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2 17:12 (목)
[교양] '역사저널 그날'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일본인과 정략결혼, 그 끝은? (예고)
상태바
[교양] '역사저널 그날'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일본인과 정략결혼, 그 끝은? (예고)
  • 박상아 기자
  • 승인 2016.03.19 0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박상아 기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지 2년 만에 고종의 늦둥이로 태어난 덕혜옹주는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될 때까지도 왕실에 입적하지 못했다. 그런 딸을 위해 아버지 고종이 일본 황실 입적을 선택했지만 바로 그것이 덕혜옹주의 비극의 시작이었는데…

20일 오후 10시 3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 3부작 특집인 '왕의 딸, 격랑 속에서' 제3편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편이 방송된다.

덕혜옹주가 태어난 것은 우연히도 고종의 회갑 해인 1912년 5월 25일이었다. 환갑에 가진 고명딸에 대한 고종의 사랑은 각별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간 출입을 삼가야하는 풍습도 무시하며 자주 찾는가 하면, 50일째 되던 날 덕혜옹주의 거처를 함녕전으로 옮기는 등 파격적인 언사를 감행했다. 덕혜옹주는 절망에 빠진 식민지 시대 조선 왕실, 일본 감시 속에 살던 고종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이었던 것이다.

▲ 20일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편이 방송된다. [사진=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그러나 고종은 1919년 덕혜옹주가 8살이 되던 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당시 조선에는 일본이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6년 후,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혹을 씻지 못한 채 강제로 일본에 보내진 덕혜옹주의 삶은 힘겨웠다. 열네 살의 사춘기 소녀에게 아버지를 독살했을지도 모르는 나라에서의 생활은 버겁고 무서웠을 것이다.

게다가 조국을 떠난 지 1년 만에 오빠 순종이 승하하고, 몇 년 후 어머니 양귀인까지 사망하고 만다. 덕혜옹주는 일제의 강요로 어머니의 장례에 상복조차 입지 못했고, 독살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보온병을 들고 다녀야만 했다.

이윽고 1931년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대마도(對馬島)번주(藩主)의 아들인 소다케시(宗武志) 백작과 강제 결혼한다. 왕실의 핏줄인 옹주가 일본인과, 그것도 조선에 조공을 바치던 대마도 섬의 백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조선인들은 분노한다. 한 일간지는 덕혜옹주의 결혼사진에서 남편의 얼굴을 지우기까지 했다.

덕혜옹주는 3년만에 딸을 낳았으나 지병이 계속되었다. 1951년 이혼을 당하고, 딸이 결혼에 실패하여 현해탄에 투신자살한 뒤 병세가 악화됐다. 거기에 그녀를 둘러싼 수상한 소문들에 시달리다 급기야 귀국 직후 5년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과연 덕혜옹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사저널 그날'에서 덕혜옹주의 진실을 탐구해 본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