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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장보고는 왜 신라를, 또 당나라를 떠나 '해상왕'이 됐을까?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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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장보고는 왜 신라를, 또 당나라를 떠나 '해상왕'이 됐을까? (예고)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5.12.1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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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 청년 장보고는 왜 신라를 떠났을까? 당나라에서 승승장구하던 장보고는 왜 돌연 산둥반도를 떠났을까?

13일 밤 9시40분 방송될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이 ‘청년 장보고, 신라를 떠나다’라는 제목 아래 9세기 동북아시아 해상을 주름잡은 ‘바다의 왕자’ 장보고를 조명한다.

9세기, 삼국 통일 후 전성기를 누리던 신라는 왕권이 약화되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관리들의 수탈과 계속되는 기근으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당나라로 구걸하러 간다. 엄격한 신분제와 왕경인과 지방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백성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 13일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해상왕' 장보고가 신라를 떠난 뒤 당나라의 장군으로 성장하고 해상왕으로 변신한 과정을 되짚어 본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신라 서남해안의 한 섬에 활을 잘 다뤄 ‘활보‧궁복‧궁파’로 불린 소년이 있었다. 그는 10여 년 후, 청년 ‘활보’는 ‘장보고’라는 이름으로 당나라에 등장한다.

‘역사저널 그날’에 따르면, 당시 당나라는 ‘초재진용(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 채용한다)’ 정책으로 동북아 각국의 인재가 모여드는 인종의 용광로였다. 당나라는 ‘슈퍼차이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기회의 땅’인 당으로 향한 장보고는 뛰어난 무예실력으로 ‘무령군’에 입대한다. 외국인 용병이 된 것이다.

815년, 장보고는 반세기 동안 산둥반도를 장악한 10만 대군의 ‘평로치청’ 이사도가 일으킨 반란을 토멸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장보고는 외국인 용병의 신분으로 무령군 소장직에 오른다. 도당 10년 만의 일이었다.

외국인 용병으로 신분의 한계를 이겨낸 장보고였지만 824년 돌연 무령군을 떠난다. 당시 당나라는 지방세력 진압이후 쓸모없어진 외국인 용병 부대에 대한 재정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탄탄대로를 달리던 장보고가 무령군을 그만둔 이유였을까?

이날 ‘역저저널 그날’은 10년 간 기록조차 없이 의문에 휩싸인 장보고의 제대 이유를 두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추적한다. 또 이날 방송’에서는 ‘용맹한 장수’였던 장보고가 어떻게 훗날 동북아 해상을 뒤흔든 치밀한 사업가이자로 성장했는지 전략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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