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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기계' 두산 플렉센, '니퍼트 자네를 능가하는 인재가 나타났네'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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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기계' 두산 플렉센, '니퍼트 자네를 능가하는 인재가 나타났네' [SQ초점]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1.04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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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정답은 없다. 많이 던지게 할지, 승부수를 갖고 노려쳐 점수를 낼지.”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의 발언이 예언처럼 됐다. 두산 베어스 크리스 플렉센(26)을 상대로는 기다려서도, 노려쳐서도 답이 없었다.

플렉센은 4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와 2020 신한은행 SOL(쏠)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선발등판, 6이닝 동안 106구 4피안타 11탈삼진 무실점 호투했다. LG로선 도무지 공략법을 찾을 수 없는 ‘언히터블’ 투수였다.

두산 베어스 크리스 플렉센이 4일 LG와 2020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준PO 1차전에서 6회초 11번째 삼진을 잡아낸 뒤 관중석에 더 큰 응원을 유도하고 있다.

 

큰 기대를 안고 올 시즌 두산 유니폼을 입은 플렉센은 두산의 전설 ‘니느님’ 더스틴 니퍼트를 떠올리게 할 만큼 높이의 강점을 살려 던지는 속구가 일품이다. 제 2의 니퍼트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그 때문.

그러나 등판이 거듭되며 공략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지난 7월 발목 부상으로 두 달 가까이 1군에서 이탈해 있었다.

그런데 2군을 다녀온 뒤 몰라보게 달라졌다. 시속 150㎞를 넘는 속구엔 힘이 더욱 실렸고 변화구의 궤적도 더욱 날카로워졌다.

류중일 감독은 경기 전 플렉센이 이날 경기의 포인트라고 밝혔다. “개막 3차전 때 만나서 졌지만 당시엔 잘 쳤다. 그런데 부상 공백 후 다른 선수가 된 느낌”이라며 “공도 빨라지고 최근 한화전을 보니 커브각도 컸다. ‘이천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플렉센은 9월 복귀 후 무섭게 불타올랐고 10월엔 5경기에서 4승 평균자책점(ERA) 0.85로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경기 전 시구자로 나선 니퍼트(왼쪽)과 인사를 나누는 플렉센.

 

공교롭게도 이날은 2017년 이후 두산을 떠난 니퍼트가 시구자로 나선 날. 시구 후 마운드에서 플렉센에게 인사를 건넸던 니퍼트는 “긴 대화 기회는 없었고 인사 정도만 했다”면서도 “듣기론 사람도 좋고 잘 던지는 선수라기에 기분 좋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고민하던 류중일 감독은 기다리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1회에 4타자가 삼진 3개를 당했지만 20구를 던지게 했고 2회에도 4타자가 플렉센을 괴롭히며 23구를 더 뿌리게 했다. 최대한 때를 기다린 뒤 불리한 카운트에 몰려 타격을 한 탓에 4회까지 삼진이 9개나 됐지만 플렉센의 투구수는 71개까지 불어났다.

그 사이 두산은 1회부터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의 선제 투런포 이후 4회, 6회 1점씩을 더 달아났다. 점수 차는 벌어지고 있었지만 LG는 플렉센의 투구수를 늘리는 것 외엔 달리 해법을 찾지 못했다. 

6이닝 106구 11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친 플렉센 덕에 두산은 PO행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5회에도 김민성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흔들리지 않고 이닝을 틀어막은 플렉센은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오지환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150㎞ 속구로, 로베르트 라모스에겐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예리하게 떨어지는 커브로 삼진을 잡아냈다. 이날 11번째 삼진을 빼앗아 낸 플렉센은 1루 측 홈 응원단 석을 향해 더 큰 응원을 요구하며 포효했다.

106구 중 68구, 64%가 속구였다. 최고 155㎞에 달하는 플렉센의 속구에 LG 타자들의 방망이는 허공에서 춤을 췄다. 속구에 중점을 맞추고 기다리던 타자들은 날카롭게 떨어지는 커브에 맥없이 헛스윙을 했다. 이날 11개 삼진 중 5개를 커브로 잡아냈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긴 무리였다. 그러나 이미 승기는 두산에 기울어져 있었다. 양 팀 감독이 강조한 것처럼 분위기로 크게 좌우되는 가을야구에서 초반부터 상대를 압도한 플렉센의 역투는 그만큼 결정적이었다. 불펜이 약점이라는 평가를 받는 두산에도 4점의 리드, 남은 3이닝을 지켜내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두산이 4-0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플렉센은 가을야구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두산은 PO행을 위한 8부 능선을 넘은 두산이다. 역대 준PO 1차전 승리팀의 PO 진출 확률은 86.2%(25/29)에 달했다. 3판2승제 시리즈로 범위를 좁히면 100%(16/16)로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오른 두산이다. 니퍼트급 선발투수의 존재가 단기전에서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플렉센이 제대로 실감케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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