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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한국 양궁의 최초 사나이' 박경래,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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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한국 양궁의 최초 사나이' 박경래,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 신석주 기자
  • 승인 2014.05.07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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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윈앤윈 박경래 대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력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

[300자 Tip!] 그동안 대부분의 양궁 선수들은 미국이나 일본 제품의 활을 사용했고 국산 브랜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윈앤윈 박경래 대표(58)가 과감히 활 시장에 뛰어들었다. 20여 년 동안 실패와 좌절, 가능성을 맛보며 활 제조업을 이어온 박 대표는 경기용 활 시장 부문에서 윈앤윈을 당당히 세계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성공 노하우와 CEO로서의 철학 등을 듣기 위해 그가 일하고 있는 경기도 안성의 공장으로 찾아갔다.

[스포츠Q 글 신석주·사진 노민규 기자] 올림픽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을 떠올리면 단연 ‘양궁’이 생각난다. 양국은 무조건 ‘금메달’이라는 인식이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잡고 있을 정도로 올림픽에서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활’도 양궁 실력만큼이나 인정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40여 년 동안 양궁발전을 위해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윈앤윈 박경래 대표다.

▲ 박경래 대표는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윈앤윈 기업을 경기용 활 시장 부문에서 세계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박 대표와의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공장을 찾았을 때 활시위를 당기는 한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발렌티나 선수는 콜롬비아 국가대표로 자신의 활을 직접 테스트하기 위해 찾았다고 했다. 그는 테스트할 때마다 ‘굿!’을 외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박경래 대표도 발렌티나 선수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최고의 활을 제공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 최초의 사나이, 최고 전성기를 누리다

세계 양궁시장에서 윈앤윈 기업은 50%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은 성공을 이끌어 낸 데는 ‘한국 양궁의 산증인’인 박경래 대표의 역할이 컸다.

그는 양궁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1975년 한국 최초 정식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됐었고 1984년에는 최초로 남자 대표팀 감독이 됐다. 이후 1985년 세계 선수권대회, 1986년 아시안게임 우승에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남자 단체 금메달을 안겨주며 한국양궁의 위상을 전세계에 떨쳤다. 이어 1990년에는 초대 국가대표 총감독이 됐고 1991년에는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남녀 동반 정상을 차지했다.

그는 지도자를 시작할 때 ‘세계 최고의 코치가 되고 싶다’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박 대표는 “세계적인 코치라는 명제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나 스스로는 양궁의 중심인 미국의 코치진 앞에서 강의한다면 세계적인 코치라고 생각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고 추억했다.

그가 지도자로서 승승장구하자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각지에서 그를 찾기 시작했고 수많은 세미나에 초청됐다. “1990년 미국에서 가진 세미나를 잊을 수 없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코치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정말 기뻤다. 꿈으로만 여겼던 일이 현실에서 직접 일어나니 소름이 확 끼쳤다”고 회상했다.

▲ 박경래 대표는 양궁에서 한국 초대 국가대표 총감독을 역임하는 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한국 양궁의 산증인’이다.

양궁 감독으로서 모든 목표를 다 이룬 박경래 대표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당시 나이가 37살이었다. 너무 일찍 목표를 이룬 탓인지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2년 정도 방황할 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외국산 활이었다. ‘왜 한국에서 만든 활은 없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또 다른 꿈은 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활 제조 시장에 뛰어들다

박경래 대표는 스스로 운 좋은 사나이라고 표현했다. “양궁을 시작해서 하는 일마다 다 잘 됐다. 승승장구하다 보니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평생 활을 잡아온 내가 직접 활을 만들면 더 잘 만들 것이다’는 무모함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1993년 10월 처음 활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재료부터 설계, 공정까지 직접 다 하며 2년 만에 어렵게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처음 활을 생산했지만 불량품이 대량 나오면서 실패를 맛봤다.

