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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20억과 바꾼 김연경의 '의리', 그리고 배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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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20억과 바꾼 김연경의 '의리', 그리고 배구인생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5.14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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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을 때 함께 했던 페네르바체와 연장 계약 "터키리그·아시안게임 우승해봐야죠"

[300자 Tip!] 요즘 적지 않은 선수가 해외로 진출한다. 국내에서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데 자신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고 말까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선수로 성공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해외에서 성공하는 선수들이 더욱 대단하고 존경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현재 여자배구에서는 김연경이 성공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그런데 김연경의 성공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의리'다.

[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어려웠을 때 저와 함께 했던 팀을 어떻게 매몰차게 뿌리칠 수 있겠어요. 당장 욕심보다는 의리죠."

김연경(26·페네르바체)이 거액 제의를 뿌리치고 현재 소속팀과 연장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너무나 놀라웠다. 프로라면 자신의 몸값이 우선되는 세상 아닌가. 한 연예인이 "으리(의리)"를 외치는 것이 희화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의리가 드문, 각박한 세상에서 김연경의 선택은 분명 배구팬은 물론 모든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 여자배구의 '에이스' 김연경이 돌아왔다. 김연경은 그야말로 올시즌 터키 여자배구 무대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비록 리그 결승에서 바키프방크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최고 득점상을 받으며 '베스트 공격수'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한 시즌을 누렸다.

하지만 김연경은 쉴 틈이 없다. 오는 8월 그랑프리 대회와 9월 인천 아시안게임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랑프리와 아시안게임 모두 한국에서 한달 간격으로 열리기 때문에 한국 배구의 발전을 위해서 게을리할 수 없다. 시즌을 치르느라 피로가 쌓인 어깨가 정상이 아니지만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터키리그에서 보여줬던 '베스트 공격수'의 면모를 대표팀에서도 보여줄 각오다.

▲ 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김연경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20억으로 추산되는 연봉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김연경은 어려울 때 함께 했던 페네르바체를 택했다.

◆ 쉽지 않은 결정, 가고 싶은 브라질 리그도 뿌리쳤죠

최근 그와 관련해 가장 큰 관심사는 거액 연봉을 뿌리치고 페네르바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리녀'로 불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리그도 있었고 아제르바이잔에다, 터키리그의 상위팀에다, 제의가 많았죠. 많은 금액을 얘기하는 팀도 있었죠. 보도에서는 연봉 20억원이라고 나왔는데 환율로 따지면 그 이상인 것 같아요. 20억, 30억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제가 너무나 힘들 때 도와준 팀이기도 했고 페네르바체도 저를 많이 원했어요. 프로이니까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돈이라는 것은 언제든 열심히 하면 벌 수 있잖아요. 그래서 페네르바체에 은혜를 갚자는 생각을 갖고 남기로 결정했어요."

연봉 20억이라면 지금 밝혀진 연봉의 두 배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현재 김연경이 페네르바체에서 받는 연봉이 12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오랜 소속 분쟁에 도움을 준 페네르바체에 거액 이적료를 안겨주는 방식으로도 은혜를 갚을 수 있지 않았을까.

"페네르바체는 제가 계속 남아줬으면 했어요. 솔직히 돈보다는 다른 리그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터키리그 우승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페네르바체에서 리그 우승을 해봐야죠. 제가 평소 가고 싶어하던 브라질리그 팀에서도 제의가 있었지만 그것도 뿌리쳤어요. 당장 욕심을 내려놓은거죠."

▲ 김연경은 바키프방크와 터키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아쉽게 진 것은 조직력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바키프방크는 터키 대표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데다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팀이어서 선수가 많이 바뀌었던 페네르바체에 비해 조직력이 강했다는 것이 김연경의 설명이다.

김연경은 터키리그의 상위팀에서도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김연경은 그 상위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올시즌 페네르바체보다 높은 순위에 있는 팀은 단 한 팀 뿐이다. 바로 바키프방크다. 김연경의 페네르바체는 모든 팀을 꺾었지만 유독 바키프방크의 벽은 넘지 못했다.

