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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스노보드의 미래 정유림이 꿈꾸는 '겁 없는 하이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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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스노보드의 미래 정유림이 꿈꾸는 '겁 없는 하이점프'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6.02.24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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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동메달…척박한 한국 스노보드 환경 속 '제2의 브라이트' 꿈꿔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동계 스포츠 가운데 눈에서 기량을 펼치는 설상 종목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다. 스키와 스노보드 모두 마찬가지다. 남자 스키 크로스컨트리의 김마그너스(18·부산체고)가 동계유스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수확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지난 21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끝난 제2회 동계유스올림픽에서 또 한 명의 설상종목 예비스타가 탄생했다. 김연아(26)의 모교인 군포 수리고에 재학하고 있는 정유림(18)이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비록 황금빛 메달은 아니었지만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라는 종목에서 나온 메달이었기에 정유림의 성과는 더욱 값지고 빛났다. 물론 정유림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멋진 스노보더가 돼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화려하게 날아오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 정유림이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서 열린 동계유스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자신이 따낸 동메달을 물어보이며 기념 인형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대한스키협회 제공]

◆ 언니 정해림과 '스노보드 자매', 하프파이프 에이스로 성장하다

정유림은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개선한 뒤 "유스올림픽 3차 시기 때 실수가 있었다. 그때 랜딩만 제대로 됐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며 "그래도 월드컵 등 최근 대회에서는 많이 넘어졌는데 유스올림픽에서는 최대한 기술을 많이 보여줬다"고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유림이 스노보드를 시작한 것은 스노보드를 취미로 즐기던 아버지를 따라 스키장에 가면서부터다. 그의 언니 정해림(21·갤럭시아SM)과 함께였다.

먼저 선수의 길로 들어선 것도 언니 정해림이었다. 아마추어 대회에 나갔다가 메달을 따면서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정유림에게도 스노보드 선수를 해보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정해림은 평행대회전과 평행회전을 주 종목으로 삼고 있는 스노보드 선배다.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후 언니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정유림은 "언니가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나도 '언니가 요즘 성적이 좋지 않은데 꼭 포디움(시상대)에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종목이 다르다 보니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훈련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성적이 잘 안나왔을 때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 [인천국제공항=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동계유스올림픽에서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종목 동메달 쾌거를 이룬 정유림은 영락없는 10대 여고생이지만 제2의 토라 브라이트가 되겠다는 꿈을 밝히는 열정만큼은 베테랑이다.

◆ 친구가 가장 좋을 어린 나이지만 열정만은 베테랑

2010년 12세 나이로 제91회 동계체전에서 여자 초등부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정유림은 점차 하프파이프 세계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동계체전 여자 고등부에서 동메달을 따낸 정유림은 이번에 유스올림픽 동메달 획득으로 더욱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줬다. 1년에 한두 번씩 취미로 가던 스키장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됐다.

정유림은 "스노보드는 이제 끝까지 함께 해야할 내 인생의 동반자"라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넘어 2022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 중국에서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정유림은 오랜 해외 생활로 한국이 그리웠단다. 미국 유타주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 참가했다가 곧바로 유스올림픽으로 향했다. 정유림은 "한국에 너무 오고 싶었다. 목요일에 대표팀 훈련에 다시 들어가야하는데 제일 가고 싶은 곳은 학교"라며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다. 1년에 8번 정도밖에 학교에 못 간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해외 훈련과 대회를 다니는 자신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슈퍼마켓, 스키장, 헬스장을 반복하는 고충을 몰라준다며 투덜댔다. 친구 이야기를 할 때 표정과 말투는 영락없는 여고생 소녀다.

하지만 스노보드를 향한 말에는 진중함이 묻어났다. 하프파이프는 커다란 파이프를 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의 구조물을 왔다갔다 하며 공중 기술을 선보여 점수를 얻는 종목이다. 대중들에게 아주 생소한 종목이다. 그만큼 여건도 열악하다.

정유림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국내 하프파이프(구조물) 규격이 세계 규격보다 작고 제대로 깎는 기계도 없다. 한국에도 크고 좋은 파이프가 있으면 훈련이 편할 텐데 그렇지 못해 항상 해외에 나가서 훈련을 한다"며 "파이프를 예쁘게 깎아야 타기 편한데 아직 한국 파이프는 다치기도 쉽고 파이프가 작다보니 세계 무대에 가면 적응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정유림(오른쪽)이 유스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올라 있다. 한국계 미국 선수 클로이 김(가운데)가 금메달을, 에밀리 아더(오스트리아)가 은메달을 차지했다. [사진=IOC 공식 홈페이지 캡처]

◆ "클로이 김 부럽지만 언젠가는 넘어설 것…한국의 토라 브라이트 될래요"

그럼에도 정유림의 눈은 높은 곳을 향해 있다. 이번 동계유스올림픽에서 자신을 제치고 우승한 미국의 한국계 차세대 스노보드 스타 클로이 김(16)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정유림은 "클로이 김은 미국에서 대단한 존재다. 2년 전까지는 친근했는데 그 사이 톱클래스 선수가 돼 부럽고 나도 저렇게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떠버려서 이제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며 "하지만 꼭 클로이를 넘어서고 싶다"고 말했다.

정유림은 발전을 위한 장단점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정유림은 "내 장점은 겁이 없는 것이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겁을 많이 먹어서 기술을 늘리기 어려워하는데 나는 '까짓것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술을 자꾸 시도한다"며 "자꾸 잡생각을 하고 집중력을 잃는 것은 단점이다. 경기 중 좋은 기술에 성공했을 때 순간적으로 방심하곤 하는데 집중력을 길러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정유림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주 토라 브라이트 같은 멋진 스노보더를 꿈꾼다. 브라이트는 여자 선수임에도 화려한 기술로 감탄을 자아내는 스타다.

정유림은 "브라이트는 남자 선수들이 하는 멋있는 기술을 선보여 '멋있게 탄다'는 말을 절로 나오게 한다"며 "나도 남들이 하지 않는 기술, 여자들이 하지 않는 기술을 뽐내고 싶다"고 밝혔다.

호주는 문화 자체가 겨울보다 여름에 관심이 많아 동계올림픽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넓게 펼쳐진 평원이 상징적인 국가라 슬로프도 흔치 않고 스노보드 선수층도 두껍지 않다. 그럼에도 브라이트는 올림픽에 출전해 호주 선수 사상 스노보드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제 정유림이 불모지 한국에서 자신의 롤 모델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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