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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둑에 길을 묻다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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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둑에 길을 묻다 '스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12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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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고 조세래 시나리오 작가 겸 소설가의 감독 데뷔작이자 유작인 ‘스톤’(12일 개봉)은 세대를 달리하는 두 남자가 바둑을 통해 삶의 길을 찾아가는 내용을 잔잔하고도 힘 있게 그려낸다. 영화와 바둑에 탐닉하며 인생을 성찰했던 감독의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의 20대 청년 민수(조동인)는 천재적인 바둑 실력을 지녔지만 프로입단에 실패 후 별다른 목표 없이 내기 바둑판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30여 년 동안 조직에 몸담아온 보스 남해(김뢰하)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며 조용히 은퇴를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가본 바둑기원에서 우연히 민수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마주한다.

 

자기는 인생에 실패했어도 젊은 민수만은 인생의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 바둑선생으로 모시고 프로 입단대회 출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민수가 이에 응하면 조직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 사업을 포기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조직은 그런 남해를 가만두려 하지 않는다.

‘스톤’의 미덕은 한국영화에서 낯선 바둑이란 소재를 건져올려 단단하게 드라마를 구축하는 점이다. 인생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는 바둑은 꿈 그리고 성공과 좌절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낸다.

이런 내용을 담은 영화들이 난해하게 읽혀지곤 하지만 ‘스톤’은 출구 없는 삶을 살아가는 20대 청춘과 회한으로 얼룩진 삶을 되돌아보는 40대 중년을 대조시키며 그들의 사연에 집중하게 한다. 또한 바둑이 지닌 치열한 두뇌싸움을 정적이면서도 긴 시퀀스로 잡아내거나 조직 내부의 권력다툼을 바튼 호흡으로 찍어가며 스릴을 안겨준다.

“인생이 바둑이라면 첫수부터 다시 두고 싶다” “바둑도 인생도 끝내기가 제일 어려운 겁니다” “바둑은 서로가 한 수씩 두는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이잖아요” “이세돌만 프로기사고 박지성이만 축구선수냐? 다른 축구선수는 선수도 아니야?”와 같은 대사는 불공정이 부끄럽지 않게 된 세상, 차별과 경쟁이 관통하는 승자독식의 시대 정서를 건드린다.

▲ 남해 역 김뢰하(사진 위)와 민수 역 조동인

민수를 맡은 조동인은 심지 굳은 청춘을 예리하게 그려내며 신인답지 않은 면모를 보여준다. 유년기부터 익혀온 출중한 바둑실력을 바탕으로 프로기사 못지않은 대국장면과 돌 집는 손모양의 디테일까지 살려냈다. 이 작품의 감정선을 책임진 김뢰하는 중년 남자의 회한과 고독을 깊이 있게 표현, 조직보스 연기의 새 지평을 연다. 최후의 순간, 민수를 일별하는 그 눈빛만으로도 왜 그가 ‘명품 배우’인지를 입증한다.

거대 자본이 투입돼 압도적인 스케일과 볼거리가 넘쳐나는 영화가 범람하는 환경에서 작은 자본을 가지고도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의 힘만으로 러닝타임 1시간49분을 장악하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잔재주 부리거나 흐트러지는 법 없이 한 수, 한 수 바둑판에 돌을 올려놓듯 펼쳐가는 정공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자 위로의 ‘한 수’가 될 듯하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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