"정규리그를 치르면서 바키프방크와 접전을 많이 벌였죠. 승리를 주고 받기도 했죠. 하지만 결정적인 것에서는 밀리더라구요. 터키리그는 팀당 외국인 선수를 3명까지 둘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터키 선수의 실력에 의해 성적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요. 바키프방크에는 터키 대표선수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오래 전부터 조직력을 갖췄던 팀이에요. 이에 비해 페네르바체는 선수 구성이 바뀌어서 조직력이 바키프방크보다는 떨어졌죠. 거기서 승패가 엇갈렸던 것 같아요."

◆ 처음엔 힘들었던 텃세, 이젠 즐거운 터키 생활

현재 터키 배구리그는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최고의 수준이다. 구단들이 거액을 투자해 좋은 선수들을 많이 데려온다. 선수들 역시 터키리그에서 뛰는 것을 동경한다. 그런 터키리그에서 김연경은 외국인 선수 가운데 톱이다.

김연경은 이제 터키에서 세 시즌을 보냈다. 그것도 페네르바체 한 팀에서만 보냈다. 게다가 페네르바체는 터키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명문이자 인기팀이다. 김연경의 인기는 터키에서도 최고다.

"제가 페네르바체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뛰는 선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팬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줘요. 또 우리나라와 터키는 특별한 관계잖아요. 터키 사람들도 한국 사람 만나면 혈맹이니, 형제국가니 하면서 매우 잘 대해주고요. 터키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저 혼자 지내기 때문에 제가 직접 음식을 해먹고 빨래까지 해야 하는 등 모든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좀 힘들긴 하죠.(웃음)"

그러나 어느 나라에나 처음 가면 '텃세'라는 것이 있다. 선수들은 텃세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연경이 최고 득점상까지 받았다는 것은 더이상 텃세가 없음을 의미한다. 만약 김연경에게 텃세를 부린다면 동료 선수들이 공을 올려주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공격 기회도 잡지 못해 득점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 김연경은 벌써 터키에서 세 시즌을 보냈다. 처음에는 텃세가 심했지만 적극적으로 동료 선수들에게 다가가 이제는 모든 동료들이 신뢰하는 선수가 됐다.

"물론 처음에 텃세가 많았죠. 아시아 선수라고 동료들이 무시하고 잘못을 제게 미루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이다보니 제 스스로가 소심해지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화도 내고 오버액션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팀에 융화가 됐고 동료들도 잘해주기 시작하더라구요. 역시 적응하려면 제 스스로가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유럽에서는 김연경 외에 김사니(33·로코모티브 바쿠)도 뛰고 있다. 아제르바이잔리그 역시 유럽에서는 만만치 않은 리그다. 김사니가 김연경보다 나이가 훨씬 위이지만 유럽 경험은 오히려 김연경이 '선배'다.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시차가 얼마 나지 않아서 자주 연락해요. 그리고 제가 바쿠에서 경기가 있었을 때 사니 언니를 직접 만나기도 했고 사니 언니가 터키 여행을 와서 우리 집에 묵기도 했어요. 사니 언니가 잘 적응이 안된다고 하더군요. 영어를 못하고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해서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얘기를 하라고 조언해줬죠."

◆ 상대팀 감독도 인정, 그래도 웨이트는 아직 부족

김연경은 터키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인정받았다. 2011~2012 시즌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에서 페네르바체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당시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는 CEV컵 우승과 함께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그야말로 '배구 여제'다운 모습이다.

또 김연경은 터키리그에서 바키프방크와 5전 3선승제의 결승전을 치렀다. 분전했지만 김연경의 페네르바체는 1승 3패로 물러났다. 아쉬운 패배였다. 하지만 바키프방크의 지오반니 구에데티 감독은 김연경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시상식이 있었어요. 구에데티 감독이 '페네르바체는 비록 졌지만 너는 최고였다'고 칭찬을 해주더라구요."

