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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고유민 일기, 누가 그를 사지로 내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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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고유민 일기, 누가 그를 사지로 내몰았나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8.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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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스물다섯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자배구 고(故) 고유민(25)을 향한 추모의 목소리가 높아만 간다. 고인이 생전 악의적 댓글과 (성)희롱성 발언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고인은 지난달 31일 오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튿날인 1일 MBC는 고유민이 작성한 일기장을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지난 시즌 말미 포지션을 전환한 뒤 수면제를 먹어야 할 만큼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낀 데다 악성 댓글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유민은 일기장에서 “우선 저를 많이 응원해주고 선수 생활 처음부터 응원해주신 팬 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며 “이 팀에서 열심히 버텨봤지만 있으면 있을수록 자꾸 제가 한심한 선수 같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고유민은 리베로 전향 후 심리적으로 큰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KOVO 제공]

이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전 제 몫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연습도 제대로 안 해본 자리에서...”라며 “주전 연습할 때도 코칭 스텝들이 거의 다했지, 전 거의 밖에 서 있을 때마다 제가 너무 한심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고유민은 “갑자기 들어가야 할 땐 너무 불안하고 자신도 없었다. 같이 (연습을) 해야 서로 상황도 맞고 불안하지 않을 텐데... 저도 불안한데 같이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불안했을까 싶다. 미스하고 나오면 째려보는 스텝도 있었고 무시하는 스텝도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전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혀 충격을 자아낸다.

고유민 지인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고유민의 배구계 선배 중 한 명은 “팀에서 무시당하고 자기 시합 못 하고 오면 대놓고 숙소에서나 연습실에서나 그런 거 당한 게 너무 창피하고 싫다고 말했다”고 했고, 고인의 어머니 역시 “사람을 완전 투명인간 취급한다더라”라며 애달픈 심정을 토로했다.

고유민은 “그러다 보니 수면제 없인 잠도 못 잘 상황까지 됐고 저 자신이 너무 싫었다”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자며 버텼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그가 지난 3월 팀을 이탈한 배경을 알 수 있다.

MBC가 공개한 일기장 내용에 따르면 고유민은 팀 내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처]
고인은 생전 악의적 댓글과 메시지에 시달렸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처]

그는 팀 내에서 느끼는 압박 못잖게 외부적으로도 힘든 나날 속에 있었던 듯하다. 그는 일기장에 “댓글 테러와 다이렉트 메시지(인스타그램 DM) 모두 한 번에 와서 멘탈이 정상이 아니다. 악플을 좀 삼가 달라”고 호소해 보는 이들 마음을 미어지게 한다.

리시브가 좋다는 평가를 받은 고유민은 2019~2020시즌 고예림과 황민경의 백업 윙 스파이커(레프트)로 뛰었다. 주전 리베로 김연견이 2월 초 왼 발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이영주와 함께 잠시 리베로로 전향하는 등 총 25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고유민은 리베로 역할에 큰 부담을 느꼈다. 김연견이 빠진 후 현대건설은 수비 불안 약점을 드러내며 고전했고, 고유민도 전문 리베로가 아닌 탓에 부진했다. 이에 비판이 따랐고 이도희 감독은 이영주를 임시 주전으로 낙점했다.  

이후 그를 웜업존에서도 볼 수 없었고, 인스타그램 계정 역시 비공개로 전환하면서 팬들과 소통 창구를 닫아 소문이 확산됐다. 이후 팀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고, 5월 한국배구연맹(KOVO)으로부터 임의탈퇴 처리됐다. 

그는 5월에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 팬도 아니신 분들이 저한테 어쭙잖은 충고 같은 글 보내지 말아 달라. 그쪽 분들도 저에게 한 몫 했으니 남일 말고 본인 일에 신경 써주길 바란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지속적으로 악의적 메시지에 시달렸음을 짐작케 한다.

고유민(가운데)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배구계 애도 목소리가 높아만 간다. [사진=KOVO 제공]

고유민 자살 소식을 접한 동료 이다영을 비롯해 김연경(이상 흥국생명), 양효진, 황민경(이상 현대건설), 문정원(한국도로공사) 등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했다. 특히 절친으로 알려진 이다영은 “내가 많이 사랑해. 고유민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어”라며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진짜 너무 사랑해”라고 남겼다.

많은 팬들은 정황상 고유민이 악의적 댓글과 메시지로 힘들어 했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또 그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팀 안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고유민의 죽음을 계기로 이제라도 선수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연예 기사처럼 포털사이트 스포츠 섹션 댓글 창을 닫는 등 방안이 대표적이다. 현장에선 “특정 선수를 패배 원흉으로 지목하고 악의적 댓글을 퍼붓는 행태가 선수들을 위축시킨다”고 입을 모은다.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을 향한 욕설도 빈번하다. 특히 최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자배구 선수의 경우 성적인 비하 발언도 많이 듣고 있는 실정이다. V리그 최고스타 중 하나인 이재영(흥국생명)도 지난해 “내가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이건 아니지”라며 자신과 어머니 김경희 씨를 향한 외설적인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던 사실을 알렸고, 이는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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