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17 19:33 (금)
[교양/역사] '역사저널 그날' 고구려 연개소문은 '영웅'인가 '역적'인가? 잔인함vs상반된 기록 탐구 (예고)
상태바
[교양/역사] '역사저널 그날' 고구려 연개소문은 '영웅'인가 '역적'인가? 잔인함vs상반된 기록 탐구 (예고)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5.11.14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위대한 장수로 알려진 고구려 연개소문은 ‘영웅’인가 ‘역적’인가?

15일 밤 9시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 98회는 ‘연개소문, 쿠데타를 일으키다’ 편을 통해 고구려말 연개소문이 일으킨 쿠데타의 시대적 요구와 명분, 고구려 말기 국운과 함께 한 연개소문의 생애를 살펴본다.

‘642년, 고구려에 피바람이 몰아쳤다. 100여 명의 귀족들이 살해되고 영류왕마저 토막 난 시신으로 버려졌다.’

이같은 잔인한 쿠데타의 기록과는 사뭇 다른 연개소문의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어떤 모습이 진짜 연개소문인지 다각도로 탐구한다.

▲ '역사저널 그날'의 '연개소문, 쿠데타를 일으키다' 편 [사진=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엄친아’ 연개소문, 그는 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연개소문은 성격이 호방하고 뜻이 높아 젊은 시절부터 장수로서 인정받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할아버지 때부터 고구려 제1 관등 대대로를 세습한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642년은 연개소문이 대 역사 천리장성 축성 총감독으로 임명된 해였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왜 이토록 끔찍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일까.

당나라의 침공이 연개소문에게는 기회였다?

▲ '역사저널 그날'의 '연개소문, 쿠데타를 일으키다' 편 [사진=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645년, 당대 최강국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한다. 심지어 당태종이 직접 이끌고 온 최정예 부대가 순식간에 고구려의 10개 성을 함락한다. 연개소문은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최후의 결전지 안시성에서 들려온 반전의 승전보는 연개소문에게 절호의 기회가 됐다. 안시성은 연개소문의 정권 장악에 항거하던 대표적 세력이었으나 당나라에 맞서 중앙정부를 위해 싸워준 것이다.

연개소문, 신묘한 비도술의 대가였다?

▲ '역사저널 그날'의 '연개소문, 쿠데타를 일으키다' 편 [사진=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당나라가 고구려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중국에 남겨진 연개소문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적다. 그런데 중국 경극 속에서 중국인들에게 기억되는 연개소문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극 중 악역으로 등장하는 연개소문은 포악하고 잔인하나 매우 용맹스러운 장수의 모습이다.

무려 다섯 개의 칼을 차고 당 태종을 위협하며 전설적인 장수 설인귀의 맞수가 된다. 특히 다섯 개의 칼을 공중에 마음대로 날리는 신묘한 비도술(飛刀術)을 쓴다.

전쟁영웅의 죽음과 함께 멸망한 고구려, 그 이유는?

당나라에 맞서 승리한 연개소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연씨 가문이 주요 관직을 독점하는 동안 자연스레 정권은 부패해 갔다.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후계자를 놓고 내분이 일어난다. 특히 첫째 아들 남생은 형제들에게 쫓겨 당의 앞잡이가 된다.

이어 평양성을 쳐들어 온 나당 연합군에 패한 고구려는 600년 세월을 뒤로 한 채 멸망한다. 연개소문의 죽음과 더불어 고구려도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연개소문, 쿠데타를 일으키다’ 편에서는 쿠데타와 고당(高唐)전쟁, 고구려 최고 집권자로서의 연개소문의 행적을 돌아본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