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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장에 간 피아니스트' 이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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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장에 간 피아니스트' 이진상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25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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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평범을 거부한 피아니스트가 있다. 연주 활동뿐만 아니라 피아노 조율·제작까지 마스터한 이진상(34)이 그 주인공이다. 2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함께 듀오 리사이틀 ‘브람스 포 투’를 마련하는 이진상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게자 안다 콩쿠르 다관왕 주인공…피아노 조율·제작까지 마스터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졸업 후 2003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뉴른베르크 국립음대와 쾰른음대에서 볼프강 만츠와 파벨 길릴로프를 사사하며 석사와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2005년 쾰른 국제 피아노콩쿠르와 2008년 홍콩 국제 피아노콩쿠르 우승을 차지,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200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해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그는 슈만상, 모차르트상, 청중상까지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겨 화제에 올랐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연주 활동이 시작됐다.

더욱이 눈길을 끌었던 점은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에 대한 탐구욕구로 인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피아노 조율을 배웠다. 영화 ‘피아노 마니아’에서 조명된 명 조율사 슈테판 크뉴퍼를 2년 동안 사사했다. 스승과 함께 알프레드 브렌델 등 대가들의 연주 현장을 함께 준비하고 체험했다. 지난해에는 스타인웨이 함부르그 본사 공장에서 피아노 제작과정에 참여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제작과정에 직접 참여한 일은 유례가 없었다. 이진상은 나무를 고르고 다듬는 과정부터 완성된 피아노를 최종 선택, 청중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한 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지속하고 있다.

 

“다른 악기와 달리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며 연주를 할 순 없잖아요. 늘 새로운 피아노와 만나야 하는데 함께 춤출 파트너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자마자 춤추는 것과 똑같은 거죠. 아무리 베스트 컨디션이어도 피아노 상태가 좋지 앟으면 연주력이 떨어지고, 청중도 감동을 얻지 못하거든요. 연주홀이 열악하더라도 피아노 컨디션이 좋으면 소름이 돋을 만한 사운드가 나와요. 정리하자면 명필도 붓을 가려요.(웃음) 그래서 피아노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린 시절 피아노를 시작한 이유도 소리 나는 상자의 구조에 호기심을 느껴서였다. 누나기 치는 피아노를 뜯어보고는 소리를 내는 구조가 신기해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건반을 두들겼다. 그래야 조율사가 방문해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어서였다. 유년기의 호기심은 성인이 돼서도 잦아들지 망치질과 톱질 등 손을 보호해야 하는 피아니스트에겐 꽤나 위험한 작업이었는데도 뛰어들었다. 빈에서는 도제식으로 공부했고, 함부르그에서는 본사 공장에 투입됐다. 3년 동안 공부하며 틈틈이 연주활동을 병행했다.

◆ 9월25일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브람스 듀오 리사이틀’ 진행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완벽한 테크닉을 지닌 그는 독일 클래식 음악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브람스를 신뢰하는 동료 연주자와 함께 터치하게 됐다.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한 김수연은 대가 정경화로부터 ‘차세대 거장’으로 극찬을 들을 만큼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두 사람은 브람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스케르초 C단조, 바이올린 소나타 1, 2, 3번을 협연한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많이 접해왔던 음악이 바로 브람스예요. 언젠가는 브람스 피아노 전곡 연주 도전에 나서려고 계획하고 있었어요. 이번이 그 출발점이 될 거 같네요. 젊은 시절의 브람스는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을 많이 창작했어요. 스승(슈만)의 부인(클라라)을 사랑할 정도로 도발적인 면모도 있고요. 내면이 너무 뜨겁고 에너지가 충만해 복잡하리만치 견고한 구조 안에서 컨트롤하려 했을 거예요. 그의 낭만과 열정, 풍부한 스토리에 끌리게 된 거 같아요.”

 

호흡을 맞출 김수연에 대해서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존경하는 음악가”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독일 정통 클래식 음악을 해온 김수연은 뻥 뚫린 듯 깊고 시원한 연주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크고 넓은 성품을 가졌기에 그런 연주가 나온다. 자신이 표현을 위해 어떤 시도를 할 때 맞춰주는 게 아니라 포용을 해버린다. 지난해 독일 투어를 하며 신뢰를 구축한 두 사람은 김수연이 거주하는 도시 기차역에서 만나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을 일사천리로 정했다.

◆ 끊임없이 새로움 추구 “생얼 연주로 청중의 마음 움직이고파”

2003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 두문불출하며 살았다. 앞만 보며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을 뒤로 한 채 느긋한 삶의 템포, 자연의 주는 싱그러움에 빠져 여유 있게, 욕심 없이 살았다. 재충전을 충분히 했기에 최근 5년 동안 연주 활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다. 요즘 또다시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지내고 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치솟는다.

“대중 앞에 나서서 액티브하게 살다보면 또 쉬어가는 순간이 필요해지죠. 피아노 조율을 공부했던 때는 은둔의 시기였어요. 항상 반복되는 것 같아요. 길게 봤을 때 무엇이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더 좋게 작용할까를 생각하면 선택이 쉬워져요.”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에 병적일 만큼 집착이 강하다. 지금도 하고 싶은 게 셀 수 없이 많다. 피아노는 충분히 쳤다고 판단해 한때 피아노 조율사가 되려고 했으며 음악 엔지니어, 홀 음향제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금은 피아노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고 여기죠. 아마추어처럼 즐기면서 건반을 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해요. 피아니스트가 천직이나 커리어가 되기를 원치 않아요. 거대한 공연장에서 만들어진 기교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생얼로 즐기며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언젠가 다른 삶을 찾고 싶어했을 무렵, 연주장에서 편하게 연주한 적이 있었다. 고뇌와 슬픔 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표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객석으로부터 거대한 감동의 반응이 쏟아졌다. ‘이진상이 달라졌다’는 호평이 솟구쳤다. 이유를 찾아봤다. 자신의 연주에 청중 각자의 고뇌가 투사되면서, 욕구를 대신 표현해주는 이진상에게 감동을 느꼈구나에 도달했다. 쇼킹했고, 연주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축구나 야구선수들이 전지훈련을 가듯 기초부터 다시 연습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다시 해서라도 다음 단계를 위한 업그레이드를 이루고 싶은 거죠.”

◆ 11월 슈만 피아노 소나타 4번 음반녹음…내달 홍콩 리사이틀 예정

‘똘기’ 충만한 젊은 피아니스트는 오는 11월 유럽의 유명 음반레이블 낙소스를 통해 새롭게 발굴된 슈만 피아노 소나타 4번을 레코딩한다. 지난달 예술의전당 ‘토요 콘서트’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데 이어 이번엔 ‘올’ 브람스 듀오 리사이틀을 진행하고, 다음달 홍콩 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편곡집을 청중에게 선사한다.

 

“수많은 연주자들이 연주 외길을 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양한 시도, 활동을 하는 연주자도 있잖아요. 이 모든 선택이 용기라고 봐요. 전 연주 외에 다른 걸 시도했는데 운이 좋게도 원래의 것을 버리지 않았던 거죠.”

[취재후기] 유니크한 사고체계를 갖춘 사람을 만나면 흥미의 촉수가 마구 뻗친다. 두뇌가 비상한 피아니스트 이진상은 한계 없는 상상력,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자신의 삶을 연주한다. 선택과 포기에서 굉장한 결단력을 발휘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용기다. 스스로 자신의 타이틀을 ‘발전해가는 연주자’로 정했다고 활짝 웃었다. 눈부시다. 그는 3년째 빈에 체류하고 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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