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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에 투영된 진정한 '에이스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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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에 투영된 진정한 '에이스의 자격'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2.19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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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뛰어난 지구력 바탕으로 한 막판 스퍼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승부사 기질 탁월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은 위기에 빠졌던 한국 쇼트트랙에 감동과 눈물의 드라마를 선사했다. 파벌 파문으로 홍역을 겪고 있는데다 '역대 최약체'로 평가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노골드'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금메달이라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 마지막을 장식한 선수는 바로 '막내' 심석희(17·세화여고)였다.

심석희가 경이적인 마지막 스퍼트로 중국 선수를 멋지게 추월하는 모습은 국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교생의 신분으로 이미 세계 정상권에 올라선 그를 두고 이제는 '여자 쇼트트랙 차세대 에이스'로 평가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성적을 올리기만 하는 것은 에이스가 아니라 단지 한 명의 스타일 뿐이다.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심석희를 통해 진정한 '에이스의 자격'을 기승전결로 풀어본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아닌 '기승전결(技勝戰決)'이다.

▲ 심석희가 18일 러시아 소치에서 진행된 메달 수여식이 끝난 뒤 자신이 따낸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금메달을 깨물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 기(技) - 혹독한 훈련으로 기술과 힘을 겸비

에이스는 역시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기술과 힘이 필요하다. 축구에서 에이스 공격수는 역시 득점을 많이 하는 기술과 감각이 필요할 것이고 야구에서 에이스 투수는  온갖 구종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찔러넣을 수 있는 제구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쇼트트랙도 다르지 않다. 탁월한 레이스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이 제대로 구사되려면 역시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심석희는 힘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석희는 173cm에 56kg의 호리호리한 모습으로 쇼트트랙에서 보기 드문 장신 스케이터다. 선수라기보다는 패션모델에 더 가깝게도 보인다.

특히 쇼트트랙은 코너를 자주 돌기 때문에 장신보다는 단신이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게다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 선수와 부딪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키가 커서 근력과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한동안 들어야 했다.

심석희는 이를 혹독한 훈련으로 이겨냈다. 여자 3000m 계주에서 아웃코스로 중국 선수를 추월할 수 있었던 것은 근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순간적인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구력을 키우고 순간적인 파워를 내려면 평소에 웨이트 트레이닝과 순발력 훈련을 꾸준히 동시에 해야 한다.

체육과학연구원 문영진 박사는 "순간적인 파워를 내려면 힘과 속도를 모두 높여야 한다. 하지만 힘을 키우기 위해 근력을 키우는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다보면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스피드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며 "역도 선수도 웨이트 트레이닝 외에도 단번에 바벨을 들어올릴 수 있는 순간 파워 능력을 높이기 위해 스피드 능력도 병행한다. 쇼트트랙 선수의 경우 튜브를 이용해 느린 동작으로 근력을 키움과 동시에 발을 빨리 움직이는 방법으로 속도를 높인다"고 말한다.

▲ 심석희가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벌어진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에서 역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승(勝) -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경기할 때는 승부사로 돌변

에이스는 승부사다. 언제나 자신이 최고라는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해야만 승부사로 돌변할 수 있다. 평소에는 순둥이 같다가도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무서운 집중력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승부사가 되는 선수가 진정한 에이스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가 가장 대표적인 에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기할 때는 오직 투구 하나하나에만 집중하지만 평소 생활은 쾌활하기 그지 없다. 또 난민을 성심성의껏 돕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심석희도 이런 점에서 닮았다. 심석희는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는 다른 여고생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경기에만 나서면 강심장으로 돌변한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심석희가 경기장에만 나서면 승부사가 되는 것은 그동안 수차례 세계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마디로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몇몇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곧바로 보완해 다시 승리로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심석희가 여자 1500m에서 막판에 역전당해 은메달에 그친지 사흘만에 오히려 상대를 추월해 금메달을 딴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심석희는 여자 1500m에서 막판 저우양(23·중국)의 노련한 레이스 운영에 추월당했지만 여자 3000m 계주에서는 아웃 코스를 이용해 오히려 역전에 성공, 금메달을 따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지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의 원천으로 삼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에이스다.

