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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시작이 좋다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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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시작이 좋다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6.2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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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시작이 반이라지만 시작부터 좋은 느낌을 풍기는 경우도 있다. '귀공자'로 스크린 데뷔를 치른 배우 김선호(37)가 대표적인 예다.

김선호가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이후 2년 만에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로 돌아왔다. 귀공자는 김선호의 복귀 신호탄인 동시에 첫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는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극장가에 활기를 보태고 있다.

개봉 전 떨리는 마음을 안고 인터뷰 자리에 앉은 김선호는 "단점만 보여서"라는 겸손한 태도와 함께 "처음이라 긴장을 조금 했는데 현장에 들어가니 드라마와 큰 차이는 없더라. 나한테 이런 역할도 들어오는구나 싶어 기쁘기도 했다"고 스크린 데뷔 소감을 전했다.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스크린 초짜, '귀공자' 되기까지

김선호는 귀공자로 세 가지 도전 과제를 달성했다. 첫 번째가 스크린 데뷔라면 두 번째는 기존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빌런 역할, 세 번째는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액션이다. 미스터리한 빌런 귀공자 역을 연기한 그는 "드라마에서 액션 연기를 해보긴 했지만 이렇게 길게 한 것은 처음이다. 확실히 좋은 액션을 찍으려면 많은 양의 액션과 변수 대비가 필요하더라"라면 "제가 춤은 정말 못 추는데 액션은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도전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고가도로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하는가 하면, 달리는 마르코(강태주 분)를 따라 긴 도로를 열심히 뛰기도 했다. 그는 "고가도로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겁 먹은 상태로 뛰어내렸다"며 "감독님 말씀으로는 뛰어내릴 때 웃는 장면이 딱 하나 있었다던데 그걸 사용하신 것 같다. 극도로 긴장해서 웃지도 못하고 무표정으로 계속해서 뛰어내렸다"고 털어놨다. 당시 촬영은 안전장비를 갖추고 진행돼 안전상 문제는 없었다.

생각보다 높은 고가도로 앞에서 가장 먼저 꺼낸 말도 "사람이 여기서 뛰어내리면 살 수 있어요?"였다고. 그러나 "겁을 먹었다"는 김선호의 말과 달리 극중 귀공자는 아주 가뿐히, 흐트러짐 하나 없이 완벽한 착지를 선보였다. 일반적인 액션처럼 구르지도 않고 두 발로 모든 충격을 흡수하며 착지하는 100점 만점의 1000점짜리 착지. 김선호는 이를 "박훈정 감독님만의 세계관"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귀공자’ 스틸컷. [사진=NEW 제공]
영화 ‘귀공자’ 스틸컷. [사진=NEW 제공]

귀공자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뜀박질하는 설정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달리기와 달리 조금 더 정돈된 모습으로 달렸다. 대본 지문에 '힘들지만 마르코가 돌아볼 때마다 힘들지 않은 척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대본에는 다양한 지문들이 존재했고 김선호만의 해석이 필요했다. 귀공자가 콜라를 먹는 신에는 '어린 아이처럼 참 맛있게도 먹는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그는 "귀공자의 어린 아이같은 면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 행위들이 나쁜 줄 모르고 즐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라며 "감독님에게 물어보니 '시계태엽 오렌지(1971)'를 레퍼런스로 주시더라. 귀공자는 악행을 하면서도 악행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나쁜 것인지 분간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계태엽 오렌지 외에도 히스 레저의 조커를 레퍼런스 삼아 귀공자의 미소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조율을 거쳤다.

김선호는 귀공자가 벌이는 행위의 당위성을 '결핍'에서 찾았다. 그는 "감독님이 귀공자는 '아프기 싫어서 먼저 쏘는 아이'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니까 한 발 먼저 쏴야 한다고. 더 겁나니까 더 아픈 거다. 그래서 더 잔인할 수도 있다. 아파본 적이 없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재미를 알아가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귀인' 박훈정 감독

김선호의 복귀에는 박훈정 감독의 신뢰가 따라붙는다.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가 전 연인과의 사생활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을 때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차기작 '폭군'에 보란듯 캐스팅하며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신뢰에 많은 궁금증이 따랐지만 박훈정 감독은 "대안이 없었다"는 특별할 것 없는 답변만 내놓았다. 김선호를 선택하지 않으면 영화를 멈췄어야 했으니 김선호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예정된 작품과 출연 중이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한 김선호가 귀공자를 놓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는 "사실 감독님께서 대안을 고민했다는 사실도 제작보고회에서 처음 들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작사 대표님, 감독님 두 분께서 먼저 물어보셨어요. '영화는 이미 미뤄진 상태고, 손해가 있긴 해. 그래도 괜찮니? 우리는 너가 괜찮으면 하고 싶어. 어떻게 생각해?' 이 말을 들었을 때 감사함이 컸어요. 이분들께 배우로서 누가 되고 싶지 않았죠. 제가 할 수 있는 보답은 연기니까 최선을 다해서 보답하고 싶었어요."

