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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호' 최민식 "배우,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해야 하는 직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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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호' 최민식 "배우,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해야 하는 직업" ②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2.18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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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원호성 기자·사진 이상민 기자] 물욕(物慾)을 버리고 자연의 순리에 몸을 내맡기고 살아가던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을 연기한 후유증일까? '대호'를 어깨에서 내려놓은 배우 최민식의 이야기에서는 세상만사를 해탈한 도인의 기운까지 느껴졌다.

지난해 '명량'에서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며 전국 1700만 관객을 동원해 아마도 한동안 결코 깨지기 힘들 역대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만들어냈던 배우 최민식이 1년 반만에 신작 '대호'를 들고 돌아왔다.

묵직한 갑옷을 걸치고 바다 저편을 매섭게 노려보던 최민식의 모습은 이제 허름한 옷을 걸치고 눈 덮인 지리산 깊은 산골을 누비며 호랑이를 찾아다니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이 되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 영화 '대호' 최민식

◆ 최민식이 생각한 '대호', "결과적으로 항일영화가 아니냐고?"

영화 '대호'는 지리산 산군(山君)이라 불리던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인간과 호랑이의 대결이 펼쳐지는 괴수영화의 변종일 것이라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영화의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고 호랑이가 조선민족의 자존심과 얼을 상징하니,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 대표되는 얼을 일본군으로부터 지켜내는 항일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의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고, 영화에서도 마에조노(오스기 렌 분) 같은 일본군과 류(정석원 분)처럼 일본에 빌붙어서 사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이야기도 충분히 나올 수 있죠. 그런 해석도 가능해요. 우리가 영화를 만들면서 의도를 했건 안 했건, 호랑이를 잡으려는 세력이 있고, '천만덕'은 나름 그에 반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대비가 되다보니 관객들은 항일의 정서가 깔려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최민식의 말처럼 '대호'는 항일영화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대호'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호'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천만덕'은 일본군이 조선의 정기라 할 수 있는 호랑이를 잡는다는 것이 싫어서 일본군의 호랑이 사냥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호'는 항일(抗日)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다.

▲ 영화 '대호' 최민식

"결과적으로는 항일영화가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항일이라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일본인들에게 한 방을 먹이고 지켜낼 건 지켜내는 결말이 되어야 되는데,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천만덕'은 마지막에 호랑이 사냥에 나서는 것도 일본을 위해 총을 드는 것도 아니고, 그가 호랑이를 안 잡는 이유도 일본을 위해 호랑이를 잡기 싫어서가 아닌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잖아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천만덕의 행위가 결국 마에조노의 욕망을 좌절시킨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항일 메시지는 아니지만, 천만덕이라는 한 명의 인간이 지켜야할 가치를 지키는 태도로 결국 마에조노의 그릇된 욕망을 차단할 수 있었으니 항일로 해석할 부분도 있다는 거죠."

"산골에서 하루 사냥 나가서 짐승을 잡으면 그걸 저잣거리에 팔아서 입에 풀칠이나 하는 민초들이 그렇게 누구나 큰 뜻을 품지는 않아요. 전 일제강점기에도 대다수 민초들이 세상이 바뀌어도 무기력하게 순응하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천만덕' 역시 그런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에요. 천만덕은 평생 총을 잡고 산에서 살면서 살생을 통해 얻어지는 업(業)이 많아요. 그래서 결국 오발로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쏴죽이게 되고, 아무리 말 못하는 미물이라고 해도 생목숨을 끊는 짓을 평생 하고 살았으니 내 손에 업이 돌아온다는 이치를 배우게 된 사람이죠. 아들이 걱정하며 기다릴 때도 "애비가 뭐 독립운동이라도 했냐?"라고 하잖아요. 천만덕은 그런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어요. 다만 살아오면서 자연에서 취할 만큼 취하고 삶을 연명하는 우리네 삶의 방식을 지키고 살아왔고, 그런 모습이 일본군의 그릇된 욕망과 탐욕과 비교되며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는 것 뿐이죠."

