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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널 기다리며' 피범벅으로도 가릴 수 없었던 빈약한 이야기와 엽기적이기만 한 살인마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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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널 기다리며' 피범벅으로도 가릴 수 없었던 빈약한 이야기와 엽기적이기만 한 살인마 캐릭터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3.10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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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연쇄살인범에게 형사반장이던 아버지를 잃은 어린 딸은 15년 동안 살인범의 출소를 기다리며 복수의 칼을 간다. 그리고 살인범이 드디어 출소하자 딸은 자신의 손으로 살인범을 응징할 계획을 세운다.

10일 개봉하는 모홍진 감독의 데뷔작 '널 기다리며'는 잔혹하게 사람을 해치는 연쇄살인범 기범(김성오 문)에게 형사반장이던 아버지가 살해당한 딸 희주(심은경 분)의 잔혹한 복수극을 그린 작품.

김성오는 누가 봐도 명백한 연쇄살인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한 건의 살인사건만 유죄로 인정받아 15년 형을 살고 출소하고, 당시 자신과 근무를 바꿔서 심은경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대영(윤제문 분)은 어떻게든 김성오의 죄들을 밝혀내려고 한다. 그리고 심은경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순진하게 경찰서에 드나들면서 뒤로는 김성오에 대한 잔혹한 복수를 준비한다.

▲ 영화 '널 기다리며'

'널 기다리며'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같은 방식으로 연쇄살인마를 응징하는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널 기다리며'는 복수극이 시작되는 동기도 확실하고, 살인의 과정과 두 주인공 심은경과 김성오의 캐릭터 역시 매우 엽기적이고 강렬하다. 하지만 '널 기다리며'가 '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찬사를 받기 힘든 이유는 명백하다. 이런 류의 복수극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완성도가 미숙하다는 것이다.

심은경은 형사반장이던 아버지가 살해당한 이후 경찰서에서 청소 등 잡일을 하고는 형사들이 십시일반 모아주는 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이후 심은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모자라보이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복수를 위한 철저한 자기 위장이었고, 심은경은 살인범인 김성오에게 그가 벌인 엽기적인 행각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의 숨통을 조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널 기다리며'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전개를 보여준다. 윤제문은 동료를 김성오에게 잃었다는 복수심 하나로 김성오의 출소 이후 계속 그를 감시하고, 김성오의 주변에서 모방범죄가 일어나자 앞뒤 정황은 따지지도 않고 김성오가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느닷없이 김성오와 함께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던 동료 살인마 정민수(오태경 분)의 존재가 등장하고, 심은경 역시 김성오가 한 것과 동일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김성오에게 살인의 의혹을 덧씌운다. 문제는 이렇게 김성오가 범인으로 몰려가는 과정이 아무런 합리적 판단없이 그저 김성오가 살인범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후 심은경이 김성오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벌이는 모방범행들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들은 심은경을 의심할 생각도 못하고, 사건이 벌어진 현장 인근의 CCTV 조차 제대로 파악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심은경은 연약한 20대 여성의 몸으로 혼자서 연쇄살인마 동료인 오태경을 살해해 꽁꽁 묶어 김성오의 침대에 경찰들 몰래 숨겨놓는 괴력을 발휘하기까지 한다. 심은경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그 전개가 전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점에서 이미 '널 기다리며'의 복수극은 설득력을 잃기 시작한다.

이렇게 과학수사의 ABC를 찾아볼 수 없는 허술한 이야기를 덮기 위해 '널 기다리며'는 피범벅의 잔혹한 비주얼을 선보인다. 김성오에게 목을 찔려 사망한 아버지의 시체를 끌어안고 혼자서 생일파티를 하는 어린 '희주'의 모습이나 콧노래를 부르며 시체를 훼손하는 심은경의 모습, 그리고 경찰이 알고 있는 사람 외에도 여섯 명을 더 죽였다며 킬킬거리는 김성오의 모습은 피범벅 캐릭터의 진수를 선보인다.

▲ 영화 '널 기다리며'

하지만 '널 기다리며'의 이야기가 가지는 부실함은 이런 피범벅과 사이코패스 캐릭터로는 도저히 가려지지 않는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관객을 농락하는 치밀한 전개와 두뇌싸움이 필수지만 '널 기다리며'에서는 두뇌싸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복수를 위한 당위성은 있으나 관객을 설득시킬 수 없는 난해한 복수극만이 가득하다.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널 기다리며'는 호불호가 명쾌하게 갈린다. 연쇄살인마 '기범'을 연기한 김성오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살을 빼서 날카로운 연쇄살인마의 캐릭터를 완성시켰고 '아저씨'에서 그가 연기한 것보다도 더 강한 개성의 악역을 연기한다. 여기에 비록 등장은 거의 없지만 살인장면 그 자체는 김성오보다 강렬했던 '정민수'를 연기한 오태경이 뿜어내는 섬뜩한 아우라도 볼만하다.

하지만 부실한 이야기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어버린 심은경을 비롯해 드라마 '시그널'만큼의 개성도 보여주지 못하는 김원해와 정해균의 형사 콤비, 그리고 '응답하라 1988'만큼 웃기지도 않으면서 기이하게 출연분량은 적지 않은 안재홍 등 살인마의 반대편에 서 있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좋은 배우들이 연기했음에도 기이할 정도로 매력이 없다. '널 기다리며'를 연출한 모홍진 감독이 비슷한 스타일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그린 '우리동네'의 각본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래도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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