그는 실패의 원인에 대해 “어떤 것이 좋은 활이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몰랐다”고 설명했다.

실패를 교훈 삼아 박 대표는 철저히 낮은 자세로 다시 원점에서 출발했다. 우선 전통 활을 만들던 사람들을 데려와 활 만드는 공정 라인을 다시 만들었고 선수출신들과 머리를 맞대며 좋은 활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 콜롬비아 국가대표 발렌티나 선수는 자신에게 맞는 활을 직접 찾기 위해 윈앤윈 안성 공장을 직접 찾아와 테스트를 하고 있다.

◆ 끊임없는 기술 개발, 내가 살아가는 방법

포기하지 않는 연구 개발을 통해 좋은 품질의 활을 생산하기 시작한 윈앤윈은 서서히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 활을 사용하는 선수들도 조금씩 대회에서 성적을 냈다.

윈앤윈의 활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장 점유율도 높아졌다. 당시 활 시장의 점유율은 미국의 호이트가 50%이상을 점유하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인 윈앤윈은 2010년 처음으로 호이트를 앞서기 시작했고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서는 53%,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50%를 기록하며 당당히 세계 넘버원 자리를 꿰찼다.

박 대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모하리 만큼 연구를 거듭했던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유명 회사의 공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져 그들을 뒤 따라가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력인 카본 기술이나 나노 기술 개발을 통해 차별화한 것이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앞으로도 그들을 앞서는 방법은 오직 품질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박경래 대표는 세계 정상을 지키는 길은 오직 품질로 승부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완성품의 뒤틀림 현상을 확인하는 테스트 장면.

◆ 꿈을 향한 열정, 새로운 도전을 멈출 수 없다

양궁을 통해 강한 자신감을 얻은 박경래 대표는 안주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시작한 사업이 ‘자전거’였다.

“지금 활은 ‘메이드 인 코리아’하면 일본, 유럽 시장 등에서는 최고로 가치를 인정해주지만 자전거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특히 특정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서 오랫동안 자리하면서 ‘국산 자전거=저가’라는 선입견이 강해졌다”고 현 자전거 시장을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국내 시장을 점령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것도 국산 명품 브랜드를 표방하면서 말이다. 이 사업은 3년 남짓 이어져 왔으며 그동안 자전거 설계를 위한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제 자전거를 생산하기 시작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활을 개발하고 정상에 서는 데 20년이 걸렸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10년 안에 자전거 시장에서도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브랜드가 명품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건 중 한 가지라도 충족시켜야 한다. 첫 번째는 국가 브랜드다. 하지만 세계 자전거 시장에서 한국을 알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두 번째는 기업 브랜드다. 그러나 이제 시작한 윈앤윈으로 이를 돌파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세 번째 요건인 홍보 전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지만 박 대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광고할 여력이 없다.

▲ 박경래 대표는 “활 시장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인정받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전거 시장에서도 멋지게 성공할 것이다”라고 불굴의 의지를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박 대표가 그토록 자신하는 데는 마지막 요건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승부할 수 있는 것은 기술력뿐이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상대하기 위해 홍보나 브랜드 이미지로 경쟁하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다. 그들을 이길 방법은 더욱 발전되고 정교한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방법뿐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대표는 활에서 사용하던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독자적인 카본 기술력을 자전거에도 적용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윈앤윈’이라는 기업명은 군사적인 용어로 동시다발적인 승리를 뜻한다. 박 대표는 “기업의 이름처럼 앞으로 활 시장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인정받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전거 시장에서도 멋지게 성공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취재후기] 척박한 양궁 시장에서 모두 안 된다고 말할 때 박경래 대표는 묵묵히 자신의 기술력을 믿고 당당히 맞섰다. 지금 윈앤윈 기업은 세계 최고의 활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때문에 박 대표의 말투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기술력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박 대표는 자전거 시장에 도전했다. 그가 자전거 시장에서도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지 기대를 해본다.

chic423@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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