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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덕선의 남편찾기, 메인재료 아닌 양념이어서 더욱 즐거운 이유 (뷰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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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덕선의 남편찾기, 메인재료 아닌 양념이어서 더욱 즐거운 이유 (뷰포인트)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2.0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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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원호성 기자]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는 전 연령층의 시청자들을 골고루 고려해야 하는 공중파 드라마의 한계를 뛰어넘어 특정 세대의 감수성을 중점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케이블 드라마의 문법을 만들어낸 기념비적인 드라마였다. 하지만 앞선 두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기념비적인 업적만큼 큰 단점도 지니고 있었다. 퍼즐처럼 빼곡하게 채워넣은 '남편찾기' 수수께끼가 그것이다.

그에 비해 시작부터 '가족드라마'를 표방한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응답하라 1988'은 그동안 '응답하라' 시리즈가 보여준 약점들을 커버하며 그야말로 일취월장, 괄목상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던 '남편찾기'는 여전하지만, 이 드라마는 확실히 예전 '응답하라' 시리즈와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 '응답하라 1988'은 덕선(혜리 분)의 남편찾기에 대해 정환(류준열 분), 택(박보검 분)과 사진을 찍고 2015년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켜 시청자들을 혼동시킨다. [사진 = tvN '응답하라 1988' 방송화면 캡처]

'응답하라 1988'이 다른 '응답하라' 시리즈와 다른 결정적인 부분은 눈높이다. 앞선 두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주시청자층인 10대와 20대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춰냈다면, '응답하라 1988'은 주시청자층인 10대와 20대에게는 비교적 낯선 1988년을 작품의 배경으로 택하면서 이야기 역시 청춘드라마가 아닌 가족드라마로 변신했다. 그리고 4일 방송된 '응답하라 1988' 9회는 이런 '응답하라 1988'의 장점이 유난히도 두드러진 한 회였다.

'응답하라 1988' 9회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빠질 수 없는 요소인 '남편찾기' 떡밥을 의도적으로 강화시켰다. '응답하라 1988'은 먼저 9회 전반부에서 덕선(혜리 분)이 정환(류준열 분)과 '별이 빛나는 밤에' 20주년 기념 잼콘서트에 가서 사진을 찍는 모습과 2015년 현재 덕선(이미연 분)과 남편(김주혁 분)이 과거 사진을 보며 "아마 이때부터 나 좋아했을 거예요"라며 류준열이 혜리의 남편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이것은 제작진의 교묘한 속임수였다. '응답하라 1988' 9회 후반부에는 택(박보검 분)의 중국 바둑대회 출전을 돕기 위해 같이 중국에 간 혜리가 박보검의 우승 직후 같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넣고, 다시 이미연과 김주혁이 과거 사진을 보는 장면을 반복해 넣음으로써 '남편찾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린다. 1989년 1월 혜리와 사진을 찍은 남자는 박보검과 류준열 두 명이고, 아직 이 두 사람에게 모두 공평하게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남편찾기' 떡밥 강화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88'은 기존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찾기'처럼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앞선 '응답하라' 시리즈가 '남편찾기'를 주제로 내걸고 시대상을 양념처럼 넣었다면, '응답하라 1988'은 1988년 쌍문동 골목길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메인재료로 내걸고 거기에 젊은 시청자들의 구미를 더할 맛있는 양념으로 적당히 '남편찾기'를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4일 방송된 '응답하라 1988'에서 혜리의 남편이 류준열일까, 박보검일까라는 수수께끼보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쌍문동 골목 주민들의 이야기였다. 아직 젊다면 젊은 40대의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진 박보검의 아버지 최무성과 갑자기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된 선우(고경표 분)의 어머니 김선영의 이야기, 그리고 중국 바둑대회에 출전한 박보검을 묵묵히 도와주는 혜리의 배려심이 '남편찾기'보다 더욱 따뜻하게 시청자의 가슴을 직격했다.

▲ '응답하라 1988'은 '남편찾기'보다 사람냄새가 가득한 1980년대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것을 메인으로 내세운다. [사진 = tvN '응답하라 1988' 방송화면 캡처]

'응답하라 1988'은 불과 방송 한 달만에 쉽게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던 전작 '응답하라 1994'의 시청률을 넘어서며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 이는 기존 '응답하라' 시리즈에 충실히 응답해온 젊은 시청자들 뿐 아니라, 1980년대의 풍경을 기억하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중장년층의 시청자들까지 붙잡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케이블 드라마는 공중파 드라마와는 달리 특정 시청자층을 겨냥한 마니악한 드라마들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응답하라 1988'에 이르러서는 케이블 드라마가 공중파 드라마의 단골손님인 '막장'과 '출생의 비밀', '반전' 없이 건강하고 밝은 소재로도 이야기와 캐릭터만 탄탄하다면 얼마든지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이것이 '남편찾기'를 과감히 메인재료가 아닌 양념으로 뺄 수 있었던 '응답하라 1988'의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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