1패)의 경북체육회A에 이은 3위로 플레이오프(PO)행 막차를 탄 화산듀오가 24일부터 시작될 PO(3판 2선승제)를 앞두고 자신감을 충전해 고무적이기도 하다.

15년 지기 김산(왼쪽)과 박정화는 이제 한 팀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산 본인 제공]

◆ 15년 지기, 화산듀오로 다시 태어나다

두 사람의 우승이 놀라운 것은 팀으로 호흡을 맞춘 지 6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속팀이 없었던 박정화와 컬링을 접으려 했던 김산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의기투합했고, 시즌 후반부 연속해서 극적인 결과를 내고 있어 흥미롭다.

박정화는 2016년 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몸 담았던 춘천시청과 계약이 끝난 뒤 1년가량 운동을 쉬고 강습을 하면서 지냈다. 김산이 전역하기 전 믹스더블로 전향해 다른 파트너와 대표선발전에 나갔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김산은 중학교 2학년, 박정화는 중학교 1학년이던 봄 나란히 컬링을 시작했다. 당시 경기도권 컬링 팀들은 주로 태릉에서 함께 훈련할 때가 많았다. 둘은 각각 컬링명문 의정부고, 송현고로 진학하면서 더 친해졌고, 알고 지낸지 어느덧 15년 가까이 됐다. 두 사람 모두 컬링을 내려놓으려던 때 주변의 권유로 팀을 결성했다.

박정화는 “(김)산이 오빠가 군대에 있을 때 얼음을 아예 타지 않아서 감각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또 4인조에서 믹스더블로 넘어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도 했다. 오빠가 휴가 나왔을 때 진지한 대화를 나눈 후 마음을 잡았고, 전역한 뒤 바로 훈련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산 역시 “입대 전까지 경기도연맹에서 4인조로 컬링을 했다. 컬링을 내려놓는다는 심정으로 군대에 갔고, 일부러 컬링을 피하기도 하면서 컬링 생각을 많이 안 했다”며 “주변에서 엮어주고, 조언해준 덕에 (박정화를 만나) 잘 풀린 것 같다”고 돌아봤다.  

‘화산듀오’라는 별명은 본인들이 직접 만들었다. 김산은 “MBC스포츠플러스에서 팀 별칭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고민을 했다. ‘화산 폭발’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리그를 치르며 ‘화산’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전국동계체전에서 화산처럼 경기력을 폭발시켰다. 이제는 PO와 대표선발전에서 재폭발을 준비하고 있다.

TV 중계를 타다보니 박정화는 인기 캐릭터 ‘꼬부기’를 닮았다는 이유로 제법 인기를 얻고 있다. 기자가 이야기를 꺼내자 박정화는 “부끄럽다. 인스타 팔로워가 조금 늘어나기는 했다”며 민망해했다.

컬링을 내려놓으려 했던 김산(사진)은 주변의 권유로 박정화와 팀을 결성했다. [사진=김산 본인 제공]
박정화(사진)는 김산에게, 김산은 박정화에게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사진=김산 본인 제공]

◆ ‘장난기 가득’ 화산듀오, 컬링만큼은 진지하다 

박정화-김산은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 공개됐다. 막역한 사이답게 서로를 편하게 대하고, 스스럼없이 장난도 많이 치지만 빙판 위에만 서면 컬링에 대한 진지함으로 똘똘 뭉치는 두 사람이다. 

박정화는 “우리는 진짜 오로지 컬링이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둘만 똘똘 뭉쳐 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력이 남다르다. 목표 하나로 뭉친 팀이라는 간절함이 있다. 알고 지냈던 것도 크고, 컬링에 임하는 자세가 잘 맞아 좋은 원동력이 된다. 팀워크가 좋다”고 자평했다.

김산은 “지도자의 부재가 아쉽다. 우리끼리 하는 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연맹에서 급여를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우리를 지도해줄 수 있는 코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끼리 해야 하는 상황이니 그런 점이 보완됐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컬링경기연맹은 실업팀이 아니다. 급여가 없으니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 신분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이다. 경북체육회 임명섭 코치 같은 전문 지도자도 없고, 지원도 실업팀에 비하면 열악할 수밖에 없다. 훈련도, 경기도 둘이서만 치러내고 있으니 서로가 더 애틋한 건 당연지사.

김산은 “(정화가) 나보다 동생인데, 누나처럼 잘 챙겨준다. 내가 덜렁거리고 어리바리한 면이 있는데 잘 잡아주고, 커버해주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누나 같은 동생”이라며  파트너에 대한 고마움울 감추지 않았다.

