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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 여기가 원조” ‘플래시’ 마블에 압승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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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 여기가 원조” ‘플래시’ 마블에 압승 [Q리뷰]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6.0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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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DC의 자신감은 허풍이 아니었다. 코믹스를 통해 마블보다 먼저 멀티버스 세계관을 선보였던 DC는 원조의 품격을 살려 "멀티버스 사용법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확실한 비교군이 있다는 것은 막강한 자극제가 될 수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DC와 마블은 히어로물 양대산맥이자 영원한 라이벌로 나란히 걸어왔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등 원조격 마블 캐릭터들이 연이어 사랑받고 블랙팬서, 캡틴 마블 등이 다음 세대를 열어가는 동안 DC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프랜차이즈로 연명해 왔다. 오랜시간 우리 곁을 지켜온 영웅들은 이제 추억하는 이만 남은 '구세대 영웅'으로 치부되는 듯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젊은 피 수혈이 급선무였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그 젋은 피를 수혈할 인물이 바로 '플래시'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감독이자 최근 DC스튜디오 공동 대표로 취임한 제임스 건은 "플래시는 앞으로 선보일 DC 유니버스를 새롭게 설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어수룩한 18세 청년은 DC 확장유니버스(DCEU)를 리부트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그동안 플래시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저스티스 리그'에서 눈도장을 찍었다. 이번 영화는 플래시의 첫 단독 영화로 앞선 작품들에서 플래시를 연기한 에즈라 밀러가 그대로 배역을 맡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DC의 야심찬 리부트는 작품을 까보기도 전에 고난에 빠졌다. 에즈라 밀러가 도난, 난동, 폭행, 그루밍 성범죄 의혹 등으로 논란을 빚은 것. 에즈라 밀러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내가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치료를 시작했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말하며 피해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할리우드는 국내 정서와 반대로 "달라지겠다"는 의지를 보인 에즈라 밀러를 거의 용서한 분위기다. 가정 폭력으로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조니 뎁이 칸 국제영화제를 통해 당당히 복귀한 걸 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를 약속한 에즈라 밀러 정도는 양반일지도 모른다. 플래시 연출을 맡은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 역시 에즈라 밀러를 지지했다. "플래시 속편에도 그를 다시 캐스팅할 것"이라고 밝히며 "에즈라 밀러 만큼 플래시를 잘 표현할 사람은 없다. 묘사도 훌륭하지만 캐릭터의 비전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그는 굉장히 헌신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이 말한 "에즈라 밀러 만큼 플래시를 잘 표현할 사람은 없다"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착한 심성을 지녔지만 어딘가 이상하고 답답해 보일 때도 있으며 소심하기까지,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고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매력적인 아웃사이더 배리 앨런은 에즈라 밀러가 만들어낸 에즈라 밀러만의 캐릭터였다. 특히 플래시와 멀티버스 속 플래시 1인 2역을 맡아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을 그려낸 부분은 극찬이 아깝지 않았다. 

작품 중심축에 에즈라 밀러를 놓은 플래시는 그 주변으로 스토리, 액션, 영상, 음악, 미술 등을 겹겹이 둘러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했다. 스크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스피드 액션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고, 2명의 에즈라 밀러는 CG 기술을 통해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존재했다. 가족애를 건드려 관객을 눈물 짓게 만드는 감동 포인트와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신작 '바비' 등을 암시하는 이스터 에그 유머는 덤. 히어로 영화 황금 시대를 되찾을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제임스 건 감독도,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도 자신만만하게 플래시를 내놓을만 했다.

멀티버스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한 발 빨리 멀티버스를 소개한 마블에 의해 후발주자 같은 모양새가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마블의 세계관 훈련 덕분에 이득을 보게 됐다. 시공간이 뒤틀린 이미지와 달라진 캐릭터만 보여줘도 관객들이 알아서 머릿속 사전에 적힌 멀티버스의 정의를 찾아 꺼내게 된 것. 더이상 "멀티버스란 말입니다"라고 말하며 분필을 꺼내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 덕에 멀티버스 등장 이후 이야기 재미를 상실하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마블과 달리 설명을 줄이고 스토리에 집중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서사 중심의 작품을 꾸준히 내놓은 DC의 강점이 크게 돋보였다. 히어로물을 넘어 멀티버스 경쟁 구도에 놓인 DC와 마블의 승부, 이번만큼은 DC의 완벽한 승리였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와 함께 DC는 지금까지 자신들을 지지해준 팬들을 위한 빅 이벤트를 멀티버스라는 포장지에 감쌌다. '저스티스 리그'의 배트맨 벤 애플렉을 출연시킨 것은 물론, 1990년대 배트맨 모던 에이지 시리즈 '배트맨', '배트맨2', '배트맨 앤 로빈'에서 마이클 키튼을 출연시켰다. 모던 에이지 시리즈 속 배트맨들은 플래시가 뒤튼 멀티버스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두 사람 외에도 다양한 DC 유니버스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놀라움을 안긴다. 배우 교체가 잦았던 DC는 멀티버스 세계관으로 설득력까지 갖추며 다음 시리즈를 향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스피드, 차원이 다른 능력의 히어로 플래시가 자신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을 역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주의 모든 시간과 차원이 붕괴되어 버린 후 초토화된 현실과 뒤엉킨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 배트맨과 함께 전력 질주에 나서는 초광속 액션 블록버스터. 144분. 12세 관람가. 오는 14일 개봉. 쿠키 영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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