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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기둥뿌리 뽑혀도 다부진 넥센히어로즈, 화성에 숨겨진 비밀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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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기둥뿌리 뽑혀도 다부진 넥센히어로즈, 화성에 숨겨진 비밀 셋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5.02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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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 키워드 셋...1·2군 코칭철학 공유-스펜서·나이트 선진 팜시스템 정착중-자율야구, 선수 질문공세

[200자 Tip!] 40홈런 유격수 강정호, 50홈런 4번타자 박병호, 토종 수위타자 최다안타왕 유한준, 1선발 앤디 밴 헤켄, 불펜 필승조 조상우, 한현희, 손승락까지. 2년 새 기둥뿌리가 모두 뽑힌 넥센 히어로즈다. "꼴찌가 유력하다"는 전문가들의 시즌 예상에도 신재영, 박주현 등 새 얼굴을 발굴하고 채태인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효율적인 운영으로 중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왜, 히어로즈는 무너지지 않는가.

[화성=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지난 2월 KBO가 발표한 소속선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넥센 선수단의 평균 연령은 25.6세로 10개구단 중 가장 젊다. 선수단 전체 평균 연령 27.4세보다 2세, 최고령 1위 한화 이글스의 29.4세보다는 4세 가까이 젊다.

▲ 넥센 히어로즈의 평균 연령은 25.6세로 KBO리그 어느 구단보다 젊다.

재벌 모기업이 없는 야구전문 기업, 주식회사 서울 히어로즈는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선수나 시장에 등장한 거물급 스타를 잡을 여력이 아직은 없다. 그래서 늘 트레이드에 적극적이며 신인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다. 어느 팀보다 육성이 절실하다.

영웅군단의 미래가 자라는 곳은 화성이다. 히어로즈는 2013년 9월 경기도 화성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지역명을 팀의 간판으로 내세웠다. 넥센 2군 화성 히어로즈는 2014 시즌부터 비봉면에 자리한 화성히어로즈베이스볼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화성에서 발견한 육성 키워드 셋은 공유, 소통, 자율이다.

◆ '공유' 하나로 움직이는 1·2군 코칭 철학

1군 사령탑 염경엽 감독은 최근 취재진을 만나면 코치들을 자주 치켜세운다. 신재영, 박주현 등 젊은 피들의 성장에 관한 질문을 받자 “우리는 선수를 키우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계획과 단계를 확실히 거쳐 매뉴얼대로 키우려고 한다”며 “겨울에 코치들이 쉬지도 못했다. 고생이 많다. 코치들 기사를 많이 써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스템과 파트별 코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염경엽 감독의 철학은 화성에도 공유된다. 1,2군은 함께다. 퓨처스팀 필드 코디네이터 쉐인 스펜서 감독과 투수 코디네이터인 브랜든 나이트 코치는 히어로즈가 어떻게 닻을 올린 팀인지, 9개 구단과 왜 다른지, 육성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 스펜서 코디네이터는 "나는 육성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히어로즈에 많은 변화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뉴욕 양키스에서 월드시리즈 3연패(1998~2000년)를 경험했고 2005, 2006년 일본 한신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스펜서 코디네이터,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에서 한국야구를 경험한 나이트 코디네이터는 지난 1월 중순 부임했다. 넥센은 메이저리그식 팜 시스템의 신속한 도입을 위해 총괄코치 개념의 코디네이터 직함을 만들고 둘에게 장기 플랜과 전체적인 구상을 맡겼다. 데럴 마데이 투수 인스트럭터, 아담 도나치 배터리코치도 함께 선임했다.

