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16 17:56 (목)
오재원 김재호 오재일 정수빈 분투, '어쩌면 마지막일 추억을 위해' [SQ포커스]
상태바
오재원 김재호 오재일 정수빈 분투, '어쩌면 마지막일 추억을 위해'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1.05 12: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시즌 내내 힘을 쓰지 못하던 오재원(35)이 가을야구를 맞아 놀랍게도 부활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동료들과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기 위해 더욱 힘을 냈다.

오재원은 4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0 신한은행 SOL(쏠)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9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 3타수 2안타 2타점 맹활약하며 팀에 4-0 완승을 안겼다.

김재호(35), 오재일(34), 정수빈, 허경민(이상 30)도 힘을 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올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선수들이었다.

두산 베어스 오재원이 4일 LG 트윈스와 2020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준PO 1차전 4회말 1타점 2루타를 날린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올 시즌 타율 0.232로 부진했던 오재원은 최주환이 족저근막염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해 가을야구 첫 경기 선발 2루수로 낙점받았다. 최주환이 몸 상태가 온전치 않고 이날 선발 투수가 워낙 컨디션이 좋은 크리스 플렉센이었기에 김태형 감독은 적어도 수비에선 제 몫을 해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재원을 택했다.

수비는 역시 흠잡을 게 없었다. 4회초 1루 주자 채은성의 2루 도루를 깔끔히 저지할 수 있었던 건 박세혁의 날카로운 송구만큼이나 오재원의 감각적인 태그 때문이기도 했다.

더 놀라운 건 공격이었다. 시즌 내내 힘을 쓰지 못했던 오재원은 팀이 2-0으로 앞서가던 4회초 1사 1,3루에서 이민호의 슬라이더를 힘껏 잡아당겼다. 타구가 우중간으로 뻗는 걸 확인한 오재원은 배트를 힘껏 던지고 포효했다. 

그러나 결과는 담장을 맞고 나오는 2루타. 타구 방향과 상황, ‘빠던(배트플립)’마저 2015년 세계소프트볼야구연맹(WSBC) 프리미어12 일본과 결승전을 떠올리게 했다. 타구는 담장을 넘지 못했지만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 안타와 세리머니를 기점으로 경기 흐름은 완전히 두산 쪽으로 기울었다.

경기 후 오재원은 “사실 넘어가는 줄 알았다. 벌써 몇 번째 같은 위치로만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고 옆에 있던 플렉센은 “웨이트를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장난을 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재원은 6회에도 쐐기 적시타를 날리며 맹활약했다.

 

플렉센이 106구 11탈삼진 무실점 호투하고 내려간 6회. 오재원은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1사 2루로 다시 밥상이 차려졌고 이번엔 최성훈을 상대로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깔끔한 좌전 안타를 날렸다.

지난해에도 시즌 땐 0.164로 최악의 흐름을 보여 고개를 떨군 오재원은 한국시리즈에서 10타수 5안타로 맹활약, 팀에 6번째 우승을 안긴 뒤 펑펑 울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고 다시 한 번 두산의 선택을 받았음에도 저조한 시즌 성적에 어깨를 펴지 못하던 그였다. 가을야구 첫 경기부터 살아난 타격에 팬들은 “가을야구를 위해 힘을 아껴둔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를 하며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재원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선수들의 활약도 빛났다. 오재원의 ‘영혼의 키스톤 콤비’ 김재호는 4회 결정적인 슬래시 앤드 런 작전을 완벽히 성공시켰다. 어려운 타격이지만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김태형 감독의 믿음이 있었다. 오재원의 적시타의 발판을 놓은 장면이었다. 수비에서도 완벽했다.

5회말 진해수의 낮은 슬라이더를 걷어내 중전안타를 만들어 낸 오재일의 집중력도 돋보였다. 완벽히 제구된 공이었지만 놀라운 집중력이 동반된 배트 컨트롤로 진해수를 좌절케 했다. 이어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2루 도루까지 성공시켰다.

‘가을남자’ 정수빈도 2회 2사에서 기습 번트 후 1루에 몸을 날려 들어가 내야안타를 기록했다. 특유의 센스와 허슬플레이가 녹아 든 산물이었다.

오재일은 5회 절묘한 안타 이후 상대의 허점을 틈타 2루 도루까지 성공했다.

 

톱타자로 나선 허경민의 투혼도 돋보였다. 1회와 4회 140㎞ 후반대 이민호의 강력한 속구에 맞았다. 4회엔 몸 상태를 체크하러 나온 스태프를 완강하게 돌려보내며 경기 출전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줬다.

두산은 올 가을야구 남다른 동기가 있다. 허경민과 오재일, 김재호, 정수빈, 최주환, 유희관 등 주전급 절반 가량이 FA 자격을 얻는 것. 김재환 또한 메이저리그 진출에 재도전한다.

그러나 모기업이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고 두산이 과거 대형 내부 FA 민병헌(롯데), 김현수(LG), 양의지(NC)를 잡지 않았던 걸 고려하면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날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에 선수단은 오히려 똘똘 뭉치고 있다. 오재원은 “우리끼리 마지막으로 이 멤버로 뛴다고 장난식으로 말한다”며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 안 해도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배영수의 마지막이 예정된 상황이었고 김재환이 빅리그 도전을 외친 상황. 올 시즌 후 대거 FA로 풀린다는 것도 이미 확정돼 있었기에 미리 이별을 준비하려는 듯 선수들은 ‘추억’이라는 말에 힘을 줬다. 그리고는 안타를 치거나 승리할 때마다 현재를 추억하자는 의미로 셀카 세리머니를 했다. 우승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재원(왼쪽)이 수비 과정에서 몸은 날린 허경민을 격려하고 있다.

 

올 시즌 아직까지 그런 세리머니는 없다. 마지막이라고 단언하기도 힘들다. 아직 시즌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행보에 대해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선수단 그대로 다시 가을야구에 나설 수 없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에 묵묵히 어느 때보다 더욱 열심히 뛰고 있다.

오재원도 마찬가지다. 주장 타이틀은 벗었지만 여전히 팀원을 다독이는 건 그의 임무 중 하나다. “형이다 보니 그런 마음가짐은 주장일 때와 비슷하다. 나나 (김)재호나 이런 경기일수록 힘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그런 게 중요하다”며 “재호도 그런 에너지가 크고 (오)재일이나 (김)재환이, (정)수빈이, (박)건우 등 이젠 눈빛만 봐도 안다. 다들 책임감이 크다”고 말했다.

2015년을 떠올린다. 당시 3위로 ‘도장깨기’에 성공하며 결국 정상에 올랐다. 오재원은 “당시와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다. 2위팀, 1위팀 에너지가 어떨지 생각하기보다 당장 내일 경기가 중요하다”며 “새 팀을 만날 때 다 생소한 느낌이다. 이 분위기를 살려간다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라고 현재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3판2선승제로 진행되는 준PO에서 1차전 승리팀은 16차례 모두 PO로 향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고 PO에 진출한다고 해도 우승까진 가야할 길이 멀다. 어느 때보다 간절한 두산은 많은 고비를 넘어 한국시리즈 2연패라는 원대한 꿈을 이뤄낼 수 있을까.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