박정화 역시 “(김)산이 오빠는 컬링에 임하는 자세에서 배울 점이 많다. 밖에서는 엄청 티격태격하지만 운동할 때만큼은 정말 진지하다. 서로 하는 이야기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충고를 기분 나빠하지 않고 들어준다. 잘 됐던 점이나 문제점을 꼭 언급하고 넘어간다”며 “김산 오빠는 끝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함께 하면서 전술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있다. 컬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컬링에서 만큼은 냉정할 때 냉정하니,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말로 화답했다.

'화산듀오' 박정화-김산 조는 매 경기, 매 대회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김산 본인 제공]

◆ 실업팀과는 다른 상황, 간절함 넘어 절박한 두 사람

연맹에서는 최소한의 훈련비와 대회에 출전할 때 필요한 숙식비용만 지원한다. 실업팀과 달리 따로 급여는 없다. 박정화의 말을 빌리자면 ‘소속이 없는 상황에서 소속을 빌렸다’고도 볼 수 있다. 준 실업팀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니 화산듀오는 다른 팀들보다 배로 간절하고, 절박하다고 강조한다.

두 사람은 동계체전에서 우승한 바로 이튿날 강릉으로 3일간 자체 전지훈련을 떠났다. 당연히 사비로 움직였다. 3판 2선승제인 코리아컬링리그 PO에서는 한 판만 져도 결승행이 좌절된다. 이후 대표선발전까지 마땅한 대회가 없으니 이 기회를 쉽게 놓칠 수 없다는 각오다. 

박정화는 “코로나19 때문에 의정부 훈련장을 쓸 수 없어 강릉에서 훈련하고 있다. 태릉은 체전 전에 훈련했었는데 빙질이 좋지 않았다. 컬링은 빙질에 예민한 종목이다 보니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PO는 한 번만 져도 끝이니 사비를 들여서라도 가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했다.

김산의 메신저 프로필 상태명은 ‘봄 컬링’이다. 프로농·배구에서 포스트시즌을 ‘봄 농구’, ‘봄 배구’라 일컫는다.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김산은 “봄 컬링에 진출했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리그 최종전을 치렀을 때 자력진출에 실패했다. 시립대(4위)의 마지막 경기를 손 벌벌 떨면서 봤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갔으니 잘하자는 의미에서 썼다”고 부연했다. 박정화의 프로필 사진 역시 컬링하는 사진이다. 

실업팀에 계약된 선수가 아니다보니 매 대회, 매 경기가 화산듀오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다. 리그에서 예선 탈락하고, 전국체전에서도 입상하지 못했다면 화산듀오는 올 시즌을 마감한 선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상 팀 해체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박정화는 “실업팀이 아니라 당연히 앞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많은 팀이다. 좋은 성적을 내서 우리가 실업팀으로 재편되거나 각자 러브콜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대표 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포인트를 획득함으로써 5월까지 시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남은 일정들 또한 마지막이 될 수 있다. 매 시합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 팀이 오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우리가 팀으로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성적밖에 없다. 노출이 되려면 꾸준히 성적을 내야 한다. 모든 기회가 다 마지막 기회라 목표는 우승일 수밖에 없다. 두 달 정말 미친 듯이 훈련에 매진해 대표가 돼서 팀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에 체전 우승의 기쁨도 뒤로 하고 곧장 사비로 전지훈련까지 온 것이다. 팀을 이어나가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고 했다. 

화산듀오가 올 시즌 끝에 웃을 수 있을까. [사진=김산 본인 제공]

김산 역시 남은 두 달이 두 사람의 컬링 인생을 좌우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다. “(박)정화가 말했듯 우리가 주목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화랑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노력했으면 더 노력했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맹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리그나 대표선발전 모두 확실하게 잡아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힘줬다.

컬링 팬이라면 박정화와 김산 ‘화산듀오’의 올 시즌 남은 두 달을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 벼랑 끝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그들이 보여준 지난 6개월의 괄목상대는 다음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하기 충분했다. 여기에 간절함이 더해졌으니 두 사람이 올 시즌을 마치며 어떤 결과를 맞닥뜨릴지 시선이 모아진다.

경기도컬링경기연맹과 경북체육회A의 2019~2020 코리아컬링리그 믹스더블 플레이오프 1차전은 24일 오후 6시 의정부컬링장에서 열리며, MBC스포츠플러스가 생중계한다. 화산듀오가 1차전 승리하면 2차전은 25일 오후 9시 펼쳐진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관중 없이 진행되니 중계로만 경기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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