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2:11 (금)
최운정 첫 우승으로 추억하는 '열정 대디'들
상태바
최운정 첫 우승으로 추억하는 '열정 대디'들
  • 김한석 기자
  • 승인 2015.07.21 0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김한석 기자] ‘브라보! 아빠의 청춘’ 헌신은 아름답고 그 희생의 힘은 무섭다. 그린에 쏟아부은 내리사랑이 열매 맺는 환희의 순간, 딸도 울고 아빠도 울었다.

최운정(25·볼빅)이 20일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니아의 하이랜드 메도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캐디를 맡은 아버지 최지연(56) 씨도 축하 물세례를 받았다.

LPGA 투어 데뷔 7년, 아니 2부 투어까지 합치면 8년 만에 첫 정상에 오른 최운정이 복받쳐 오르는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자, ‘156전 167기’의 영광을 이루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함께 했던 ‘골프 대디’ 최지연 씨는 자랑스런 딸을 향해 그윽한 미소를 보냈다. 이제 캐디 ‘은퇴’를 선언하려 하고 딸도 은퇴할 것을 권유하지만 좀 더 골프백을 메며 연착륙을 도와야 할 것 같다. 딸이 첫 승을 차지할 경우 캐디를 그만둔다고는 했지만 다른 캐디를 구하는 일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운정은 우승 뒤 인터뷰에서 “전문 캐디가 아니라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마다 아빠가 많이 미안해 하고 힘들어 하셨다”고 애잔한 추억을 떠올렸다. 무관 행진이 이어지자 지난해 캐디를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그 덕에 끝내 아버지는 딸의 첫 승 현장을 지킬 수 있었다.

‘세리 키즈’의 대약진으로 골프 한류가 번성했다. 이날 최운정의 우승으로 2006년, 2009년에 이어 한국선수 LPGA 한 시즌 최다승 타이를 이뤄 더욱 뜻깊다.

골프대디의 원조인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 씨를 추억하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딸의 코치, 운전사, 매니저, 캐디까지 겸하면서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전설을 만들었던 스토리는 이미 LPGA에서는 고전이 됐다. 이제 최운정 부녀도 ‘세리 키즈’ 박인비, 지은희, 신지애, 최나연, 전인지 등 LPGA를 정복한 ‘여풍당당’ 스타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계보를 이으며 고생을 보상받았다.

올해는 남자 쪽 ‘골프대디’도 주목받았다. 지난 5월 유러피언투어 메이저급 BMW PGA 챔피언십대회에서 안병훈이 생애 첫 우승을 신고했다. 골프천재에서 무명선수로, 그리고  다시 메이저스타로 인생 역전을 이룬 안병훈은 한중 탁구 커플 안재형·자오즈민의 외아들. 그 천재성을 다시 입증하는 데는 아버지 안재형의 헌신이 절대적이었다. 2005년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난 아들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자 이듬해 막 지휘봉을 잡았던 대한항공 감독직도 던지고 아들의 매니저, 운전기사, 캐디 등 1인 다역을 맡아 뒷바라지했다.

이렇듯 한국 골프대디의 열성은 세계골프계에도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종목의 대표적인 ‘열정 대디’는 누가 있었을까.

축구에선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가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정육점을 운영했다. 아들을 늘 가까이서 지켜보고 고기도 실컷 먹이기 위해서였다. 작은 키를 키울 수 있을까 해서 전국을 돌며 개구리를 잡아 먹이기도 했으니 ‘두 개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강철 체력은 아버지의 그런 열정 덕에 길러질 수 있었다. 1만 마리가 넘는 뱀을 직접 달여 먹인 것으로 유명한 허재 전 KCC 감독의 아버지 허준(작고)씨의 열성은 그 원조였는지도 모른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는 축구인 출신으로 혹독한 기본기 훈련을 직접 도맡아 ‘손세이셔널’을 완성한 것도 유명한 뒷바라지 사례다.

야구에서는 광속구 투수 고(故)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작고)씨가 단연 유명하다. 자택 뒤에 연습장을 만들어 훈련환경을 마련했고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보며 꼼꼼하게 해설을 메모해 연구한 것을 토대로 아들을 직접 가르쳤던 코치이기도 했다.

이렇듯 대한민국 스포츠의 힘은 청춘을 기꺼이 희생한 ‘열정 대디’들이 있기에 더욱 빛난다. 결코 희생이나 헌신이라는 헌사를 사양하며 자식의 성장을 위해 묵묵히 고통의 시간을 견뎌온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 스포츠의 감동 스토리는 그만큼 풍성해지는 것이리라.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