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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슈틸리케 데뷔전 쾌승, 약속대로 팬들의 가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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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슈틸리케 데뷔전 쾌승, 약속대로 팬들의 가슴 울렸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10 2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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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베이스 경쟁에서 비롯된 창의적인 플레이...한국축구에 희망 던진 새출발

[천안=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보면서 마음 졸이지 않고 속이 확 풀릴 정도로 통쾌했던 경기를 본 것이 얼마만인가. 물론 약체팀들과 경기는 예외다. 2만5000여 관중들은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모처럼 속시원한 경기를 즐겼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A매치 친선경기에서 전반 27분 김민우, 전반 32분 남태희의 연속골로 파라과이를 2-0으로 꺾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데뷔전을 통쾌한 승리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2만5156명 관중들이 승리를 함께 즐겼다.

년 만에 천안에서 열린 A매치였다. 지난해 10월15일 열렸던 경기에서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은 말리에 3-1로 이긴 이후 A매치가 다시 천안에서 열렸다.

같은 2골차 승리였지만 내용은 약간 달랐다. 전반 27분에 먼저 선제골을 내준 뒤 전반 37분 구자철이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만들고 후반에 2골을 넣어 이긴 경기였다. 당시 이청용이 2골을 넣으며 역전드라마를 이끌어냈다.

▲ [천안=스포츠Q 최대성 기자] 울리 슈틸리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파라과이와 A매치 평가전에서 자신감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

◆ 1년만에 천안 찾아온 대표팀, 이청용의 부활

이날도 막혔던 체증을 풀어준 것은 '블루 드래곤' 이청용이었다. 전반 25분 가까이 어느 한 팀도 슛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김민우가 때린 한국 대표팀의 첫 슛이 선제골로 연결됐다.

그 발판을 놓은 것은 이청용이었다. 상대 수비 실책을 틈타 공을 낚아챈 이청용은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땅볼로 크로스했고 공은 남태희를 지나채 김민우 앞으로 갔다. 김민우는 바로 앞에 파블로 아길라르가 있었지만 뒤로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오른발 슛, 골을 넣었다.

두번째 골의 어시스트는 이용이었지만 이청용이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청용이 빠르게 이용에게 패스를 찔러준 것이 발판이 됐다. 이용은 이청용과 비슷한 지역에서 땅볼 크로스를 올렸고 이번에는 남태희가 슬라이딩을 하며 공을 발에 갖다대 골로 만들어냈다.

이청용은 골을 넣지도 못했고 전반 45분만 뛰고 후반에 손흥민과 교체돼 물러났지만 그가 보여준 45분은 90분 못지 않게 강렬했다. 또 소속팀 볼턴 원더러스가 최하위로 밀려난 상황 속에서도 이청용은 끝까지 대표팀에서 필요한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 [천안=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파라과이와 A매치 평가전에서 시작 전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 "환영합니다 슈틸리케" 화기애애한 데뷔전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 같다. 이날 경기는 슈틸리케 감독의 데뷔전이었다. 마음이 따뜻한 팬들은 슈틸리케 감독이 앞으로도 대표팀을 잘 이끌어달라는 소망과 함께 환영했다.

천안종합운동장 본부석 맞은 편에는 '울리 슈틸리케 환영합니다'라는 의미의 영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문구는 좌석에 들어찬 관중들에게 가려져 경기가 시작됐을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국 팬들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또 2-0으로 전반이 끝난 가운데 하프타임에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환영 꽃다발을 전달하는 행사도 가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꽃을 준 화동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2만5000여 관중들도 슈틸리케 감독의 환영식을 보면서 박수를 보냈다.

역시 선수들은 감독의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전 경기에서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오면서 파라과이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슈틸리케 감독도 경기 내용에 비교적 만족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경기는 흥미로웠다. TV로 경기를 지켜본 시청자들도 공격적인 경기 운영에 흥미로웠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많은 득점 기회가 있었기에 흥미진진한 경기가 됐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 [천안=스포츠Q 최대성 기자] 손흥민(오른쪽)이 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파라과이와 A매치 평가전에서 드리블하며 공격을 전개하고 있다.

◆ 슈틸리케의 제로베이스 경쟁은 무한 신뢰에서 나온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을 맡으면서 "나는 외국인 지도자이기 때문에 아무런 편견이 없다. 경쟁은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제로베이스 경쟁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슈틸리케 감독의 제로베이스 경쟁은 선수들에 대한 무한신뢰에서 비롯됐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은 다소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선발 선수 소개가 될 때 관중들도 다소 의외라며 갸우뚱거렸다. 골키퍼에 김승규가 아닌 김진현이 있는 것도 의외였고 손흥민과 이동국이 모두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도 낯설었다.

이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전에 많은 사항을 고려했다. 90분 뛸 수 있는 체력이 안되는 선수를 선발에서 제외했다"며 "특히 손흥민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분데스리가 정규리그 등 많은 경기를 출전한데다 장시간 비행을 하고 왔기 때문에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 선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선수들의 피로도였다"며 "훈련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떤 선수를 기용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비주전으로 당초 분류됐던 적지 않은 선수들이 전반에 창의적인 플레이를 만들어가면 2골을 만들어냈다. 오히려 손흥민과 이동국 등이 대거 나온 후반에는 슛 숫자는 전반(3개)보다 많은 8개였지만 단 한차례도 파라과이의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주전들에게는 자극제가 되고 비주전들도 열심히 뛰면 자신도 주전급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된다.

슈틸리케 감독의 신뢰에서 나오는 제로베이스 경쟁은 이제부터 본격 시작이다. 그리고 이 경쟁은 대표팀 전력 향상에 플러스 요인이 되고도 남는다.

▲ [천안=스포츠Q 최대성 기자]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파라과이와 A매치 평가전에서 2-0으로 이긴 뒤 환호와 응원을 보내준 관중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플레이, 관중들 매료

파라과이전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 축구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플레이가 발휘됐다는 점이다. 전반에는 주로 이청용의 발 끝에서 공격이 시작돼 파라과이 수비수들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2골이 모두 나왔다.

이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일단 공을 뺏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훈련을 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정신력과 의지를 높이는 것이었다"며 "우루과이전을 보니 공을 소유해도 금방 이를 뺏기는 모습이 나왔다. 그러나 정신력과 의지를 키운 결과 전반전에는 공을 소유한 뒤 뺏기지 않고 방향을 전환하는 플레이가 많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좋은 공격이 나오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가능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후반전에는 선수들이 많이 지쳐있어서 생동감을 잃었고 공을 많이 뺏기면서 창의성이 떨어졌다. 창의성이 떨어지면서 실점할 수 있는 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결국 선수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공을 오래 지키면서 경기를 풀어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동안 한국축구대표팀은 국제 무대에서 공을 소유해도 볼 키핑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공을 상대팀에게 내주고 역습을 맞는 상황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전적으로 물러선 것 역시 공을 오래 지키지 못해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 못했고 허둥지둥 수비를 하다가 그대로 허물어진 탓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대표팀의 현재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하나하나 고쳐가려 하고 있다. 그 일부분이 천안에서 발휘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는 우리 선수들과 함께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경기를 하고 싶다"며 "우리가 매력적이고 활동적인 면모를 보인다면 팬들도 다시 우리와 함께 호흡해 줄 것이다.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데뷔전에서 믿음과 희망으로 팬들 가슴을 울리게 했다.

물론 앞으로 고쳐나갈 것은 많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을 계속 보완해나간다면 앞으로 한국축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안에서 열린 파라과이전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첫 경기였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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