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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열전] 잃으려하지 않는 공주님, '펀치' 최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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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열전] 잃으려하지 않는 공주님, '펀치' 최명길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2.17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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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공주는 잠 못들고’의 연속이다.

SBS 월화드라마 ‘펀치’의 윤지숙은 거역할 수 없는 기상이 넘치고, 온화하게 내뱉는 몇 마디 말엔 원칙이 꼿꼿하게 자리하고 있다. 해방 직후 대법관을 지낸 할아버지를 필두로 3대째 10여 명의 판검사를 배출한 법조 명문가의 자제다. 검찰의 자랑이자 개혁의 상징이다. 지검장을 거쳐 법무부장관, 특별검사 등 요직을 전전한다. 이것도 모자라 검사 출신 최초의 국무총리 그리고 대통령까지 꿈꾼다.

“법은 하나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같은 비리로 얼룩진 사회지도층이 사라지는 그 날을 위해 살아가는 그에게 외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한 조작이나 아끼는 후배 검사 하경(김아중)의 목숨을 짓밟는 일탈은 가슴 아프고, 죄책감에 명치끝이 저리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속죄하면 되는 ‘케이스’다.

▲ '펀치'의 최명길[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세욕 하나로 서울지검장, 검찰총장에까지 오른 이태준은 태생적으로 경멸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그와 손을 잡아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호시탐탐 그를 매장할 기회를 노린다.

법과 원칙의 대명사 윤지숙은 ‘펀치’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탐욕스럽고 위험하다. 이태준이나 검사 박정환(김래원)이 생존과 계층상승을 위해 권력의 사냥개가 돼 발버둥을 쳐온 인생을 살았다면, 금줄을 물고 태어나 온실 속 화초처럼 성장, 신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윤지숙에게 권력은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자기 위주로 돌아가게 하는 수단일 따름이다.

자신에겐 관대한 반면 남에겐 엄격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목표를 이뤄갈 줄 모르는 윤지숙은 ‘법의 집행자’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이기적이면서 비민주적인 인물의 표상이다. 이미지만 우아할 뿐이다. 그의 이상을 믿고 따르는 충견 호성(온주완)이 18회에서 “왜 잃을 줄을 모르냐”고 일갈하는 모습은 책임지길 거부하는 윤지숙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장면이다.

베테랑 연기자 최명길(53)은 선악을 오가는, 실체와 이미지의 간극이 넓디넓은 윤지숙을 딱 윤지숙처럼 연기한다. 정적을 제거할 때 드러나는 지독한 냉기와 아들의 구속에 오열하는 절절한 모성에 이르기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특히 법무부장관을 연기할 땐 문화부장관과 야당 당대표를 지낸 남편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때문인지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1981년 MBC 공채 탤런트 13기로 데뷔한 최명길은 단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와 짙은 감성으로 80~90년대 MBC 멜로드라마의 간판 여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영화에서도 위력을 떨쳐 ‘우묵배미의 사랑’ ‘안개기둥’ ‘장미빛 인생’ 등에서 밑바닥 인생부터 상류층 여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낭트영화제, 청룡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중년에 접어들어 배우로서 존재감을 다시금 보여준 작품이 KBS2 대하사극 ‘명성황후’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연기의 달인 조재현과 ‘맞짱’을 뜨면서도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최명길의 가장 큰 장점은 딕션(화술)이다. TV 수상기 볼륨이 작거나 멀리 떨어져 들어도 그의 대사는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꽂힌다. 단순히 발음이 좋은 차원이 아니라 감정과 호흡을 정확하게 실어내는 대사 전달력이야말로 그를 여타의 배우들과 차별화시키는 단단한 무기다. 예나 지금이나.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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