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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성남FC-수원FC '깃발더비'의 외침, 스토리가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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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성남FC-수원FC '깃발더비'의 외침, 스토리가 차이를 만든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3.18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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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도 도발도 OK! 구단주 '설전'에 단숨에 빅매치 부상...미국 닮아가는 한국의 스포츠 환경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깃발라시코’가 핫이슈다. 19일 오후 3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는 성남FC와 수원FC간의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2라운드가 열린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키며 클래식으로 승격한 수원FC의 첫 홈경기다.

“축구팬들이 이긴 팀 시청 깃발을 진 팀 시청 건물에 거는 내기를 하자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성남FC 구단주 이재명(52) 성남시장은 지난 5일 트위터로 수원FC를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이에 수원FC 구단주 염태영(56) 수원시장은 “첫 내기이니 시청기보다는 구단기로 하자”고 응수했다. 이름하여 ‘깃발 더비’가 성사된 것이다.

▲ 성남은 깃발라시코를 사흘 앞둔 지난 16일 단합대회를 열고 필승을 다짐했다. [사진=성남FC 제공]

각오들이 대단하다. 성남은 지난 16일 한 식당에서 단합대회를 가졌다. 이 구단주는 “장난이 아니게 됐다. 축구팬들의 관심이 많아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재미있게 즐기며 최선을 다해달라”고 선수단을 격려했다. 염 시장은 “새로 만든 수원FC 구단기를 이번 기회에 성남 운동장 게양대로 바람 쐬러 나들이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선전을 당부했다.

수뇌부가 깊은 애정을 갖고 팀을 보듬는 광경. 얼마나 보기 좋은가. 정치인의 포퓰리즘일 지라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경부고속도로가 동서로 가르는 두 시민구단 성남FC와 수원FC의 대결은 ‘깃발’이라는 스토리를 입은 순간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슈퍼매치에 버금가는 미디어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런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이계진 전 국회의원은 2008년 자신의 지역구 원주 연고의 농구팀 동부 프로미와 서울 삼성 썬더스 간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30만 인구의 원주가 1000만 서울을 상대로 화끈하게 이긴다는 것을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향해 치악산 한우 내기를 제안했다.

▲ 수원FC는 클래식 첫 홈경기에서 성남을 잡아 구단기를 성남 운동장 게양대로 나들이 보내겠다는 각오로 싸운다. [사진=수원FC 제공]

얼마 전에는 부산 kt 소닉붐의 임종택 단장과 창원 LG 세이커스의 김완태 단장이 페이스북으로 유쾌한 설전을 벌였다. 양팀은 지난달 5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프로농구 정규리그 통산 5000번째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임 단장이 “존경하는 김완태 LG 단장님. 이기는 팀 단장이 술 한 잔 사는 걸로 5000번째 승리를 축하해 주는 걸로 해볼까요? 제가 부산 자갈치에서 한 잔 사고 싶은데요”라고 도발하자 김 단장이 “존경하는 임종택 kt 단장님. 재미있는 도전에 감사를 합니다만, 제가 자갈치 술 살만한 돈이 없어 내기는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대신, 부산 홈팬 앞에서 곤혹스러워 하실 단장님을 무슨 말로 위로해 드려야 할지와 LG 세이커스의 승리를 어떻게 자축해야 할지를 저희 창원 팬들과 상의하겠습니다. ㅎㅎㅎ”라고 맞받아쳤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장, 주지사, 대통령이 스포츠 내기로 대중의 흥미를 끈다.

▲ 뉴욕 시장은 메츠가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캔자스시티에 패하자 로열스 유니폼을 입고 발레학교에서 노래를 불렀다. [사진=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 트위터 캡처]

지난해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와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붙어 뉴욕 빌 더블라지오 시장과 캔자스시티 슬리 제임스 시장이 독특한 내기를 했다. 진 팀 시장이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발레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한 것. 메츠가 패했고 더블라지오 시장은 인증샷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맥주를 걸고 결과 내기를 했다. 미국과 잉글랜드가 1-1로 비기자 두 정상은 그해 G20 정상회의서 맥주를 교환해 마셨다.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단장. 근엄한 이미지로만 여겨지던 ‘어르신’들이 센스로 무장해 이슈를 만들자 스포츠산업이 한결 풍성해진 것 같지 않은가. 미국이 스포츠 천국이 된 이유가 스토리텔링이란 사실을 기억하자. 타 종목, 타 구단, 타 단체의 높으신 분들도 ‘깃발라시코’ 못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준다면 그것이 스포츠의 문화와 산업을 동시에 풍요롭게 만드는 기폭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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