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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클립] ‘엄마 펜서’ 남현희의 위대한 도전까지 가세한 ‘펜싱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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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클립] ‘엄마 펜서’ 남현희의 위대한 도전까지 가세한 ‘펜싱 코리아’
  • 김한석 기자
  • 승인 2016.03.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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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한석 기자] 여자 펜싱 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 발렌티나 베찰리.
아시아 펜싱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루안 주지에.
한국 여자 펜싱 최초 올림픽 메달리스트 남현희.

프랑스어 꽃에서 유래된 플뢰레에서 자국 올림픽 펜싱사의 한 페이지씩을 화려하게 장식한 이들 펜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저마다 아이를 낳고도 나이테를 잊은 채 올림픽 14m 피스트에서 위대한 도전을 이어나간 전설의 '엄마 검객'들이다.

◆ 남현희 두 번 울린 ‘천적’ 베찰리

이탈리아의 펜싱 레전드 베찰리는 국내 스포츠팬들에게 잘 알려진 남현희의 '천적'이다. 2004년 아테네에서 8위로 올림피아드에 데뷔한 남현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종료 4초를 남기고 베찰리에게 역전 유효타를 허용해 5-6으로 분패, 한국 여자 펜싱 1호 메달이 은메달로 바뀌었다.

남현희는 4년 뒤 런던 대회에서는 3-4위전에서 베찰리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종료 1초 전 12-12 동점을 내준 뒤 연장에서 동시 공격을 했으나 베찰리의 유효타만 인정돼 개인전 메달을 놓친 채 단체전 동메달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남현희를 두 번이나 울릴 때의 베찰리는 '펜싱 맘'이었다.

1996년부터 3연속 금메달 행진 속에 금 4, 은 1개를 따냈던 베찰리는 2005년 축구선수 남편 사이에 아들을 얻은 뒤 올림픽 피스트에 복귀했다. 34,38세의 나이로 남현희를 연속 꺾고 개인전 금 1, 동 1개를 보탠 것이다. 올림픽 5개 출전 대회 연속 금메달(최다)로 여자 펜싱 최다 메달 기록(금 6, 은 1, 동 2)을 보유한 그는 2013년 딸을 낳은 뒤 정계에 입문,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루안 주지에는 중국 펜싱의 선각자. 1984년 LA 올림픽 개인전에서 프랑스의 아성을 넘어 금메달을 따내 중국 건국 이후 35인의 스포츠인에 꼽혔다. 중국 펜싱의 올림픽 데뷔무대에서 단체전도 5위까지 이끌어 국제 펜싱계에 충격을 던졌다.

4년 뒤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뒤 루안은 이듬해 1983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했다가 도시의 아름다음에 흠뻑 빠진 캐나다 애드먼튼으로 가족이민을 갔다. 펜싱클럽을 운영하며 1994년 시민권을 얻은 뒤 루안은 42세가 되던 2000년 세 아이의 엄마로 다시 검을 잡은 올림피언이 됐다.

개인전 35위, 단체전 9위로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이듬해 베이징 올림픽 유치가 발표되자 이후 체력을 꾸준히 관리한 끝에 2008년 마침내 지천명 나이로 조국 팬들 앞에서 섰다. 베찰리와 남현희가 금,은메달을 딴 그 종목에서 개인전 32위에 그쳤지만 나이를 역류한 올림피언의 아름다운 도전이 중국대륙은 물론 지구촌에도 큰 반향을 낳았다. 중국 국적으로 두 번 올림픽 무대에 선 뒤 캐나다 국적으로 다시 두 번이나 '엄마 검객'의 전설을 이어간 것이다.

◆ 이제는 남현희가 전설의 ‘엄마 검객’으로 위대한 도전 나선다 

이제 펜싱 인생 22년을 맞는 남현희가 리우 올림픽을 통해 '펜싱 맘'으로 위대한 도전 대열에 가세한다. 지난 13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FIE) 플뢰레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차지, 4회 연속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5위에 올라 국가별 쿼터에 따라 14명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자동출전권을 거머쥔 것이다.

