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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014] '제보자' 임순례 감독 "우리 사회의 버팀목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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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014] '제보자' 임순례 감독 "우리 사회의 버팀목은 진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0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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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2일 개봉)가 가을 극장가에 훈풍을 지피고 있다. 4일 하루 18만8016명을 모아 누적 관객수 53만1058를 기록(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제보자’ 팀은 4일 부산국제영화제 무대인사를 진행하는 모든 관마다 매진을 기록했다. 임 감독은 “연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관객 여러분들이 이렇게 객석을 가득 채워주신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귀중한 주말에 저희 '제보자'를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 4일 부산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열린 야외 인사무대에 오른 '제보자'의 유연석 박해일 임순례감독(왼쪽부터)

10년 전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영화화한 ‘제보자’는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인, 양심에 따라 조직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제보자의 이야기다. 두 사람을 통해 언론의 사명과 진실의 가치에 대한 묵직한 물음표를 스크린에 띄운다.

- 이 영화는 보는 방향에 따라 양심을 지키는 제보자, 국익으로 포장한 채 진실을 왜곡한 과학자,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인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 제작자의 생각도 언론에 방점이 찍혔다. 영화는 방송사의 명운이 걸린, 외압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사태의 실체를 밝혀가는 한 PD의 뚝심일 수도, 언론자유 전성시대의 단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언론에 관심이 갔다. 언론의 위상이 추락하고 불신이 팽배해진 요즘 시대에 언론을 이야기하면 관객이 공감할 수 있지 싶었다.

- 여전히 논란인 실화를 소재로 했기에 부담이 컸을 것 같다.

▲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를 지지하는 층이 있고, 논란의 요소가 있는데 그 한 가운데로 뛰어드는 부담이 있었다. 사실만 가지고 영화화를 하면 재미가 없다. 극적인 요소의 비율 조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고, 줄기세포가 대중적 소재가 아닌 점도 난감했다. 진실을 밝히는 PD의 행동이 분명 올바르지만 너무 무겁고 진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상업영화의 틀에서는 단점이 존재하는 내용이라 실화를 픽션과 어떻게 접목할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 그런 우려를 불식시킨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배우들의 연기가 아닐까 싶다. 박해일-유연석-이경영의 연기가 과하지 않고 설득력이 있더라. 또 담담한 톤의 전작들과 달리 스피디한 진행과 다양한 앵글, 일렉트로닉 음악 등 연출의 변화가 새로웠다.

▲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관객이 쉽게 이해하며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았나 싶다. 이유야 어떻든 이번에도 흥행에 실패하면(그의 전작 ‘남쪽으로 튀어’는 83만 관객에 그쳤다) 감독으로서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웃음)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여러모로 고려했다. 앵글, 음악, 편집, 속도감 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서 관객이 최대한 편하게 감상하도록 하자, 했다. 요즘 관객들의 호흡이나 트렌드가 워낙 빨라졌으니까. 이 영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 새로운 연출 스타일에 놀라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 그런 연출방식에 내가 유연하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경력이 있으므로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인다. 후후. 내가 변할 걸 수도 있다.

- 내용이 전문적이고 난해해 연기자와 스태프들이 강도 높은 사전 학습을 진행했다고 들었다.

▲ 영화에 표현되는 것보다 한 두 단계 더 깊이 알아야 표현이 제대로 이뤄지기에 다들 문과 출신임에도 생명공학 관련 수업을 듣고 전문자료를 탐독했다. 고시를 준비하듯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 왜 당신에게 언론이 화두가 된 건가.

▲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구성원이 수긍하는 진실이라는 가치가 있어야 사회가 건강하게 굴러가지 않나. 현재 많은 사람들이 패배주의에 젖어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쳐서 포기하는 상황이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버팀목은 진실이다. 그 역할을 언론이 해줘야 한다. ‘제보자’는 상업영화니까 재밌게 감상한 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운을 안겨주고 싶었다.

- 윤민철 PD 역을 맡은 박해일과는 그의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14년 만의 재회라 화제가 됐다.

▲ 극중 윤민철이 입사 10년차 정도 되는 PD라 나이대가 비슷해 1순위로 생각했다. 신인이었던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성장해 있더라. 그땐 진지하고 성실한 모범생 느낌이었다. 결혼해 아이 아빠가 됐고, 수많은 영화를 찍으며 톱스타가 된 박해일은 집요하고 집중력이 뛰어난, 관객이 신뢰할 만한 배우다. 어느 날 술을 마시다 갑자기 아내와 아이 보는 걸 교체해야 한다며 황망히 자리를 작파하고 떠나더라. 배우를 떠나서 평범한 가장의 삶을 사는 걸 바라보며 좋은 연기를 보여줄 여지가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 배우구나 생각했다. 앞으로의 그의 연기가 기대된다.

