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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적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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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적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30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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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 '거인' '국제시장' '사도' 다양한 아버지 얼굴 조명

[스포츠Q 용원중기자] “우리 아빠, 꼬옥 오래도록 안아드리고 싶었다. 살아 계시다면...나의 아빠여서 감사해요.”(배우 전도연)

“아버지는 로맨티시스트였고 지적인 분이셨다. 과거 아버지가 자신의 능력을 실현시키지 못한 데 대해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감독 김지운)

“아버지를 어려워했고, 서로 대화가 없었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아직도 가슴 아프게 남아 있다.”(배우 설경구)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는 거대한 존재에서 위대한 존재로 변하는 것 같다. 아버지께 생전에 하지 못했던, 내내 마음에 담아뒀던 말을 하고 싶다. 사랑합니다.”(배우 류덕환)

하반기 한국영화가 ‘아버지’에 주목하고 있다.

오늘(10월30일) 관객과 만나는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부터 김태용 감독의 ‘거인’(11월13일 개봉),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12월 개봉) 그리고 내년 개봉 예정인 이준익 감독의 '사도' 등은 그간 현실과 영화에서 소외된 존재로 머물렀던 아버지의 다양한 얼굴을 심도 깊게 조망한다.

▲ '나의 독재자' 속 부자(설경구 박해일)의 과거(사진 위)와 현재

‘나의 독재자’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독재자’로 내비친다. 영화는 1972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중앙정보부가 비밀리에 준비한 리허설에 김일성 대역으로 캐스팅된 단역 연극배우 성근(설경구)과 점점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아버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지닌 채 성장한 아들 태식(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들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성근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싶었으나 배우로서 굴욕의 순간을 아들에게 목격당한 뒤 김일성 역할에 몰입한다. 심지어 월북 해프닝까지 일으켜 자식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22년이 흘러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결혼도, 자식도 거부한 채 양아치처럼 살아가는 태식은 다시금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에 나선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주연 연기를 보고는 전율을 느낀다. 종양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마루 밑에 고이 보관된 자신의 어린 시절 딱지를 보고선 아버지의 진심에 오열을 터뜨린다.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는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건 많았지만 평생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이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평범한’ 아버지다. 한국전쟁 시기 흥남부두 철수 과정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덕수는 50년대엔 동생을 들쳐 업고 학교로 향하고 60년대엔 일자리를 찾기 위해 파독 광부로, 70년대엔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전쟁터로 달려간다. 20대부터 70대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괜찮다”며 웃어 보이고, “다행이다”라며 눈물을 훔치며 현대사를 치열하게 달려온 이야기가 펼쳐진다.

▲ '국제시장'의 황정민(가운데)

‘나의 독재자’와 ‘국제시장’ 속 아버지가 해방 전후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70년대 산업화 시대와 80년대 고도성장 시대의 역군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던 인물이라면 ‘거인’의 아버지는 성장의 시대에 태어나 현재 우리 사회의 중년층을 형성하고 있는 386세대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변변한 학력과 기술, 가족에 대한 책임감조차 없어 자식을 가톨릭단체 산하 위탁시설에 맡기는 철없고 이기적인 가장이다.

청춘의 성장기를 다룬 ‘거인’은 형편이 어려운 집을 떠나 그룹홈에서 하루하루 눈칫밥을 먹으며 버텨가는 열일곱 소년 영재(최우식)의 아픈 현실을 다룬다. 살기 위해 신부를 꿈꾸는 그는 건강을 핑계로 교회를 전전하며 보조금, 후원금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동생마저 자신에게 떠맡기려는 “무책임한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기도한다. 그에게 세상과 아버지(김수현)에 대한 분노는 내면의 상처이자 삶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국제시장’이 고단했던 그 시절 아버지의 보편적 서사인 반면 아들의 성장기 영화 성격을 지닌 ‘나의 독재자’ ‘거인’은 애증으로 점철된 부자관계 속에서 아버지를 바라봄으로써 감정의 너울을 일으킨다.

▲ '거인'의 최우식(왼쪽)과 김수현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그려낼 영화 '사도'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정평이 난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 이후 10년 만에 역사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간 역사 속 비운의 인물로 그려진 사도세자를 주체로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히게 된 이유와 결과,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 접근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송강호가 역경을 뚫고 왕위에 오른 영조 역을 맡아 완벽을 추구하는 강인함 뒤에 인간적 결함을 지닌 캐릭터를 소화한다. 청춘스타 유아인이 어린 시절 유달리 총명해 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나 권력암투의 블랙홀에 빠져들며 아버지와 갈등하게 됨으로써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는 아들 사도세자를 연기한다.

▲ '사도'의 송강호와 유아인

‘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은 “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고, 조금 더 서로가 이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버지와 화해라면 화해, 이해라면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이 작품에 담겼다”고 고백했다.

그간 단어 자체만으로도 감성을 자극하는 어머니 소재 영화는 숱하게 있어 왔으나, 다소 무겁고 불편한 구석이 있는 아버지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견하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영화는 친숙하지만 새로운 소재이자 공감 코드로 다가온다. 존경과 연민, 상처와 트라우마를 동반하는 아버지에 대한 잇따른 호출은 한편으론 리더십 부재 사회 그리고 결핍의 시대가 만들어낸 시그널로도 읽힌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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