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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경험 수치화하는 안민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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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경험 수치화하는 안민정 작가
  • 박미례 객원기자
  • 승인 2014.05.1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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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미례 객원기자] 백스테이지 0914갤러리에서 ‘가방 방정식‘ 전시를 개최하고 있는 안민정(33) 작가는 개인의 경험 세계를 수학이나 과학, 건축도면에 쓰이는 기호를 찾아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우리가 못 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 그 속의 관계와 경험을 수치화해 표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 '가방 방정식' 전시장에서 안 작가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0년 전쯤 우연히 웹사이트를 통해 어느 건축가의 도면을 보고 감명받은 적이 있어요. 전체적인 형상도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수많은 선과 기호들이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로서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정보를 담아 큰 조형을 만들어낸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그는 8년 전 학교에서 문득 ‘나를 자로 재듯 도면에 그려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자신만의 기호를 찾아 자화상을 그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도식화된 기호를 통해 수치화해 보았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돼 지금의 일상 속 이야기를 기호를 통해 공식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 '뽀뽀의 힘'

“특히나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자주 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흥미를 느껴요. 작품 '뽀뽀의 힘' '나의 마지막 고무줄놀이' '나의 피아노를 치는 방법' '엄마손 사용법', '6인 가족도' 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곤 합니다.

그 중 '뽀뽀의 힘'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엄마의 뽀뽀를 받아야지만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응석받이 막내딸이던 작가의 기억을 되살린 작업이다.

“뉴턴의 운동 제2법칙 ‘F=ma'라는 공식을 대입시킨 것인데 사람을 움직이도록 하는 게 단순히 음식물을 통한 열량에너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 즉 엄마의 '뽀뽀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업이죠. 사람들은 처음 제 그림을 보면 객관적인 사실을 담은 복잡하고 중요한 연구 자료처럼, 어렵고 차갑게 여겨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되죠. 작품을 한참 보다 피식 웃곤 하는데 제가 원하는 반응이기도 해요.”

▲ '자화상'

이미지이건 이야기이건 재미있고, 그가 경험한 기억이 흥미로운 것이라면 흔쾌히 작업의 소재가 된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 만들기는 안작가에게 가장 친근하고 재미있는 놀이였다고 말한다.

“웹(web)을 접하면서 지금의 작업 스타일이 만들어졌어요. 웹을 통해 평소 표현하고 싶었던 글이나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했죠. 컴퓨터란 매체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수월하고, 시공간의 제약도 거의 없죠. 제 홈페이지는 누구나 손쉽게 작품을 볼 수 있는 열린 전시공간이에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잘 다루게 됐고, 제 미술적 영감을 컴퓨터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작가가 차용하고 있는 건축도면이나 수학도면에 쓰이는 무수한 기호나 선들은 컴퓨터가 가진 가장 정확하고 명료한 표현 방식이다. 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에게 컴퓨터는 붓과 팔레트처럼 작업 의도를 드러내는 최상의 표현 도구가 된다.

▲ '작업중'

“사람들이 제 작품을 통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과 자신만의 감성에 귀 기울이길 바래요. 하지만 요즘 같은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서는 인간의 개별적 감수성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죠. 바람이 있다면 제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간직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거예요.”

올해부터 국립 청주 레지던시에서 오롯이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안 작가는 대화 내내 '사랑'이라는 말을 자주 거론했다. 그의 작품은 차가운 기계의 문법이 아니라, 그가 이 세상과 맺고 있는 따뚯한 관계망처럼 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계량할 순 없으나 소중한 관계를 보여주는 도상이 힘있게 다가왔다.

▲ '六人家族圖(육인가족도)' 어머니는 명절에 모인 가족들에게 그동안 키우신 알로에를 나눠 주셨다.

 

안민정 작가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대학원 졸업 후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들어 국립 청주 레지던시에서 작업 중이며 다수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여 왔다. 현재 갤러리0914에서 '가방 방정식'전을 진행하고 있다. 과학과 수학이라는 설득력 있는 증명 방식을 차용해 보이지 않는 것의 생명력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수학과 순수예술을 접목시키는 기법을 이용해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고 싶어 한다. www.myartda.com

▲ 안민정 작가
▲ '메뉴얼1-나의 피아노를 사용하는 방법'

redfootball@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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