▲ 심석희가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벌어진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에서 막판 스퍼트로 역전을 거두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전(戰) - 전쟁에 임하는 마음,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자세

에이스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늘 도전에 직면하고 위기의 순간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진정한 에이스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죽기살기로, 오기로 덤비는 자세가 필요하다.

KT 스포츠단 심리 자문위원인 김병현 박사는 "선수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죽기살기, 오기로 덤비거나 아예 마음 편하게 달관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심석희는 3000m 계주에서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며 "아웃코스로 돌아가는 작전은 보통 같으면 성공하기 어렵지만 오기로 똘똘 뭉쳤기에 순간적으로 내재됐던 모든 힘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영웅은 난세에서 나온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에이스는 위기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심석희가 에이스로 떠오른 것도 다르지 않다.

한국 쇼트트랙은 소치 올림픽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남자 쇼트트랙은 '노 골드' 위기에 직면했고 여자 역시 은메달과 동메달을 하나씩 가져왔을 뿐이다. 그 사이 중국이 2개의 금메달을 모두 가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금메달을 견인하는 모습은 역시 위기를 극복해낸 에이스의 모습 그대로다.

◆ 결(決) -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결단력

에이스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흔들려서는 절대로 선수로서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한번 내려진 결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설령 그 결정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쿨하게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심석희는 당찬 결단력도 가지고 있다. 보통 같으면 힘이 떨어진 막판에 아웃 코스로 추월하는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심석희는 본능적으로 떠오른 영감을 바탕으로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강한 결단력의 소유자다.

김병현 박사는 "한 번 결정하면 무조건 밀고 나가는 성격은 위기의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며 "수많은 선수들이 위기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끝나곤 한다. 하지만 심석희는 한번 마음 먹으면 이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웃 코스로 추월한다는 결단력이 바로 승리를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 심석희가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가진 훈련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심석희는 평소에는 이처럼 환하게 미소짓는 여고생이지만 경기에서는 무서운 승부사로 변한다. [사진=뉴시스]

◆ 플러스 알파 - 어린 나이, 롱런 가능성 충분

에이스는 오래 가야 한다. 물론 매우 짧은 기간에 강한 충격을 주는 선수도 '전설의 에이스'로 남을 수 있겠지만 오랜 기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선수가 진정한 에이스다.

롱런하려면 역시 어렸을 때 정상의 위치에 오르는 것이 유리하다. 역대 한국 쇼트트랙 에이스의 계보를 보더라도 모두 고등학생 때 정상에 올랐다. 전이경(38)이 그랬고 진선유(26)도 마찬가지였다.

전이경은 '낭랑 18세'이던 지난 1994년 릴리함메르 대회에 출전, 여자 10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김소희(36), 원혜경(35), 김윤미(34) 등과 함께 출전한 여자 3000m 계주 우승도 이끌었다. 전이경은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도 같은 종목 2관왕에 올랐고 500m 동메달까지 차지, 5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이경의 계보를 이은 진선유도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1000m와 1500m, 3000m 계주를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심석희는 '롱런'의 가능성이 있다. 심석희는 전이경, 진선유가 금메달을 따냈을 때보다 한 살이 어리다.

심석희는 어린 나이답지않게 당차고 기술도 뛰어나 평창을 넘어서 2022년 대회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 2022년이라고 해도 겨우 25세에 불과하다. 이번 소치 대회에 함께 출전한 '맏언니' 조해리(28·고양시청)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다. 몸 관리만 잘하면 얼마든지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뛸 수 있다는 얘기다.

심석희가 대표팀에서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올림픽 최다 금메달도 노려볼 만하다. 현재의 상승세를 발판으로 오는 22일 여자 1000m 종목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평창, 늦어도 2022년 대회에서라도 현재 전이경, 왕멍, 안현수가 갖고 있는 쇼트트랙 개인 최다 금메달 기록도 넘어설 수 있다. 17세 심석희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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