스크린 도전, 박훈정 감독을 향한 존경, 작품에 대한 신뢰 등이 귀공자를 선택한 이유였다면 오늘날의 귀공자를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사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반면 스크린 데뷔작을 선보이기도 전에 폭군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하고 싶었서"였다.

박훈정 감독(왼쪽), 김선호. [사진=NEW 제공]
박훈정 감독(왼쪽), 김선호. [사진=NEW 제공]

그는 "제 연기 모토가 '다음에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되자'다. 폭군을 제안받았을 때 감사하기도 했고 우선적으로 작품이 재미있었다"며 "귀공자 촬영 도중 제안을 받았다. 하루는 감독님과 산책을 하고 있는데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대본을 주시면서 '할래?'라고 물으셨다"고 회상했다.

폭군은 현재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선호는 귀공자에서 보여준 모습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예정. 그는 "감독님께서 재미있게 잘 나왔다고 하시더라. 이번에는 앉아만 있다. 액션도 없다. 귀공자가 극한의 동적이라면 폭군은 정적"이라며 "현장에서 '선호가 너무 편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선호에게 박훈정 감독은 '존경하는 감독'이자 '유쾌한 형'이었다. 귀공자 촬영 차 제주도에 머물렀을 당시에는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박훈정 감독과 보냈을 정도. 그는 "감독님은 되게 젊으시다. 이런 말 하시면 서운해 하시려나.(웃음) 연출할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는 1, 2살 차이나는 형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촬영 현장에서의 감독님은 굉장히 터프하세요. 과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리더로서 갖춰야 할 모습이 많이 보여요. '평생 리더로 살 수밖에 없겠구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따르거든요. 감독님보다 나이가 많은 스태프들도 많이들 존경하시더라고요."

박훈정 감독은 귀공자 후속편 가능성을 열어두며 "선호와 싸우지만 않는다면"이라고 이야기했다. 김선호는 "싸울 일이 없다. 저는 감독님 말을 잘 듣는다. 까부는 스타일이 아니"라며 "부르면 갈 것"이라고 호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연기를 바라보는 '귀중한' 마음

그는 연극 '터칭 더 보이드' 당시 가장 인상 깊은 극중 대사로 "산에 왜 오르냐가 아니라, 왜 오르지 않냐고 물어야지"를 꼽은 바 있다. 김선호가 오르고 싶은,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산은 무엇일까.

"사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 '존경하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으면 이렇다 할 대답이 없었어요. 좋은 부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저처럼 느린 사람이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것에는 수많은 선배님들의 레퍼런스가 있었기 때문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히스 레저의 조커가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다양한 빌런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최초로 만들어낸다는 것에는 언제나 어려움이 따랐다. 김선호가 오르고 싶은 산은 이 '최초'라는 산이었다.

김선호는 최근 들어 '나도 언젠가 남들이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해내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큰 변화를 고민한다. 늘 절실하다"고 고백했다.

이날 스스로를 수차례 '느린 배우'라고 표현한 그는 "한 번 말했을 때 잘 못 알아듣는다. 뚝딱거린다고 해야 할까. 현장에서 계속해서 질문하는 이유도 알아듣고 싶어서다. 연기라는 게 모호하지 않나. 인생이 묻어나기도 하고. 배우로서 표현하는 게 조금 늦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 잘한다고 칭찬하기 보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끝으로 김선호가 말하는 배우 김선호는 '느리지만 유연하려 노력하고 그것이 장점인 배우'였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요. 예를 들어 제가 험상궂고 말 한마디만 해도 벌벌 떨게 만드는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제 이미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외적인 걸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만 해도 주변인이 겁을 먹는다'는 역할을 맡았을 때 내가 힘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경우의 수를 찾아가요. 그래서 스크린 작업이 더 뜻 깊어요. 드라마와 달리 한 신을 찍어도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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