- 요즘 ‘대세’인 청춘스타 유연석은 제보자 심민호 연구팀장을 연기했다. 박해일과 유연석은 얼굴에 선악이 공존하는 점이 비슷하다.

▲ 유연석은 동안인데 잘 꾸미면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가 주연했던 독립영화 ‘혜화동’을 아주 잘 봤었다. 잠재력이 있는 친구라고 판단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심민호 얼굴과 잘 매칭됐다. 박해일과 맞짱을 뜰 만큼 에너지가 있어야 했는데 강단 있는 친구더라. 전혀 밀리지 앟고 잘 해냈다. ‘응답하다 1994’ 직후라 좀더 비중 있는 역할을 욕심낼 수도 있었을 텐데 박해일과 공연을 해보고 싶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고 들었다.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소비되는 배우가 아니라 영화판에서 더욱 자리를 잘 잡을 것 같다. 이번에 그 단초가 마련되지 않았을까 싶다.

- 사회의 광기라든가 이장환 박사의 나쁜 면을 좀 더 부각시켰다면 훨씬 더 드라마틱했을 텐데 그러지 않는다.

▲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에피소드나 표현의 여지가 많았으나 일부러 쓰지 않았다. 그러다보면 분노와 냉소라는 우리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를 증폭할 뿐이라고 판단했다.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이어 또 실화 소재 영화다.
▲ '우생순’은 모두가 응원한 실화였고, ‘제보자’는 논란의 실화다. 실화 소재 영화는 잘 됐을 땐 2배의 시너지 효과가 난다. 반면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자꾸 현실을 끌어들이면 파열음이 난다.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 못 쓰면 독이 된다.

-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연출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건 한국사회다. 우리 사회가 난맥상에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해방 이후 일제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이지 않나 싶다. 이승만-김구 시대에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예전부터 김구 선생 소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서 고종 말기 헤이그 밀사파견이라든가 반민특위 등 해방전후사를 관심 있게 공부하고 있다.

- 올해 한국영화계는 역대 최고 흥행작을 배출했고, 전체 관객 수도 비약적으로 확장됐다. 양적인 도약이 두드러지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영화인으로써 가장 큰 고민은 무언가.

▲ 영화는 여전히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매체다. 과거엔 다양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관객이 감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폭이 많이 좁아졌다. 배급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 시장논리란 미명 하에 개봉 후 1주일 만에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내려진다. 제작자에겐 너무나 큰 압박이다. 블록버스터나 자극적 소재의 영화만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다보면 한국영화의 컬러가 좁아진다. 넓힐 수 있는 모든 장치를 동원해서 개선해야 한다.

- 그런 와중에도 한국 독립영화는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져 나오며 흥행에도 좋은 결과를 거두기도 한다. 국내 개봉되는 해외 다양성 영화 가운데도 적은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히트작이 나온다.

▲ 음악 소재의 다양성 영화 ‘비긴 어게인’이 250만 관객을 모으는 걸 보며 혼란스러웠다. 관객이 어떤 지점을 좋아하는지, 목말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다 상업논리로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 임 감독은 왕성한 동물보호 활동으로, 채식주의자로 유명하다. ‘이효리의 멘토’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당신에게 그런 활동은 어떤 의미인가.

▲ 우리 사회는 서로 생각이 다른 이들이 어울려 살아간다. 보수와 진보, 부자와 빈자, 남녀 등 그 다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서로를 인정하며 소통하는 게 아름다운 사회이지 싶다. 범위를 넓혀 지구만 해도 수많은 생명체가 있는데 우린 너무 인간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들과 삶을 나눠야 하는데 인간이 권력자라고 해서 동물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대상으로만 여긴다.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활동하는 것일 뿐이다. 동물을 대신해서.

[취재후기] 인터뷰 내내 스마트한 사람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정갈하고, 생각이 올바른 사람을 만났다. 하긴 그의 영화들이 ‘인간 임순례’를 말해왔다.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생순’ ‘미안해, 고마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날아라 펭귄’ ‘미소’에서 그는 늘 낮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아름답게 소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공존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의 행보가 믿음직스럽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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