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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맏언니 임영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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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맏언니 임영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2.24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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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서 이적 후 뒤늦게 찾아온 전성기…2012~2013 시즌 이후 2년만에 MVP 도전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어떤 종목이든 우승을 차지하거나 최강으로 꼽히는 팀에는 동료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레알 마드리드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0)가 있고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어낸 한국 축구대표팀에는 기성용(26·스완지 시티)이 있었다.

여자프로농구(WKBL) 정규리그 3연패를 달성한 춘천 우리은행에도 당연히 중심 리더가 있다. 바로 '맏언니' 임영희(35)다. 여자프로농구 무대에 30대 중반까지 뛰는 선수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임영희는 우리은행에서 특별한 존재다.

우리은행이 23일 춘천호반체육관에서 열린 KB국민은행 2014~2015 여자프로농구 홈경기에서 구리 KDB생명을 꺾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임영희는 다시 한번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는 표정을 지었다.

임영희는 우리은행뿐 아니라 WKBL에서 특별한 선수다. 스타급 선수라면 20대 초반, 늦어도 중반부터 빛을 보기 시작해 에이스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임영희는 빛을 보지 못한 기간이 너무나 길었다. '무명'으로 보낸 기간이 길었던 만큼 임영희가 자신의 현역 후반기에 보여주고 있는 활약은 더욱 빛난다.

▲ 임영희(오른쪽에서 세번째)는 정규리그 3연패를 달성한 춘천 우리은행의 중심이다. 오랜 무명을 거쳐 우리은행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임영희는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를 만나면서 늦깎이 스타로 거듭났다. [사진=WKBL 제공]

◆ 10년의 무명 생활이 진국 선수로 만들다

마산여고 시절 동갑 친구 신정자(인천 신한은행)과 함께 팀을 이끌었던 임영희가 WKBL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99년 여름리그였다. 당시 광주광역시에 연고지를 두고 있었던 신세계(현 부천 하나외환)였다.

신인으로서 임영희는 그다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1999년 여름리그에서 8경기에 나와 평균 12분16초를 뛰면서 1.88득점에 그쳤다. 당시만 해도 장선형이나 이언주 등 쟁쟁한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인으로서 그러려니 했다.

그가 비로소 신세계의 주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2003년 겨울리그였다. 평균 33분17초를 뛰면서 5.90득점을 기록했다. 당시 커리어 하이였다. 이때부터 비로소 무명을 벗어나 팀내 주전이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임영희는 진정한 팀내 주전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03년 여름리그에서는 다시 평균 출전시가니 8분54초로 줄었다. 주전과 식스맨, 벤치를 드나들었다.

완전한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한채 2008~2009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임영희는 신세계와 원소속팀 계약도 틀어졌다. 결국 연봉 7100만원에 우리은행과 3년 계약을 맺었다.

신세계에서 주전을 차지하지 못했던 임영희에게 하위권을 맴돌던 우리은행은 최적의 팀이었다. 더구나 우리은행은 가드 라인이 약세였기 때문에 득점력을 갖춘 임영희가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했다.

▲ 임영희의 장기는 언제 어디서나 터지는 슛이다. 골밑 득점과 중거리슛, 3점슛 가리지 않고 기회가 되면 공을 던진다.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으로 춘천 우리은행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사진=WKBL 제공]

그 선택은 역시 탁월했다. 2009~2010 시즌 40경기에 나와 평균 34분28초를 뛰며 11.53득점을 올렸다. 전 시즌에 신세계에서 9분24초를 뛴 것과 비교하면 무려 4배 가까이 늘었다. 평균 득점도 처음으로 두자리로 올라갔다.

그럼에도 우리은행은 강팀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은행이 비로소 강팀으로 거듭난 것은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가 부임한 2012~2013 시즌부터였다.

전주원 코치는 특히 임영희에게 많은 것을 맡겼다. 신한은행 당시 자신과 정선민 등 노장 선수들이 팀을 이끌며 '레알 신한'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전수하고 분위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 30대 중반에 찾아온 전성기, 끝없는 노력과 훈련

임영희의 장기는 쉼없이 터지는 슛이다. 그의 득점은 중거리, 3점슛 가리지 않고 터진다. 또 팀이 어려울 때마다 득점을 넣어주는 클러치로도 활약한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전성기가 찾아왔던 것은 임영희의 노력과 끊임없는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명의 생활이 길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훈련에도 열정적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언제나 훈련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나와 몸을 풀고 슛 연습을 하는 선수가 임영희라고 말한다.

임영희는 자신의 훈련 뿐만 아니라 후배 선수들을 세심하게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은행의 주장으로 부드러운 미소로 후배들을 어우르는 포용력도 가졌다.

▲ 임영희는 춘천 우리은행의 주장으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여자선수로는 어느덧 환갑인 35세의 나이지만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 아니라 어린 후배들을 어우르는 포용력도 가졌다. 사진은 23일 신선우 WKBL 총재 권한대행으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전달받고 있는 임영희. [사진=WKBL 제공]

2012~2013 시즌 우리은행이 통합 우승을 달성했을 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며 비로소 자신의 프로 생활 14년만에 처음으로 큰 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임영희는 자만하지 않았다. 2013년 아시아농구선수권에 출전해 준우승을 이끌었고 2013~2014 시즌에는 후배 박혜진(25)에게 MVP를 양보했지만 두 시즌 연속 베스트5에 들며 자신의 뒤늦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임영희에게도 2014~2015 시즌은 힘들었다. 임영희는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뒤 인터뷰에서 "지난 두차례 정규리그 우승보다 이번이 더 힘들었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며 "그럴 때마다 위성우 감독님과 전주원 코치가 힘을 내자고 선수들을 독려했고 그 덕분에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영희는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하게 됐지만 신한은행이나 청주 KB스타즈 모두 부담스럽다. 특히 KB스타즈는 3점슛이 좋은데 최근 맞대결에서 2연패를 당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며 "단단히 준비해서 챔피언결정전에 임하겠다. 진 경기는 빨리 잊고 리그 마무리를 잘하면서 챔피언결정전에 집중하곘다"고 밝혔다.

임영희의 눈은 이제 통합 3연패를 바라본다. 우리은행과 임영희는 상당히 닮았다. 우리은행이 오랜 기간 '흑역사'를 거친 것처럼 임영희도 10년 넘게 무명으로 지내다보니 승리가 고프다. 임영희와 우리은행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늘 그랬듯 챔피언결정전도 '임영희 타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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