스펜서 코디네이터는 “나는 그냥 감독이 아니라 육성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왔다. 내가 조명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넥센 히어로즈 전체가 하는 일”이라며 “많은 변화를 주고 싶다. 개선해야 할 상황이 많다. 이미 오프시즌 계획을 만들어 놨다. 사장님, 단장님, 코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개선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공유’의 좋은 예가 바로 볼넷의 감소다. 넥센은 좌우 98m, 중앙 118m의 ‘홈런 공장’ 목동에서 좌우 99m, 센터 122m의 고척 스카이돔으로 안방을 옮겼다. 염경엽 감독과 손혁 코치는 캠프 내내 투수들이 3구 안에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성을 주문했다. 훈련 중 포수가 가운데 앉는 비율을 70%로 늘렸고 이는 팀 볼넷 최소 1위(64개)라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015년 1차지명자인 우완 최원태는 1,2군에서 같은 주문을 받는다. 그는 “피해가지 말라, 자신감 있게 임하라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나이트 코디네이터는 “재능이 어느 정도 있다면 승부는 투쟁심에서 갈린다”며 “싸움닭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 출신의 2군 권도영 매니저 역시 “우리는 코칭 방식, 철학에 합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 히어로즈 투수조의 '보스'로 불렸던 나이트 코디네이터. 그는 '싸움닭 기질'을 강조했다.

◆ '소통', 화성 영웅들은 질문왕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던 김정훈이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 2층으로 올라와 나이트 코디네이터와 20여 분간 대화를 나눈다. “148㎞까지 나오던 최고 구속이 떨어졌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나이트는 “하체를 더 돌려 힘을 받아야 한다”, “어깨가 틀어지고 팔이 늦게 올라오니 팔꿈치에서 나오는 마지막 힘이 없다” 등의 기술적인 조언을 건넨다.

화성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런 장면이다. 김정훈은 “욕심이 난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면 도움이 될 것 같고 힘이 된다”며 “나이트 코치님은 우리 보스였다. 마데이 코치님도 퓨처스리그를 고양 원더스에서 던지는 것을 지켜봤다. 나보다 경험이 많고 한국 야구를 아는 분들이다. 후배들도 나처럼 적극적으로 물어 이 기회를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객관식 답안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인은 대체로 묻는 행위 자체를 어려워한다. 지도자의 권위에 눌리며 자라 온 운동선수는 더욱 그렇다. 화성에는 변화의 바람이 감지된다. 스펜서와 나이트가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며 소통을 중요시 여긴 성과가 3개월이 지나자 나타나고 있다. 둘은 “황덕균, 임동휘, 한승민, 지재옥, 정용준 등이 ‘질문왕’으로 거듭났다”고 귀띔했다.

▲ 통역 이원상 씨(가운데)가 스펜서 코디네이터(오른쪽)와 선수간의 대화를 전달하고 있다. 화성 선수들은 스펜서에게 스스럼 없이 장난을 친다.

스펜서 코디네이터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분명히 묻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런데 대만 스프링캠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이 가까워졌다. 질문을 덜 하는 선수들은 아무래도 대만 캠프를 동행하지 않은 선수들”이라며 “이젠 아주 많이 묻는 선수도 생겼다. 아직 어려서 너무 많은 정보를 주면 혼란스러울까봐 정보의 양을 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통역 이원상, 송한일 씨는 경기 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간의 농담을 전달하느라 바빴다. 다른 통역 신봉철 씨는 "스펜서 코디네이터와 도나치 코치가 독립리그에서 3년간 함께 지냈다고 들었는데 선후배 개념보다는 친구같다"며 "선수들도 스펜서, 도나치와 스스럼 없이 장난을 친다. 지도자와 선수라기 보다는 형, 동생같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 '자율', 프로의 책임감 알아서 몸짱이 되자

넥센의 훈련량이 가장 적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캠프 내내 지옥훈련을 실시하고 시즌 중에 특타를 하는 구단과는 지극히 상반된 행보다. 대신 히어로즈는 더 빠른 타구를 날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전에서 최적의 퍼포먼스를 구현할 휴식 주기가 얼마인지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단체 훈련 시간은 대폭 줄이고 웨이트트레이닝을 강조한다. 많은 것이 자율이다.

