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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춤추고 노래하고 기생집까지...원효대사의 파격적 행보 의미와 진실, 그리고 거짓들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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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춤추고 노래하고 기생집까지...원효대사의 파격적 행보 의미와 진실, 그리고 거짓들 (예고)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5.12.27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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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원효는 해골물을 마시지 않았다? 실제로는 난폭하고 예의가 없었다? 무려 1300년 동안 사랑받고 있는 승려 ‘원효’에 대한 우리의 상식은 어디까지 맞는 것일까?

27일 밤 9시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 104회는 ‘원효, 파계를 결심하다’ 편을 통해 그와 관련된 진실과 거짓, 그가 지금까지도 위대한 승려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를 되짚어 본다.

▲ 대중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려했던 ‘원효’의 모습들이 27일 '역사저널 그날'에서 밝혀진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7m 두루마리 통해 보는 해골물의 진실은?

원효가 해골물 한 잔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는 온 국민이 다 알정도다. 밤중에 달게 마신 물이 해골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진리는 오직 마음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고승 533명의 전기를 수록한 당나라 책 ‘송고승전’의 기록에는 해골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해골물은 원효의 깨달음과는 무관했던 것일까? 이날 방송에서는 ‘그날’ 무덤에서 원효에게 벌어진 일을 그의 행적을 담은 7미터의 거대한 두루마리 그림과 함께 샅샅이 파헤쳐 본다.

여염집 유숙, 주막과 기생집까지...파격적 행보의 의미는?

‘그의 발언은 미친 듯이 난폭하고 예의에 어긋났으며 행동은 상식의 선을 넘었다’ 송고송전에는 이같은 기록이 등장한다.

유학을 그만두고 신라로 돌아온 원효의 행적에서 믿을 수 없는 모습들이 포착된다. 조롱박을 들고 춤을 추며 저잣거리를 활보하는가 하면, 여염집에서 유숙을 하고 주막이나 기생집에까지 출입한다. 도저히 승려의 행동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원효대사의 파격적 행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에게는 일약 슈퍼스타로 떠오른다. 원효는 차별과 구별이 없는 ‘무애’사상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며, 삼국 간의 계속된 전쟁으로 피폐해진 7세기 신라 백성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이다.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불교 이론가에서 실천가로 원효를 변화시킨 것이 무엇인지 탐구해 본다.

▲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와 혼인하다, 그 행간의 의미는?

당시 신라 사회는 골품제라는 강력한 신분제가 존재했다. 6두품 출신의 승려 원효와 왕족 신분인 공주의 결혼은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효의 파계 행보에 정점을 찍는 사건이 발생한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은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왕이 먼저, 뛰어난 인재인 원효를 알아보고 직접 왕궁으로 원효를 들였다고 전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요석공주가 무열왕 김춘추의 딸이라는 학설이 제기되며 원효를 로열패밀리로 보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과연 원효의 결혼은 왕실의 계획이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원효와 요석공주와 결혼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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