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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역사' 사재혁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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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역사' 사재혁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5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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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서 한국신기록 세우고도 용상 3차시기 실패…다음 목표는 리우 올림픽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이제 모든걸 다시 시작해. 이렇게 여기서 끝낼순 없어. 내겐 아직도 시간이 있어."

1990년대 유행가의 가사처럼 끝남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믿고 있는 선수가 있다. '오뚝이 역사' 사재혁(29·제주특별자치도청)이다.

사재혁은 24일 인천달빛축제정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역도 85kg급 경기에 출전,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렸지만 인상에서 171kg의 한국신기록을 작성하고도 용상에서 세차례 기회를 모두 실패하는 바람에 실격했다.

그에게 '오뚝이 역사'라는 별명은 2008년에 붙었다. 사재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77kg급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수술과 재활이 있었다.

◆ 무릎, 어깨, 손목으로 이어지는 연이은 부상에도 재기

사재혁은 2001년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을 다쳐 처음으로 수술대에 오른 뒤 2003년 왼쪽 어깨 부상으로 두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무릎과 어깨가 좀 나아지려던 2005년에는 오른쪽 손목까지 다쳐 수술을 받았다.

계속된 부상과 재활로 선수생활을 그만두려고 했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반드시 올림픽에 나가 꼭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를 다졌고 결국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이어졌다.

선수 생명의 위기를 딛고 따낸 값진 금메달이었기에 그의 별명은 '불사조', '오뚝이 역사'가 됐다.

그러나 그의 '오뚝이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깨 부상 때문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한 사재혁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통해 역도 2연패를 노렸다.

금메달이 유력하던 그에게 부상이라는 시련은 다시 닥쳐왔다. 인상 1차시기에서 158kg를 거뜬하게 들고 일어서며 상승세를 탔지만 2차시기에 162kg로 늘린 것이 화근이 됐다. 162kg의 바벨을 들면서 기합을 넣었지만 바벨을 뒤로 떨어뜨리면서 오른쪽 팔꿈치가 뒤틀렸다.

인상을 들어올리다가 어려워지만 재빨리 바벨을 놓게 되지만 그의 집념과 투지가 오히려 부상을 불렀다. 마지막 순간까지 바벨을 놓지 않겠다는 집념이 다치지 않기 위한 본능을 넘어섰던 것이다.

다행히 골절상은 아니었지만 팔꿈치가 탈구됐다.

이에 대해 사재혁은 지난 16일 인천 아시안게임 공식 소식지인 아시아드 데일리를 통해 "런던 올림픽 경기 도중 팔꿈치가 탈구된 후 신체적인 회복보다 심리적인 회복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런던 올림픽 이후 항상 절망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차츰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귀국 후 수술대에 오른 사재혁은 역도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으나 이를 접고 지난해 다시 바벨을 잡았고 지난 6월 대표선발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다시 받았다.

◆ 오직 금메달만 바라본 집념의 전략

사재혁은 아시안게임 경기 인상 1차시기에서 165kg을 든 뒤 2차시기에서 171kg를 성공했다. 지난 6월 대표선발전을 겸한 역도선수권에서 자신이 세웠던 기록보다 5kg를 더 든 한국신기록이었다. 사재혁은 3차시기에서 조금 더 무게를 높일까도 생각햿지만 자신감을 갖고 있는 용상에서 만회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기권했다.

인상에서 키아누시 로스타미(이란)에 1kg 뒤진 2위에 오른 사재혁은 용상 1차시기에서 207kg를 신청했다. 그 사이 잠재적인 경쟁자 텐타오(중국)은 인상에서는 163kg에 그쳤지만 용상 1차시기 205kg를 성공시켜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용상 1차시기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재혁은 다시 2차시기에서 207kg를 신청했지만 다시 한번 실패하고 말았다.

마음이 급해진 사재혁은 승부수를 걸었다. 이미 텐타오가 2차시기에서 211kg를 성공시켰다고 실패했기 때문에 3차시기에서 똑같은 무게를 성공시키기만 해도 374kg가 되는 상황이었다. 무게를 더욱 올릴 것이 확실하므로 210kg 이상이 안정권이었다.

그러나 사재혁은 3차시기에서도 210kg를 끝내 들어올리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도 물거품이 됐다. 금메달은 용상 3차시기에서 218kg의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세우고 합계에서도 381kg의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세운 텐타오에게 돌아갔다.

사재혁은 경기가 끝난 뒤 조직위원회와 인터뷰에서 "인상 171kg은 훈련 때도 들어보지 못했던 무게였는데 이를 들고 나서 자신감과 욕심이 생겼다"며 "용상에서는 1차시기에서 210kg를 들고 마지막에 220kg까지 들어보려고 했다. '사재혁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훈련 도중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라며 "올림픽 세 번은 나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2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사재혁의 이런 모습을 보고 혹자는 '정말 징하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투리로 '어지간히도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원래 국어사전에 '징하다'는 뜻은 속이 저릿하도록 울린다는 뜻이다. 지금 사재혁은 팬들의 마음을 징하게 만들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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