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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물] '어그로' 신민재, LG트윈스 가을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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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물] '어그로' 신민재, LG트윈스 가을을 부탁해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1.03 0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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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가장 잘할 수 있는 주루플레이에서 실수가 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 신민재(24)는 LG 트윈스를 살리는 영웅이 됐다.

신민재는 2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2020 신한은행 SOL(쏠) 와일드카드 결정전(WC) 1차전에서 13회말 4-3 승리를 확정짓는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그의 활약에 LG는 두산 베어스를 만나러 준플레이오프(준PO)로 향하게 됐다.

통산 타율 0.252, 풀타임 시즌을 한 번도 치르지 못했던 대주자 전문요원은 LG의 준PO행을 이끄는 ‘미친 선수’가 됐다.

LG 트윈스 신민재가 2일 키움 히어로즈와 2020 신한은행 SOL(쏠) 와일드카드 결정전(WC) 1차전에서 13회말 끝내기 안타를 날린 뒤 포효하고 있다.

 

◆ ‘어그로’라 불린 ‘총알탄 사나이’

인천 태생의 신민재는 인천고 졸업 후 2015년 두산에 육성선수로 지명됐다. 시작부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는 이듬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다했다.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다. 리그 최강 내야를 자랑하는 두산에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오지환의 공백에 대비하던 LG의 시선을 끌었다. 2018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 유니폼을 입었다.

2019년 드디어 1군에 데뷔했지만 타석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81경기에 나왔지만 대주자로 나서는 일이 더 많았다. 타율은 0.235(81타수 19안타). 그보다는 빠른 발을 앞세운 10도루 25득점이 그의 존재감을 더 제대로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루상에만 나가면 제 몫을 했다. 큰 폭의 리드로 투수를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게 그의 임무.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어그로(aggro)’였다. 분쟁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려는 행위를 일컫는 인터넷 용어. 상대 투수의 신경을 긁는 주자. 반면 우리 팀엔 긍정적 의미의 ‘어그로’였다.

올 시즌 타율은 0.308. 그러나 타석에 설 기회는 지난해보다도 더 줄었다. 여전히 빠른 발을 앞세운 ‘작전 수행 요원’이 그를 더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었다.

경기를 끝낸 신민재(왼쪽)가 주장 김현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다.

 

◆ 지옥 문턱에서 탄생한 영웅

치열한 투수전 속 2-2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12회말. 김현수가 내야안타를 만들어 냈고 신민재가 대주자로 1루에 섰다. 채은성의 강한 타구에 스타트를 끊은 신민재. 그러나 타구는 2루수 에디슨 러셀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고 그의 발보다 공이 1루에 먼저 도착했다. 치명적인 주루사.

득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한 LG는 13회초 키움에 한 점을 내주며 패배 위기에 몰렸다. 다행스럽게도 이형종의 2루타와 김민성의 추가 안타, 이천웅의 행운의 내야안타까지 나오며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었다.

2사 1,3루. 타석엔 1번 타자 홍창기. 불리한 볼카운트가 되자 키움 벤치에선 자동 고의4구 사인이 나왔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추가하면 되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를 욱여넣다가 안타를 맞느니 대주자 요원 신민재와 상대하는 게 낫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었다.

김태훈의 제구가 흔들렸다. 1구에 이어 2구도 볼. 상대는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안정적으로 들어올 것이 뻔했다.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지만 베테랑 타자라도 이 상황에서 노림수를 갖기는 쉽지 않다. 제구가 흔들리는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러나 신민재의 방망이는 힘차게 돌았고 타구는 우중간에 떨어졌다. 경기 종료.

경기 후 신민재는 “그 이닝에 공격할 때부터 내 타석이 온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이)천웅이 형이 안타를 치면서 나까지 기회가 왔다”며 “이병규 코치님이 폭투 위험이 있으니까 변화구를 던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속구를 생각하라고 하셨다. 공 2개가 다 높았고 비슷하게 낮게 들어오면 치려고 했다. 생각보다 공이 잘 와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끝내기 안타 비결을 밝혔다.

류중일 감독 또한 “기다리라는 사인은 주지 않았다. 안 칠 줄 알았는데 치더라. 그 상황이면 대부분 하나를 더 보고 칠텐데”라며 신민재의 과감한 타격에 감탄했다.

신민재의 끝내기 안타에 LG 선수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오늘도 팀을 위해 뛴다

12회 주루 미스로 아웃된 뒤 고개를 푹 숙이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던 그다. 그렇기 때문일까. 신민재는 “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며 “처음 들어갈 때는 비슷하면 치는 것보다 보려고 했는데 공 2개를 보고 나니 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5시간 가까이 치른 경기에서 승리까지 내줬다면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믿었던 타자들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심지어 팀 간판타자 김현수 자리를 대체한 게 그였다. 미미했던 기대감과 달리 신민재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완성시켰다.

지난 8월 23일 한화 이글스전 3-4로 끌려가던 9회초 1사 만루에서 병살타로 고개를 숙였던 신민재는 지난달 8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9회말 개인 첫 끝내기 안타를 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12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지만 13회 다시 잡은 기회는 놓치지 않았다. 신민재는 “8월 한화전 실패, 10월 끝내기 안타 성공 등의 경험이 오늘 끝내기 안타를 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창단 30주년, 팀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의 은퇴 시즌. LG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1994년 이후 정상에 올라서지 못했던 LG.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어떤 기회가 와도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의 자세만큼 정상을 향하는 LG에 필요한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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