▲ 김연경은 현재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있지만 가장 부상없이 보낸 시즌이었다고 밝혔다. 부상이 없었던 것은 웨이트 훈련을 통해 미연에 부상을 방지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김연경은 웨이트에 대해서는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어느 선수와 비교해도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웨이트 트레이닝은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힘이 좋은 선수가 아니라 조금의 힘에 기술을 접목시켜 공격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웨이트를 통해 당장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상 방지를 위해서는 좋다고 봐요. 이번 시즌은 웨이트의 효과를 많이 본 것 같아요. 이번 시즌이 가장 부상이 없던 시즌이었거든요."

◆ 귀국해도 바쁜 나날, 대표팀도 준비해야죠

귀국한 이후 김연경은 더 바빠졌다. 안산 출신으로 아직까지 집이 안산에 있는 그는 귀국하자마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조문을 다녀왔다. 터키리그에서는 직접 리본을 달고 출전하기도 했다.

"단원고가 바로 옆에 있어요. 처음 터키에서 소식을 접했을 때 믿어지지 않았죠. 계속 인터넷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지금 안산 분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논의 중이지만 희생자와 유가족 분들을 위해 뭔가 뜻있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김연경은 아직까지 시차적응도 완전히 되지 않아 피곤하다.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은 계속 밀려들고 아픈 어깨도 이제 치료받아야 한다. 수술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8월에 열리는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 대회와 9월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대표팀에서 또 땀을 흘려야 한다.

▲ 김연경은 8월 그랑프리 대회와 9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다. 김연경은 모두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회인데다 좋은 기량을 갖춘 후배들이 많아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대표팀에 들어가는 것은 늘 기대가 됩니다. 제가 해외에서 뛰니까 우리나라 선수와 호흡을 맞출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어떤 선수가 얼마나 기량이 발전했고 좋아졌는지 보는 것이 흥미로워요. 저와 같은 레프트 포지션에 박정아(21·IBK기업은행)의 기량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포지션 경쟁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를 넘어서는 후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요즘 어린 선수들이 잘한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요."

국내에서 열리는 그랑프리대회에서는 B조에 속해 태국과 독일, 세르비아와 만난다. 태국은 요즘 아시아에서 실력이 급상승한 팀이고 독일과 세르비아 역시 유럽의 강호다.

"세르비아에는 바키프방크에서 뛰고 있는 (요바나) 브라보세비치(26)가 있어요. 또 독일 대표팀 감독이 바로 바키프방크를 이끌고 있는 감독이에요. 흥미로운 매치업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태국의 실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우리 배구 대표팀이 종종 태국에 덜미를 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못하는게 아니라 태국이 너무 좋아졌어요. 태국이 요즘 중국, 일본도 잡아요. 아시아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됐어요."

또 9월에는 아시안게임이 있다. 한국 여자배구는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때 단 한차례 금메달을 따냈다. 중국이나 일본에 번번히 막혀 7차례나 은메달을 거뒀다. 그렇기에 인천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다.

"아무래도 가장 큰 대회는 아시안게임이겠죠. 중국, 일본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겠고 실력이 좋아진 태국에 카자흐스탄도 무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준비만 잘한다면 좋은 결과가 기대됩니다."

김연경은 어려울 때면 항상 초심을 생각한다고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간단한 명제가 그에게는 특별하다. 지금은 192cm의 장신 공격수지만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키가 너무 작아 배구를 포기할뻔도 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면 끝까지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아직 부족해요. 정상에 올랐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예전에 어려웠던 것을 잊지 말자는 생각, 처음과 같은 마음을 갖자는 생각을 늘 가슴 속에 새겨요. 멈추지 않고 끝까지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김연경의 말을 들으면 언제나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성공하게 되어 있다. 터키리그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은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어쩌면 당장의 돈과 욕심이 아닌 의리를 택할 수 있었던 용기였을지도 모르겠다.

▲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에 대해 의리를 발휘했듯이 어려웠을 때 자신에게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라도 대표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말한다.

[취재후기] 김연경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또 다른 선수들은 좀처럼 경험하지 못했던 구단과 분쟁까지 경험했다. 자신의 배구 인생을 걸고 한 지리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영광과 이익만을 위해서였다면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팬들은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김연경은 자신이 어려웠을 때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의리를 발휘해 페네르바체에 남았듯이 김연경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한국 배구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의 배구 인생에 더욱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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