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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영화, 베트남전을 호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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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영화, 베트남전을 호출하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0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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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시대 배경으로 한 '인간중독' '엑스맨' '봄' 눈길

[스포츠Q 용원중기자] 지난달 14일 개봉돼 135만명을 돌파한 19금 멜로영화 ‘인간중독’, 22일 개봉돼 11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석권하며 하반기 개봉을 앞둔 멜로영화 ‘봄’. 전쟁영화가 아님에도 공교롭게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해 눈길을 끈다.

2차 베트남전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기치를 내건 월맹(북베트남)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월남(남베트남) 사이에 1960년부터 75년까지 벌어진 전쟁이다.

‘엑스맨’은 미래와 과거를 절묘하게 엮는다. 돌연변이들을 섬멸하기 위해 천재 과학자 트라스크가 발명한 가공할 파괴력의 로봇 센티넬로 인해 인류마저 위협에 처하자 오랜 시간 맞섰던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이를 막기 위해 울버린(휴 잭맨)을 과거로 보낸다. 바로 베트남전에 종지부를 찍는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던 1973년이다. 울버린은 젊은 날의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등을 규합, 파리협정에 참석한 트라스크를 죽이려는 미스틱을 저지한다.

▲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인간중독’은 베트남전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69년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지만 끔찍했던 경험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가던 김진평 대령(송승헌)과 같은 군관사 내에 둥지를 튼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 사이에 벌어지는 금지된 사랑을 이야기한다.

‘봄’ 역시 베트남전이 진행되던 1969년을 배경으로 생애 마지막 모델을 만난 천재 조각가에게 찾아온 진정한 사랑을 담는다. 박용우가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한국 최고의 조각가 준구, 김서형이 남편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헌신하는 아내 정숙을 연기했다. 신인 이유영은 어려운 형편에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순수함을 간직한 민경 역을 맡았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엑스맨’ 1, 2편을 통해 단순히 웃고 소비하는 액션영화 범주에서 벗어나 묵직한 세계관을 제시했다. 그가 11년 만에 돌아와 메가폰을 잡은 ‘엑스맨’은 조각조각 존재해오던 에피소드들을 통합, 주류(일반인)와 비주류(돌연변이)의 차별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방점을 찍는다. 이와 더불어 평화와 공존을 역설한다. 평화와 인권논란을 뒤로 한 채 참여한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초강대국 미국의 일그러진 모습과 포개지는 대목이다.

한국에 있어 1964년부터 참전한 베트남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다.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경제를 복구하고 산업화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참전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경제차관 지원 및 외화벌이를 했던 기회의 장이자 그늘진 역사로도 기록되고 있다. 타국의 민족전쟁에 개입한 것이 온당했느냐 여부를 비롯해 무고한 장병들의 희생, 민간인 학살 논란, 고엽제 피해, 라이 따이한(한국계 베트남인) 문제 등이 그렇다.

▲ '인간중독'

‘인간중독’과 ‘봄’은 베트남전의 상흔을 주요 등장인물들 내면에 아로새김으로써 감정을 증폭하고 설득력을 강화한다. 김진평 대령은 베트남전에서 겪었던 지옥과 같던 날들의 기억으로 인해 신경쇠약 증세를 앓는 인물이다. 종가흔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된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민경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가는 여성이다. 전쟁의 소용돌이라는 실제 사건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었기에 영화는 진정성과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인간중독’의 김대우 감독은 “상사와 부하 아내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언제가 가장 치명적일까 생각해보니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69년이 떠올랐다”며 “당시 엄격한 위계질서가 관통하던 군관사 내에서 상사가 부하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건 지상에서 추방당할 정도로 큰일이었다. 이마저 각오할 만한 사랑을 베트남전을 밑바탕 삼아 전개했다. 베트남전은 영화의 시대 배경일 뿐 정치적, 역사적 소견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조원희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 SF영화 ‘왓치맨’이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핵 냉전시대를 차용한 것처럼 상업영화들이 진지한 콘텐츠로서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배경으로 선택하곤 한다”며 “관객 입장에서는 시대의 향수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느끼는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 '봄'

조근현 감독의 ‘봄’은 국내에 앞서 해외에서 먼저 깊은 인상을 남기는 중이다. 지난 4월 아리조나 국제영화제 최우수 외국영화상, 5월 밀라노 국제영화제 대상·여우주연상(이유영)·촬영상 수상에 이어 7월 11일 개막하는 마드리드 국제영화제 3개 부문(최우수 제작자상·최우수 외국어영화상·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여러 의미를 지닌 베트남전쟁이 소재주의에 머물지 않고, 영화에 적절히 녹아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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