2011년 사이클 스타 공효석과 결혼해 2013년 딸 하이를 얻은 남현희는 서른다섯 나이로 한국 펜싱사에 남을 여러 기록에 도전한다.

우선 은, 동메달 1개씩로 수확해 유일한 펜싱 멀티 메달리스트인 남현희는 리우에서 메달을 추가하면 3연속 메달 행진의 진기록을 쓸 수 있다. 금메달이면 베찰리에 버금가는 '맘 펜서'의 금빛 신화를 찌르게 된다.

 

4회 연속 올림픽 출전은 한국 여자 펜싱 최다 기록. 남자부에선 이미 이상기가 1988년부터 4연속 올림픽에 도전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에페 개인전에서 마침내 한국 펜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스위스의 마르셀 피셔를 꺾고 동메달을 따낸 34세의 '3전4기'가 한국 올림픽 펜싱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남현희는 2012년 런던 대회에서 함께 플뢰레 단체전 우승을 합작한 정길옥(당시 31세)의 여자부 최고령 출전 기록도 경신하게 된다.

◆ 아시아를 호령한 ‘우물한 개구리

한국 올림픽 펜싱 도전은 1964년 시작됐다. 1960년 FIE 가입과 1961년 대한체육회 정식가맹단체 가입, 1962년 전국체전 종목 채택을 마무리한 뒤 서둘러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세계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한국 선수 출전 기록으로 따져보면 여자부는 플뢰레 개인전에만 혼자 출전한 17세의 신광숙이 최연소 출전자. 남자부는 인재 부족으로 신두호 한명석 김만식이 플뢰레, 에페 개인전과 단체전에 모두 출전했다. 신두호만 에페 2회전에 올랐을 뿐 나머지는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두 종목 단체전에만 출전한 김창환은 48세로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웠다.

 

이후 한국은 20년을 기다린 뒤에야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일본이 1952년부터 꾸준히 올림픽 펜싱에 참가했지만 지금껏 금메달 없이 은메달 2개에 그쳤을 정도로 올림픽 펜싱은 아시아의 무덤이었다. 당시 1960~1970년대 경제력이 아시아 정상이었던 일본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터에 장비와 기술 면에서 유럽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시안게임도 1974년 테헤란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뒤늦게 채택됐지만 여전히 유럽 패권주의를 넘는데는 한계가 컸다. 그나마 한국과 중국이 아시안게임에서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통산 금메달을 40-44개로 양분해왔듯이 올림픽에서도 아시아 2강을 형성해왔다.

근대올림픽 초대 종목인 펜싱은 이탈리아(금 48), 프랑스(금 41), 헝가리(금 35)이 3강을 구축해왔다. 남자 47명, 여자 29명이 올림픽 피스트에 섰던 한국은 금 3, 은 2, 동 4개를 수확해 메달랭킹 13위로 중국(금 4, 은 6, 동 2)에 3계단 뒤져 있다.

한국은 1984년부터 남자 에페, 여자 플뢰레 출전을 시작으로 8회 연속 올림픽에 나섰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최국의 이점을 안고 전 종목에 참가했으나 남자는 에페 단체전에서 4년 전과 같은 7위, 여자는 플뢰레 개인전에서 탁정임이 12위를 기록한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1992년, 1996년 각각 남자 플뢰레 단체전 8,7위가 최고 성적이었을 정도로 상위권 도전은 헛찌르기로 끝났다.

◆ 김영호, ‘2전3기’ 아시아 남자선수 펜싱 1호 금메달

중국이 루안 주지에가 1984년 아시아 펜싱 최초 금메달을 따낸 뒤 한국은 마침내 2000년 시드니에서 김영호가 남자 플뢰레 개인전을 석권, 아시아 남자 펜싱 1호 금메달리스트로 탄생했다. 올림픽에서 1992년 37위, 1996년 8위를 기록한 김영호는 1997년 케이프타운 세계선수권 은메달에 이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한 1999년 서울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내면서 자신감을 키웠고 '2전3기' 로 올림픽 금메달 위업을 달성해냈다.

