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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조호성' 가족 앞에서 행복하게 달린 마지막 은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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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조호성' 가족 앞에서 행복하게 달린 마지막 은륜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3 2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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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옴니엄 경기서 막판 역전당해 은메달…27년 현역 마감

[스포츠Q 박상현·인천=민기홍 기자] 20년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당시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했던 선수가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돼 자신의 은퇴 경기를 행복하게 마쳤다. 마지막 국제무대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는 막판에 역전당하면서 이루지 못했지만 은메달로 뜻깊게 장식했다.

한국 사이클의 간판스타 조호성(40·서울시청)은 23일 인천 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남자 옴니엄 경기에서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 40km 포인트레이스에서 하시모토 에이야(일본)에게 역전을 당하면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레이스를 마친 불혹의 레이서 얼굴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27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레이스에서 사랑하는 아내, 두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멋있게 금메달을 따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기 때문이다.

이날 은퇴 경기에는 뮤지컬 배우인 부인 황원경(34)씨와 딸과 아들이 함께 사랑하는 남편이자 가장, 그리고 아빠를 위해 응원을 나왔다. 여덟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은 인천 아시안게임 마스코트 모자를 쓰고 '아빠 I♥You To 조호성'이란 문구를 적은 스케치북과 태극기를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조호성의 처남과 장모도 함께 나서 매형과 사위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봤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조호성(앞)이 23일 인천 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옴니엄 경기에서 힘차게 레이스를 하고 있다.

◆ 20년 넘는 대표 생활 '응답하라 1994'

조호성은 한국 사이클의 에이스다. 학생 때부터 발군이었다. 부천고 재학 중이던 1991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던 그는 아시아주니어사이클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국내에서도 그를 위협할 선수는 거의 없었다. 회장기 사이클 남고 부문에서 3km 개인추발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이어 조호성은 1993년 12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사이클 대표팀에 포함됐다. 11월에 아시아선수권 제외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실력이 급성장한 영향이 컸다.

그리고 그는 고작 20세이던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40km 포인트레이스에서 44점을 따내며 국제 종합대회 첫 금메달을 따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포인트 레이스에서 은메달로 2연패에 실패했지만 팀 추월경기에서 금메달을 합작하며 두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조호성이 23일 인천 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옴니엄 경기에서 2위로 들어온 뒤 아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페달을 돌렸다. 1999년 독일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그는 2000년과 2001년에 이탈리아 월드컵사이클 우승을 차지하며 확고한 에이스가 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40km 포인트 레이스에서 4위에 올라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메달권에 근접한 선수가 됐다.

그에게 2002년이 가장 기억남는 해다.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포인트 레이스와 매디슨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에게 청혼, 2003년 화촉을 밝혔다.

하지만 잠시 사이클을 떠나 경륜을 하기도 했다. 사이클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껴 프로 경륜 세계로 전향하기도 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사이클 종목이 비인기 종목이 된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다시 사이클로 돌아왔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건너 뛴 그는 광저우 대회 팀 추월에서 후배 장선재(30·대한지적공사)와 함께 금메달을 일궈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출전하기도 했다.

이제 어느덧 히로시마 대회 20세의 혈기왕성했던 그는 20년이 흘러 불혹의 라이더가 됐다. 공교롭게도 그의 은퇴 경기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던 40km 포인트레이스였다.

옴니엄 선두를 달리다가 이 경기에서 역전당하는 바람에 금메달 영광을 얻지 못했지만 아시안게임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가 그의 주종목이었던 40km 포인트레이스라는 점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조호성 선수의 아들이 23일 인천 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옴니엄 경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아빠를 응원하고 있다.

◆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조호성, 지도자로 새 출발

조호성이 마지막 은퇴경기로 삼은 종목은 옴니엄이다. 플라잉 1랩과 1km 독주, 4km 개인추발, 15km 스크래치, 제외경기, 40km 포인트레이스까지 단거리와 장거리 6개 종목을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 종합 경기로 사이클의 종합 예술로 불린다.

27년 사이클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그에게 딱 맞는 종목이었다.

경기를 모두 마친 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뜨거운 눈물을 흘린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도 시원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조호성은 "27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히로시마에서 처음 메달을 획득하고 인천에서 마무리했다"며 "힘든 경기였지만 그동안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복잡한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대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조호성이 23일 인천 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옴니엄 경기에서 은메달을 확정짓고 있다. 이날 경기를 끝으로 27년 현역을 마무리한다는 아쉬움이 조호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어 그는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조호성은 "가족들에게 항상 부족했었고 받기만 했다"며 "앞으로 2,3일 정도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음식도 해주고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방해받지 않고 며칠만이라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앞으로 그는 전문 지도자로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가정에게 더욱 충실할 계획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부터 아내는 뮤지컬 배우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내조해왔다. 주위에서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고향인 부천 오정동 인근에서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고 묵묵하게 남편을 지원했다.

아직 그에게 욕심은 남아 있다. 후배 양성에 매진하면서 자신이 이뤄내지 못한 올림픽 메달을 따내고 한국 사이클이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비록 현역 선수라는 사이클에서는 내려왔지만 최고의 지도자라는 새로운 사이클에 올라탔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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