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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죽음" 김창완 없는 아침, 시대가 저문다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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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죽음" 김창완 없는 아침, 시대가 저문다 [기자의 눈]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03.14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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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가수 김창완은 14일 오전 2000년부터 23년간 이끈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아침창) 마지막 생방송을 진행했다. 김창완의 하차는 지난달 공식화됐다.

'아침창' 가족의 영원한 집사이고 싶다는 그는 이날 수트와 보타이를 착용하고 방송에 임했다. 평소 편한 옷차림으로 라디오와 콘서트, 행사를 찾는 그가 '아침창' 청취자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창완(가운데). [사진=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공식 인스타그램]
김창완(가운데). [사진=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공식 인스타그램]

그는 청취자를 위해 2020년 발매한 정규앨범 문(門) 수록곡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를 열창했다. 그의 진심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행복했다고. 헤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였다고"라는 가사에 담겼다.

김창완은 광고가 시작되고 더이상 노래가 송출되지 않는 순간에도 기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그의 연주가 생중계 영상을 타고 소리 없이 흘렀다. 연주를 마친 그는 끝내 광고 멘트를 배경음 삼아 눈물을 흘렸다. 한참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에도 소리가 없었다.

'아름다운 이 아침'은 1996년 시작됐다. 배우 김미숙이 4년을 채우고 김창완은 앞선 4년을 다섯 번 곱한 수보다 많은 23년을 채웠다. 그 긴 세월 동안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농작물을 수확했다. 사람에 빗댄다면 옹알이하던 작은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낸 시간이다. '아침창'과 그의 이별을 아쉬움으로 압축하기엔 길고 길다.

SBS 측은 김창완 하차에 대해 '시대 변화'를 이유로 들었다. 대대적인 라디오 개편을 통해 새로운 청취자 유입을 꾀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70대 김창완은 40대 봉태규로 대체됐다.

김창완은 SBS 러브FM으로 둥지를 옮겨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다. 파워FM과 러브FM은 청취율 차이가 극명하다. 파워FM 간판 DJ를 러브FM으로 보낸다는 것은 기존 청취자를 이전해 채널 청취율을 높여보겠다는 의지로 읽히지만 동시에 '좌천'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창완과 함께한 뮤지션들.
두번째달, 오단해(왼쪽 위부터) 너트커넥션, 기프트, 이층버스, 김늑 등 김창완과 함께한 뮤지션들. [사진=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공식 인스타그램]

김창완은 지난해 11월 독집 앨범 '나는 지구인이다'를 발매하며 "최근 K팝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저희 같은 가수들에게는 (그 조명이) 무대 밑쪽 면에도 안 비친다. 뮤지션으로 무력감을 느끼고 참 나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대로 K팝 열풍은 아이돌과 트로트 같은 팬덤 장르에 한정돼 있다. 음원 차트는 팬덤 크기로 결정되기 일쑤다. 현 시대는 한국 대중문화를 발전시킨 '옛 시대'에게 가혹하다. 그가 '아침창'에서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을 소개하는 데 힘 써온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가수 김창완의 탈력감은 라디오 DJ 김창완으로 해소됐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희망을 안겼다. 그렇기에 그와 '아침창'의 작별이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창완의 하차가 한 평생 몸담아온 회사를 쓸쓸히 떠나는 가장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비약이 아니리라.

지난해 11월 독집 앨범 '나는 지구인이다' 김창완. [사진=스포츠Q(큐) DB]
지난해 11월 열린 앨범 '나는 지구인이다'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신곡을 선보인 김창완. [사진=스포츠Q(큐) DB]

김창완은 하차를 '죽음'으로 표현했다. '아침창'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마지막 생방송 소감을 전하며 "'마지막'이나 '끝'이라는 말 안 쓰고 싶어서 다른 말이 없을까 궁리를 했는데... 없어요. 마지막이고 끝이에요. 심하게 말하면 죽음이에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김창완은 죽음에 항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떠올리며 아침 해를 맞았다.

"'그래, 죽음이다. 내가 죽어서 이 세상에 생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하니 그것처럼 큰 희망이 없는 거예요. 나뭇잎이 하나 진다 하자. 제 노래 '시간'에도 있지만 '바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불었다고 치자', '꿈 속 같고 동화 속 같았던 모든 날에 경배를 올리자'하고 힘차게 집을 나섰습니다."

23년간 많은 청취자가 김창완의 목소리에 힘을 얻으며 아침을 열었다. 누군가는 출근을 준비하며, 누군가는 학교에 가는 아이를 배웅하며, 누군가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다른 이보다 일찍 시작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바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부는 모든 날을 김창완과 시작했다.

청취자들의 그림으로 채운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메인 이미지.
청취자들의 그림으로 채운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메인 이미지. [사진=SBS 제공]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게 힘이 펄펄 나는 것 같은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몸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그냥 날씨 같은 거라고 여기면 되는 거예요. 바람 불다, 비가 오다, 그러다 햇살이 비추기도 하는 거거든요. 또 그러다 흐리기도 하고." ('아침창' 오프닝 일부)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세대가 몰려오면 노년은 물러나기 마련이다. 20년은 정년퇴임을 가리키는 40년보다 절반이나 짧은 시간이지만 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방송업계에서 '잘 버텨냈다'는 문장을 담고 있다. 당분간 김창완과 함께하는 아침은 멈추겠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두어 달 뒤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인사를 건네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씨를 뿌리고 묘종을 심을 것이다.

김창완은 오는 17일까지 '아침창' 방송을 이어간다. 18일부터는 봉태규가 후임으로 나서 '아름다운 이 아침 봉태규입니다'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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