▲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 펜싱 1호이자 아시아 남자 펜싱 최초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레전드 펜서 김영호. [사진=스포츠Q DB]

세계선수권 우승보다 올림픽 금메달이 먼저였다는 게 이색적이다. 1994년 아테네 세계선수권서 첫 메달을 남자 에페 단체전 동메달로 수확한 뒤 8년이 지나서야 포르투갈 세계선수권에서 현희가 최초의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김영호의 금메달이 두꺼운 선수층과 꾸준한 투자에 의한 성공이 아니라 선수 개인의 경험과 투혼의 결실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시드니의 영광 뒤 한국은 2004년 남자 플뢰레 단체전 7위에 그쳐 침체를 맞았지만 2008년부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정진선이 5위로 메달권에 근접해 4년 뒤의 자신의 동메달을 예고했고, 남현희가 은메달을 따내는 등 집중투자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런던의 금빛 찌르기로 르네상스 맞은 ‘펜싱 코리아’

2012년은 한국 펜싱의 전성기였다. 남녀 출전 3개 종목씩 전부 메달을 따냈다. 금 2, 은 1, 동 3개로 이탈리아(금 3, 은 2, 동 2)에 이어 런던 올림픽 펜싱 종합순위 2위로 대도약했으니 세계가 '펜싱 코리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찌르기 공격만 허용하는 에페(전신), 플뢰레(몸통)와 달리 상반신에 대한 베기와 찌르기를 모두 인정하는 사브르가 취약 종목이었는데 런던에서 금메달만 두 개가 나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잠재력 하나만 믿고 추천선수로 발탁된 무명의 김지연이 여자 사브르 개인전 준결승, 결승에 세계 1,2위 미겔 자구니스(미국), 소프야 벨리카야(러시아)를 연파하며 한국 여자 펜싱 1호 금메달을 획득, 런던의 신데렐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흘 뒤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는 구본길 원우영 김정환 오은석이 결승에서 루마니아를 꺾고 한국 펜싱 최초의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해냈다. 1988, 1996년 두 번 단체전에 나서 11개 팀 중에서 연속 11위에 그쳤던 남자 사브르로선 세 번째 도전에서 일궈낸 기적같은 세계정복이었다.

2008년 남자 플뢰에 개인전 9위에 그쳤던 최병철은 런던에서 동메달로 펜싱 코리아 열풍에 가세했다.

◆ 규칙 바꾸게 한 신아람 ‘1초 오심’ 논란

하지만 '멈춰선 1초 오심' 논란으로 신아람이 쏟은 눈물이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 연장 종료 1초를 남기고 브리티 하이데만(독일)의 공격을 세 번이나 막고 네 번째만에 찌르기 공격을 허용했으나 1초가 훨씬 넘은 상태. 마지막 1초가 흘러 5-5로 끝났다면 어드밴티지를 받은 신아람이 결승에 오를 수 있었으나 비디오 판독에도 '1초에 4번 공격'을 인정한 오심은 끝내 번복되지 않았다.

신아람은 오열했다. 한동안 피스트를 떠나지 못했던 억울한 패자에게 런던의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프랑스 AFP통신은 런던의 5대 오심의 하나로 꼽았다.

신아람은 단체전에서 최인정 정효정 최은숙과 투혼을 모아 한국 에페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따내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힐링했다. 이 오심 논란으로 초 단위로 계측하던 경기 시간을 100분의 1초까지 세분화해 적용하도록 국제경기 규칙이 개정됐다.

올림픽에 2008년 여자 사브르 단체전까지 도입해 12개 세부종목 틀을 완성한 FIE가 올림픽의 경우 남녀 금메달 수는 5개씩으로 균형을 잡기로 함에 따라 대회마다 돌아가면서 남녀 한 종목씩 단체전을 거르는 방식이 적용된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선 남자 사브르 단체전과 여자 플뢰레 단체전이 '안식' 종목이 된다.

비인기 종목으로 그늘에서 서러움을 받아온 한국 펜싱이 런던에서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효자종목으로 떠올랐다. 태극전사들의 땀방울을 응원하기 위해 태릉선수촌 곳곳에 걸려 있는 펼침막 '런던의 영광을 리우까지‘라는 문구가 가장 잘 어울리는 종목이 펜싱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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