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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보자' 박해일 "나를 이끄는 힘은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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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보자' 박해일 "나를 이끄는 힘은 호기심"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0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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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배우 박해일(37)이 이번엔 저널리스트의 옷을 입었다. 10년 전 대한민국 사회를 들썩였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영화화한 ‘제보자’(10월2일 개봉)에서 제보를 받은 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의 진술만을 믿고 사건을 파헤쳐 가는 방송사 시사프로 ‘PD 추적’ 윤민철 PD를 연기했다. 거센 비판 여론과 국가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9월의 마지막 날, 홍대의 한 천장 높은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의 눈은 유달리 반짝이고 있었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촬영했던 영화였다. 가을을 맞아 수확에 나서는 농부의 마음처럼 충만함이 일렁였다.

◆ 진실 규명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사프로 PD 윤민철에 ‘올인’

2001년 그의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인연을 맺었던 임순례 감독의 캐스팅 제안에 반가움과 동시에 기대가 밀려들었다.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기자들을 접해 오면서 언론인에 대한 궁금증이 컸어요. 그 직종은 현실적으로 어떨까 궁금하던 차에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그간 제가 해왔던 인터뷰가 나도 모르는 새 많은 경험이 됐나봐요. 촬영 전 방송사의 모 프로그램을 견학하며 윤민철의 책상과 주변 공기를 느끼는데 도움이 됐어요. 취재 및 인터뷰를 따라다니면서 감을 익혔고. 언론인은 형사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랄까.”

실화를 소재로 한 만큼 과거 이슈가 됐던 뉴스를 찾아봤다. 언론에서 다뤘던 기사들을 탐독하다가 촬영이 보름 정도 지나면서부터 모두 덮었다. ‘오롯이 시나리오 안에서 놀아보자’란 생각에서였다. 그러지 않으면 현장에서 혼란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박해일이 그려낸 저널리스트 윤민철은 결코 히어로가 아니다. 팩트(사실)와 단서들을 모아 아이템을 정하고, 관련 인물들을 취재하며 한조각 한조각 퍼즐 맞추듯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간다. 한계에 부닥쳐 절망하고, 거센 외압에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쫄지’ 않는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핵심으로 한 언론의 가치에 충실하려는 직업인이다. 박해일은 과함이나 모자람 없이 짱짱하게 캐릭터를 그려낸다. “진실과 국익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합니까”라고 외치는 그의 연기를 보노라면 180도 변해버린 시대의 아이러니를 절감하게 된다.

“관객들이 각자 다른 느낌으로, 여러 측면에서 보실 것 같아요. 취향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테고요. 분명 과거의 이슈를 끌어와 영화화한 이유를 생각해보게 될 거예요.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며 언론과 대중의 속성을 생각할 수도 있고, 더 넓은 차원에서 고민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박해일과 호흡을 맞추는 시사교양국장 역 권해효와 팀장 역 권해효는 주거니 받거니 호흡이 빼어나 한 팀처럼 느껴진다. 제보자인 심민호 연구팀장 역을 맡은 새까만 후배 유연석과는 긴장감이 팽배하게 흐른다.

 

“애초에 두 선배와는 트리오 느낌이었어요. 그 팀에 녹아들어서 장단을 맞춰야겠다 싶을 정도로 편안함과 다이내믹함이 있었죠. 셋이 사무실에서 나누는 대사들은 언론인의 느낌, 디테일한 어감이 묻어나요. 민철의 ‘일이 많아서 퇴근도 늦게 합니다’처럼 캐릭터를 말해주는 대사들이 극적인 표현들보다 더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연석이와는 과거 사석에서 안면을 익힌 적이 있었고요. 극중 제보자와 언론인 관계로 만나 연기를 했는데 연석이의 배려심이 좋아서 부담 없이 파이팅하면서 찍었죠.”

◆ “작품 선택 호기심이 좌우”…이달에만 ‘제보자’ ‘나의 독재자’로 관객 만나

10대 청소년 록밴드 리더, 20대의 속물 영어교사, 정의감 넘치는 30대 백수, 40대 영화감독, 70대 시인 등 세대를 넘나드는 캐릭터를 똑 떨어지게 연기했다. 풋풋한 청년에서 섬뜩한 살인 용의자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스펙트럼은 광활하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넘나드는 품새는 가볍다. 임순례 감독은 “능글맞고 여유로우며 집중력이 뛰어나다. 훨씬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여지가 많이 남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작품을 선택할 때 호기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요. 이야기와 인물에 동의가 되고 궁금해지면, 감독이 이 작품을 하려는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 선택을 해왔고요. 다양한 캐릭터는...제 직관을 믿는 편이에요. 한번 선택을 하면 내 선택에 책임을 지려하고요. 하다보면 잘 될 때, 안 될 때도 있어요. 결과의 좋고 나쁨으로부터 초연하는 게 길게 봤을 때 낫다고 여겨요.”

 

모든 작품을 호기심에서 출발하기에 주체가 즐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찾아가는 재미를 중시하는데 카메라는 분명히 이를 포착하는 것 같단다. 어쩔 때 보면 매우 신기할 정도로.

올해 그는 쉼표 없는 행진을 벌이는 듯 보인다. 장률 감독의 ‘경주’에 이어 로맨스 영화 ‘산타 바바라’의 목소리 출연, ‘제보자’에 이어 이달 말 설경구와 호흡을 맞춘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로 관객과 만난다.

“세 감독님을 연달아 만나게 돼 기뻤죠. 감독, 배우들과도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임순례 감독님은 14년 전과 그다지 변하진 않았지만 좀더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지셨더라고요. 사람들을 담담하게 끌어안는 감독이시죠.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있으세요.”

충무로의 기대주로 각광받던 영민한 배우는 이제 관록의 선배들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딱 중간 위치에 존재하게 됐다.

“저의 20대 때와는 또 다르더라고요. 수용하는 폭이 넓고, 솔직하고, 실행에 잘 옮기죠. 시대가 주는 영향도 있겠지만 좀 더 역동적이면서 배우로서 시너지 효과를 낼 기회와 역할이 많아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품 안에서 신구의 조화가 이뤄져야 하므로 후배들의 변화가 반갑죠. 배우라는 게 예민한 감정의 직업이다보니 서로 유연하게 합을 맞추면서 활기찬 팀웍을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돼요.”

 

[취재후기] 복잡한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휴식을 취하는 박해일만의 방법은 산책이다. 집 근처 숲길을 거닐며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재충전을 한다. 최근 ‘경주’로 인해 로카르노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도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동안의 얼굴에 묘하게도 선악이 공존하는, 관객이 신뢰하는 이 배우의 다음 선택은 어디로 이어질까. 알게 모르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연기자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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