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24 22:45 (금)
즐기는 올림픽! '우리 선수들이 달라졌어요'
상태바
즐기는 올림픽! '우리 선수들이 달라졌어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2.14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를 즐길 줄 아는 그대들이 진정한 챔피언'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불과 10여년 전, 아니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서 은메달 또는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굳이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시상대에 오르면 환호하고 활짝 웃어보인다. 메달을 따지 않았어도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국위를 선양하고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구세대의 시각으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 특히 신세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선수들의 '쿨'해진 모습에 박수치고 찬사를 보낸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 이겨야 하는 스포츠에서 즐기는 스포츠로

수영의 박태환(25)은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꼭 헤드폰을 끼고 나온다.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 긴장감을 푸는 '마인드 컨트롤'이다. 예전 사람들 같으면 '경기에 집중해야지, 무슨 음악을 듣고 나오느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2010 밴쿠버올림픽에 이어 소치 동계올림픽에 나선 태극전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인터뷰를 할 때 '금메달을 목표로 하겠다', '열심히 뛰어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판에 박힌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즐기겠다'는 얘기가 종종 나온다.

이상화(25)가 좋은 예다. 월드컵에서 계속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가장 유력한 소치 금메달 후보로 거론됐지만 정작 그는 단 한번도 소치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화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1000m는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했다. 자신의 주종목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미 자신이 원했던 메달을 땄기 때문에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버린 것이다. 실제로 이상화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미 금메달을 얻어서 그렇게 심한 부담감은 없다. 축제 분위기에서 재밌게 즐기고 가고 싶다"며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김연아(24)도 마찬가지다. 김연아는 소치로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 기자회견에서 "두번째 올림픽이기도 하고 마지막 대회인만큼 만족스러운 경기를 하겠다. 후배들과 함께 즐겁게 올림픽을 경험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일단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그날의 경기에만 집중하겠다. 결과보다는 기분좋게 끝을 맺고 오겠다"고 말했다.

주위에서는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 피겨 여제의 재림 등 시끌벅적하지만 정작 김연아는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경기에만 집중하고 또 즐기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지적하고 걱정하고 있는 러시아의 홈 텃세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여자 쇼트트랙 500m에서 16년만에 동메달을 딴 박승희(22)도 상대 선수에 걸려 넘어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예쁜 미소를 지어보인다.

박승희는 시상식을 마친 뒤 방송과 인터뷰에서 "솔직히 메달 색깔은 상관없다. 올림픽 무대는 오기도 힘든 곳인데 메달을 딴다는 것만으로 기쁘고 행복하다"며 "솔직히 그대로 가면 금메달이었기 때문에 안타깝긴 하지만 많이 안 다치고 골인한게 다행이다. 지금 정말 기분 좋고 행복하다"고 자신의 솔직함 심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스포츠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프로농구 서울SK 김선형(26)이 가장 좋은 예다. 신장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작은 가드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때부터 프로농구 무대에서 덩크를 꽂아넣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곤 했다.

김선형의 이러한 모습은 역시 자신감과 경기를 즐길 줄 아는 마인드다. 이러면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지도자들도 튀는 모습이 팀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버리고 선수들에게 자신있는 플레이를 주문한다. 그가 자신있게 코트를 누빌 수 있는 것은 그에게 많은 배려를 하는 문경은 감독이 뒤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태어나 부모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헝그리 정신'이 없어 예전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오히려 특유의 긍정적인 생각과 쾌활함으로 세계 선수들과 맞서고 있다.

이는 결국 이겨야 하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스포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아직까지 체벌과 편가르기 등 악습이 남아있는 스포츠계이지만 신세대 선수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혹독한 훈련을 오히려 즐기고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을 검증한다.

이에 대해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14일 "메달지상주의에서 벗어난 성숙함이 돋보인다. 젊은 세대들의 자신감 표현"이라며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준비과정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예전과 다른 것은 올림픽 같은 대회에서는 컨트롤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안다는 것이다. 이는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의 긴장감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스포츠로

이처럼 선수들이 그 어떠한 결과에도 승복할 줄 아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신감을 갖고 대회를 즐기면서 그 어떠한 결과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가 요즘 신세대 선수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성봉주 박사는 "사실 올림픽에서 승리자와 패배자는 없다. 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올림픽 같은 무대에서는 모두가 영웅이고 승리자"라며 "이것이 올림픽의 기본 정신이다. 올림픽은 자신의 현재 실력을 검증하는 과정이며 선수들은 이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게 돼 다음 대회를 다시 준비하게 된다"고 말한다.

신세대 선수들의 이같은 변화는 단체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1980년대 급격한 자유화의 물결이 우리 사회에도 밀려왔고 그 과정에서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풍토가 급속하게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선수들 역시 '내가 못하면 국가에 폐를 끼치게 되고 죄를 짓게 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 것이다. 보수적인 스포츠계에 이러한 긍정적인 개인주의가 오히려 늦게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 생활 스포츠 문화 정착·성숙된 생각도 일조

싸이의 '챔피언'은 '진정 즐길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라는 멘트로 노래가 시작된다. 선수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이들을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는 일반인들의 시각도 많이 바뀐 것도 일조했다.

일반인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하고 메달 색깔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역시 '보는 스포츠'에서 '참여하는 스포츠'로 스포츠 문화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영향이 크다.

성 박사는 "일반인들이 직접 체험하는 생활 스포츠가 정착되면서 결과를 중시하기보다 과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국제 무대에 나가는 선수들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가를 이해하게 된 것이 선수들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또 다른 하나는 세계를 향한 '열린 생각'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좋은 경기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에게 환호하는 모습도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또 비록 유니폼과 국기는 다르지만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있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큰 변화다.

안현수(30)가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음에도 일반인들이 성원을 보내고 응원을 하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 조차 못했을 일이다. '국가를 버린 선수', '매국노'라는 얘기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봉주 박사는 "지금은 지구촌이 하나가 된 시대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는 물론이고 선수들도 해외에서 뛰며 자신의 진가를 선보이는 시기가 됐다"며 "박주봉 감독이 일본 대표팀을 지휘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늕다. 중국의 탁구나 배드민턴 선수들이 다른 나라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해외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선수들이 다른 나라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 역시 이젠 낯선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면에는 미디어의 영향도 한몫했다. 언론이나 매체들도 이제는 '메달지상주의'에서 많이 벗어나 과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국가대표'처럼 승리보다는 선수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노력과 과정을 보여주면서 감동을 이끌어내는 스포츠 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이런 매체와 영화가 다시 일반에게 영향을 미치는 학습효과도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한 원인이기도 하다.

tankpark@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