▲ 영화 '대호' 최민식

◆ 최민식이 생각한 배우, "저는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연기를 해야할 때가 오면 배우를 그만둘 것 같아요"

영화 한 편이 크게 성공하고 나면 배우는 차기작을 고르기가 쉽지 않아진다. 영화 한 편의 실패가 자칫 배우의 연기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에 현재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 한 편 한 편 작품선택이 더욱 신중해지고,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영화나 힘들고도 얻을 것이 적어보이는 영화에는 출연을 기피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전국 1700만 관객으로 역대 흥행 1위 신기록을 세운 '명량' 이후 차기작으로 '대호'를 선택한 최민식의 선택은 의외였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며 다진 이미지와 '대호'에서 그가 연기하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은 둘 다 조선시대 사람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캐릭터의 외형적인 면은 양 극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호'는 시나리오만 봐도 설산을 몇 달 동안 헤매야 하는 강행군이 예상되는 작품이기도 했고 말이다.

"다음 출연작을 고르는데 '명량'의 흥행을 전혀 신경을 안 쓴다고 제가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저는 개인의 몸이 아니라 소속사도 있고 하니까요. 그래도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언제나 하나예요. 주변의 말들을 물론 참고는 하지만, 작품을 선택할 때는 철저히 제가 하고 싶어야 해요. 제가 연기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지만, 아직까지 이 직업을 그렇게 100% 호구지책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저는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연기를 해야할 때가 오면 배우를 그만둘 것 같아요. 멋져보이려고 하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제 소박한 소신이에요. 내가 하기 싫은데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겠어요?"

"'명량' 이후 그런 것도 있어요. 대중들이 배우 최민식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기대하는 것. 그런데 배우가 이미지에 갇혀서 내가 저런 역할을 하면 광고에 타격이 있을 것 같고, 이런 식으로 계산을 돌리면 안 돼요. 내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악마를 보았다' 같은 영화는 못 했지요. 또 1700만 관객을 넘어야지 세간에 면이 선다고 생각하면 '대호'를 선택하면 안 됐지요. 저는 그런 프레임 안에 갇히는 게 싫어요. 반항심이죠. 알게 모르게 또라이 기질이라고 해야 되나요? 저도 인간이고 대중 앞에 서는 놈인데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대중들의 시선이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 영화 '대호' 최민식

그의 말처럼 배우 최민식은 그동안 대중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다른 작품으로 연기 승부를 거는 일이 많았다. '쉬리'의 박무영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 이후 그는 '해피엔드'를 선택했고, '올드보이'의 강렬한 연기 이후 '꽃피는 봄이 오면'처럼 차분한 영화를 선택하기도 했다.

또한 '악마를 보았다'는 최민식이 직접 시나리오를 들고 다닐 정도로 의욕을 보이며 파격적인 연쇄살인마 연기를 해냈고, '범죄와의 전쟁'과 '신세계' 이후 느닷없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루시'를 찍더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명량'을 촬영했다. 그의 말처럼 일관성은 전혀 없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을 연기의 퍼레이드인 이 필모그라피는 철저히 최민식 개인이 하고 싶었기에 선택한 작품들이었다.

"제 인생의 목표는 직업이 배우니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하는 거죠. 아무리 생각이 좋아도 배우는 연기 못 하면 끝나는 거예요.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하고, 이게 내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작업이에요. 배우라는 것이 사람이 사는 모양새를 다루는 직업이니, 철학과 가치관, 그리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사람을 연구해야 돼요. 이게 끝이 날 수가 있어요? 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인데. 나쁜 놈이 있어도 배우는 액면가 그대로 나쁜 놈이라고 보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 생각하면서 그것을 찾아야 돼요. 심리학자만 그런 걸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배우들도 해야 돼요. 이게 공부를 하려고 하면 정말 밑도 끝도 없어요."

"전 운 좋게 훌륭한 선생님들한테 가르침도 받고, 학교에서 좋은 선후배들 만나서 연극작업을 하며 기초공사를 잘 했어요. 그런데 건물도 낡으면 벽돌도 허물어지고 틈도 갈라지는 것처럼, 배우도 대중문화에서 활동하다 보면 많이 부서져요. 그렇게 나이는 먹어가고 고참 소리를 듣게 될 때 날 버티게 하는 것은 내 주관이에요. 저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스님들이 절에서 목탁을 두드리거나 신부님이 기도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저한테 왜 연기를 하냐고 물어본다고 생각하면 내가 어떤 배우가 되려고 한 건지 답이 나와요. 그럼 내가 얼마나 원래 생각한 배우에서 비틀리고 굴절됐는지를 알 수 있고, 그럼 다시 펴고 닦아서 원래대로 해야죠. 그걸 고치지 않고 계속 비뚤어진 채로 놔두면 나중에는 고칠 수가 없어요. 배우란 그런 직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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