지난해 2차 6번으로 입단한 송진우 KBS N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 송우현은 “연습을 조금밖에 안 해 놀랐다. 너무 안 한다는 수준이라 느낄 때도 있었다”며 “대신 짧은 훈련 때 집중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웨이트는 부족하다 느낄 때마다 자율적으로 한다. 몸이 불면 못 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더라. 올해는 타구가 잘 나간다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허정협, 장영석, 지재옥, 강지광. 이들은 스펜서, 나이트 체제로 개편된 이후 "자율의 비중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상무에서 전역한 포수 지재옥은 “스펜서 감독님이 오고 나서 확실히 달라졌다. 주로 우리한테 맡긴다. 예전엔 (코칭스태프에) 기대고 싶은 점이 많았다면 지금은 해결할 상황이 나오면 스스로 헤쳐 나가야하니 생각이 많아졌다”며 “선수 스스로 부족한 것을 찾으라 하는 시스템이다. 일찍 일어나 새벽 웨이트를 하는 선수들도 여럿”이라고 귀띔했다.

강지광 역시 “훈련량이 많지 않다. 스펜서 감독님이 오시고 미국 문화에 대해 알게 됐다. 한국과는 다르다 느낀 점이 많다. 잠재력을 펼치라고 분위기를 조성해주시니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하게 된다”며 “직접적인 압박은 없지만 가치 평가만큼은 냉정하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전했다.

달변가인 강지광은 “많은 휴식과 웨이트 강조, 경기장에서 베스트를 다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우리의 방식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 정답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넥센과 화성의 선수들이 이 방법이 옳다고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될 거다. 우리가 해내야 한다”고 눈을 반짝였다.

▲ 강지광은 "우리가 화성이 방법이 옳다고 증명해야 한다"고 눈을 반짝였다.

◆ 프런트가 강하면 망한다는 건 옛말, 히어로즈는 다르다

프런트가 강하면 팀을 망친다는 건 옛말이 됐다. 현대 야구에서는 현장의 지략과 프런트의 역량이 맞물려야 강팀이 될 수 있다. 사령탑은 떠나지만 팀은 존속한다. 유능한 사장, 단장이 구단의 미래를 그리고 이를 코칭스태프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8년간 넥센은 갖은 풍파를 겪는 가운데 생존력을 키우며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

2014년 1월엔 메이저리그(MLB) 명문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학,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 선수 분석, 평가 노하우에 있어 한국야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김치현 팀장이 지휘하는 전략&국제팀에는 화려한 스펙을 가진 브레인들이 포진하고 있다.

2012년 서건창, 2013년 한현희, 2014년 조상우, 2015년 김하성. A급 강정호와 박병호의 S급 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올해는 박동원, 고종욱의 기량이 만개했고 신재영, 박주현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 임병욱, 박정음, 김택형 등이 다음 주자다. 히어로즈는 싹이 보이는 젊은 자원이면 1군 동행, 대타·대주자 기용 등 기회를 대폭 제공한다.

▲ 고척 스카이돔으로 콜업될 날을 고대하는 화성 선수들. 히어로즈 선수단의 평균 연령은 10개 구단 중 가장 낮다.

공 치고 공 받는 것이 야구라지만 프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프로야구는 체육, 경영학, 공학, 통계학, 심리학의 결정체다. 히어로즈는 이를 가장 잘 이해하고 뚝심으로 전진했고 이젠 어린 선수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원태는 “넥센에 지명됐을 때 아주 기뻤다”며 “개성도 살려주시고 분위기도 최고인 것 같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지간한 야구팬이 아니면 알기 힘든 생소한 이름이 자주 튀어나오는 야구. 홈구장 이동, 주축선수 대거 유출 등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야구. 선수 개개인이 휴식, 웨이트트레이닝, 세이버메트릭스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야구. 어느 팀보다 프런트의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현장과 갈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야구.

신선한 넥센 히어로즈의 야구에 자꾸 눈길이 간다.

[취재 후기] 화성 히어로즈의 퓨처스리그 성적은 6승 14패 1무. 승률 3할, 북부 꼴찌다. 그래도 무섭다. 이유는 서두에 언급했다. 싱싱한 자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 때문이다. 야구에 집중하기 최적인 화성에서 칼을 갈고 있는 이들이 많다. 임동휘, 임태준, 송성문, 김정인, 김해수 등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도 놀라지 마시길.

▲ 1,2군을 자주 오가는 김정훈. 그는 나이트 코디네이터와 자신의 투구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질문은 화성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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