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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 김혜수의 정체성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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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 김혜수의 정체성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8.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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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1970년생 김혜수(52)가 1970년을 시작점 삼은 '밀수'(감독 류승완)를 만났다. 어릴 적 보고 자란 70년대 히피 문화를 지금까지 동경하고 있다는 그는 캐릭터 외피까지 손 뻗으며 '춘자'를 완성했다. 화려한 패턴에 나팔바지, 통굽 구두, 바람의 숨결을 한껏 담아낸 사자 머리 등 김혜수의 터치가 곳곳에 묻어났다.

김혜수의 입을 통해 듣는 춘자는 영화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이는 영화가 세밀하게 비추지 않은 춘자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 춘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영화 '밀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혜수는 춘자의 키워드를 '생존'이라 표현했다. 가족 없이 혈혈단신으로 떠돌다 해안가 마을 군천에 다다르고 엄진숙(염정아 분)이라는 품 넓은 또래 친구를 만나 가족처럼 살아가지만 여전히 삶을 의탁하는 처지였으니 일생이 생존과 직결된 몸부림으로 이어졌던 셈이다.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구보다 믿고 아끼는 친구 앞에서도 스스로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삶, 김혜수는 이를 "애처롭다"고 말했다.

그는 "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모습은 두 가지다. 떠돌이 외부인인 스스로를 감추고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것과 자신을 과장되게 드러내면서 '아무렇지 않아',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표현하는 것. 춘자는 후자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불미스러운 사고 후 도망치듯 진숙의 곁을 떠나야만 했던 춘자는 권상사(조인성 분)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군천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춘자가 군천으로 돌아가리라 마음 먹은 내막에는 진숙이 있었다고.

"춘자는 재미있자고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진숙이, 내 짝, 피붙이보다 소중한, 내가 살면서 가장 따뜻했던 그곳에 오해를 풀기 위해 돌아가는 거죠.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한 임기응변으로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 오해를 확실하게 풀 수 있다는 계산이 어느 정도 생긴 다음에 뱉는 말인 거예요. 군천을 먹여 살리기 위한 밀수는 진숙의 몫이고, 춘자에게 밀수는 진숙의 오해를 풀기 위한 과정인 거죠."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NEW 제공]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NEW 제공]

춘자의 의도와 달리 두 사람은 분노에 가득 찬 재회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춘자는 진숙에게 지난날을 설명하기보다 "너 나 모르냐"는 강렬한 외침을 전한다. 수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는 두 사람 사이의 정을 나타내는 대사다.

김혜수는 "진숙은 이유가 있는 공격이었고, 춘자는 맞으면 받아쳐야 하는 성격이다. '진숙아, 너 나 모르냐'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해도 너는 알지 않냐. 모든 정황이 이야기해도 너는 진짜 나를 알잖아. 그게 진짜 나였는지 네 입으로 듣고 싶은 거 아니냐'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춘자는 '너는 나를 알지 않냐'는 짧은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다들 춘자가 어떻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제 생사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설움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시나리오상 한 차례 오가는 선에서 마무리됐으나 현장 논의 끝에 두 번 주고받게 됐다고. 그는 "한 대씩 주고받는 것은 예상 가능한 그림 아니냐. 진숙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한 대로 끝날 게 아녔고, 춘자 역시 사고 이후 전부를 잃었다"며 "힘찬 쌍 귀싸대기는 본 적 없으니 감독님에게 의견을 드렸고 그렇게 수정이 됐다"고 비화를 밝혔다.

진숙과 춘자를 어떤 단어로 표현하고 싶냐 묻자 그는 "진숙이는 바다의 등대, 춘자는 없던 길도 만들어 가는 길잡이. 바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했다.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혜수, 건강한 현장을 만드는 힘

1985년 CF 스타로 등장해 1986년 영화 '깜보'로 연기 문턱을 밟은 그는 데뷔 37년 차에도 매 작품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도전에 도전을 더하고 있다. 밀수 역시 공황을 극복하고 수중 연기에 도전해 찬사를 받았다.

작업하는 배우 모두가 존경을 표현한다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 김혜수가 있는 현장은 언제나 애정이 가득하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밀수 출연 배우들도 입 모아 김혜수로부터 받은 사랑을 자랑했다.

이에 김혜수는 "엄청난 호의를 가지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저도 혼자 살다 보니 혼자 사는 스태프나 배우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도 있고 챙기는 게 크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반대로 저도 에너지나 기운을 받는다. 관계라는 것은 절대 일방적이지 않다. 상호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를 하나로 움직이게 만든 것에는 해녀들의 호흡이 있었다. 호흡이 단단하게 이뤄졌고 현장이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이번 작품은 선물 같았다. 너무나 좋은 배우들을 만났다"고 덧붙였다.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NEW 제공]
영화 ‘밀수’ 스틸컷. [사진=NEW 제공]

특히 이번 작품을 하며 정체성을 깨달았다고. 그는 "나의 정체성보다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게 됐다. 우리의 정체성은 팀이고 나의 정체성은 팀원이라는 것. 항상 염두하지만 배우들과 함께하며 크게 느꼈다"며 "어느 제작사든 좋은 팀워크를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지만 누구 하나가 주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진심이 느껴지고 하나라는 걸 알게 되면 강한 팀워크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마주한 김혜수는 평가를 인정할 땐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연기 소신을 이야기할 땐 누구보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었다. 

춘자의 연기 톤이 과장됐다는 평에 대해서도 "보시는 분들이 맞을 거다. 제가 이런 부분을 염두에 뒀다고 이야기하면 '그럴 수 있겠다'고 하시겠지만 보시는 분들은 정보 없이 보시니 솔직하고 정확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호쾌한 모습을 보였다.

기자간담회 당시 "현장은 늘 한계를 확인하는 곳"이라고 말한 그다.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냐 묻자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한계는 모든 현장에 있다. 제대로 느끼고 준비했다고 해도 카메라 시선에 담긴 스스로를 보면 한계를 느낀다. 지금까지도 만족은 없었다. 그게 배우의 일상이다. 현장이 아무리 좋아도, 좋은 사람과 좋은 에너지를 받아도, 과정 자체가 행복해도 한계 극복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고백했다. 자만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와 싸우는 과정이 과거와 지금의 김혜수를 그려냈고, 앞으로의 김혜수를 그려내리라.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혜수의 이야기 속에는 '진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김혜수가 말하는 '진짜'는 무엇일까.

그는 "만드는 사람들이 느끼는 진짜다. 진숙과 춘자가 나눈 순간을 모두 떠나 필요한 말, 필요한 감정이 진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도 모두 진짜일 수 없듯이 영화 안에서도 모든 것이 진짜일 수 없다"며 "하지만 진짜여야 해는 부분이 있다. 가짜에도 진심을 다해서 연기하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진짜의 진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진짜 연기가 어디 있겠어요. 다 다르지. 배우의 연기가 늘 좋을 수는 없지 않나요. 사람이 아닌 일을 하는 사람이 배우거든요. 어불성설인 거죠. 진짜가 진짜로 느껴져서 진짜일 때도 있고 진짜를 감추고 있지만 우리만의 진짜가 존재해야 할 때도 있고. 연기는 답이 없어요. 연기의 진짜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감히 해본 적도 없고요. 그저 제가 마주한 일에 대해, 캐릭터에 대해 진심을 다해 연기하려 해요. 대신 순간에 대한 몰입의 진정성, 몰입의 진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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