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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리에게' 빚이 있다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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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리에게' 빚이 있다 [Q리뷰]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10.08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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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내 안의 꾹꾹이와 미친년을 찾았다"

고(故) 설리(최진리)의 유작 다큐멘터리 영화 '진리에게'(감독 정윤석)가 지난 7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상영은 티켓 오픈과 함께 전석 매진을 돼 영화를 향한 관심을 실감케 했다.

최초 상영 시작과 함께 설리의 생전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자 객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객석은 스크린 속 설리의 밝은 모습과 반대로 그리움, 미안함, 안타까움 등이 섞인 먹먹함으로 가득 찼다.

영화 ‘진리에게’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진리에게’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진리에게'는 설리 주연의 단편 극영화 '4: 클린 아일랜드'(감독 황수아, 김지혜)와 함께 '페르소나: 설리'에 속하는 작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되며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했다. 

연출을 맡은 정윤석 감독은 설리의 여정을 동화 '도로시'에 비유해 전개한다. '도로시'는 설리가 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인 2019년 6월 발매한 데뷔 14년만 솔로 앨범 수록곡이기도 하다. 질투, 사랑, 진리, 화려함, 비겁함, 사막, 빙산 등으로 도로시를 수식하며 잊혀진 꿈과 미래를 위한 기도를 이야기한다.

설리는 당시 '도로시'를 비롯해 '고블린', '온더문' 등 솔로 앨범 전곡 작사에 참여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그려냈다. 그는 "'도로시'는 꿈꾸는 나, '온더문'은 잠들기 전의 나, '고블린'은 현재의 나를 담아 여러분이 못 보셨던 ‘나’의 여러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윤석 감독은 설리의 이야기 중 '꿈꾸는 설리'에 집중한다. 도로시가 토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리며 설리의 생전 일기, 남겨진 자택, F(x) 그룹 및 개인 활동 모습 등을 더해 설리를 추모한다.

영화 ‘진리에게’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진리에게’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1시간 30분가량 이어지는 다큐멘터리의 메인은 설리의 생전 인터뷰다. 배우이자 아티스트로서의 설리와 스물다섯의 최진리가 그 시절 느꼈던 다양한 일상의 고민과 생각을 인터뷰 형식을 담아낸다. 

자기소개로 인터뷰를 연 설리는 아이돌 생활의 고통, 예쁜 아이 콤플렉스, 페미니즘 선언, 노브라 논란,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 타이틀, 악플 선처 등 자신에게 쏟아졌던 부정적인 시선에 답한다. 스스로의 행위에 답하는 설리의 모습은 진중하고 당당하다. 답을 찾아 오랜 시간 고민할지언정 던져진 질문을 회피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왜 악플을 선처했냐"는 질문에 결국 눈물을 쏟아낸다. 힘겹게 내놓은 답은 고소하면서 더 상처받았다는 것. 사과를 받는 것조차도 상처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아이돌 활동을 하며)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너는 상품이야. 사람들에게 최상의 상품으로 존재해야 해'였어요."

설리 [사진=스포츠Q(큐) DB]
설리 [사진=스포츠Q(큐) DB]

'진리에게'는 한 여성의 죽음을 다루며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회적 죽음의 올바른 추모 방식을 이야기한다. 설리에게 향했던, 혹은 아직 만연한 혐오를 마주하고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이면에 경종을 울린다. 설리 개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이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로 확대된다. 

정윤석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고인의 말씀은 여성 문제, 사회적 약자 문제, 평등 문제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말이 많다"며 "주인공 진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분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진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참된 진리(眞理) 자체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유작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현 사회는 설리에게 빚을 지고 있다. 설리뿐만 아니라 더이상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젊은 아티스트, 이름도 알지 못하는 젊은이의 목숨이 사회를 지탱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변화하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속 최진리는 스물다섯에 멈춰있지만, 이를 마주한 진리들은 다가오는 미래를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진리에게'는 오는 9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을 이어간 후 올 하반기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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