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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에 전반 2-0 이겼다던 ‘토털사커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 후반 못채우고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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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에 전반 2-0 이겼다던 ‘토털사커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 후반 못채우고 별세
  • 김한석 기자
  • 승인 2016.03.2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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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한석 기자] ‘토털사커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가 폐암 투병 끝에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크루이프재단은 24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임종한 가운데 별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폐암 진단을 받은 뒤 투병 생활에 들어간 네달란드의 축구 영웅 크루이프는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크루이프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나의 긍정적인 자세로 점점 나아지고 있으며 축구에 비유하자면 현재 2-0으로 전반전을 마친 상태다"라고 밝혔다.

▲ 크루이프재단이 24일 홈페이지를 통해 크루이프의 별세를 알렸다. [사진=크루이프재단 페이스북 캡처]

크루이프는 1970년대 토털사커의 창시자인 고 리누스 미셸(2005년 타계) 감독이 이끌던 아약스에서 전원공격 전원수비의 축으로 활약, 당시 유럽 최고의 선수에게 돌아가는 발롱도르를 1971, 1973, 1974년 세 차례 수상했다. 아약스와 바르셀로나, 페예노르트에서 모두 10회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아약스에서 1972년부터 유럽 챔피언스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 3연패의 주역이 됐다.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는 미셸 감독이 지휘하는 네덜란드대표팀에서 ‘토털사커의 마에스트로’로 준우승을 일궈냈다.

1988~1996년 바르셀로나 사령탑을 맡으면서 촘촘한 간격을 유지한채 패스와 점유율로 지배하는 축구패러다임 ‘티키타카’의 틀을 만들어 1991년부터 4년 연속 프리메라리가를 제패, 바르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6년 은퇴한 뒤 아약스 기술고문, 바르셀로나 명예회장을 맡으며 특유의 쓴소리로 바르사와 네덜란드 축구 레전드로서 품격을 지켜왔다.

그러나 애연가로서 흡연은 뒤늦게 후회했다. 경기가 있는 날에도 담배를 피는 꼴초였던 크루이프는 1991년 두 차례 심장 수술을 받은 뒤 담배를 끊었다. 금연 캠페인에 앞장서면서 크루이프는 “축구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담배는 내게서 그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만시지탄의 심경을 밝혔다.

이날 국제축구연맹(FIFA)는 ‘비교불가 축구 스릴러와 작별’이라는 제목의 글로 그를 추모했고 네덜란드축구협회(KNVB), 바르셀로나 등 주요 국제축구단체와 클럽, 언론들이 긴급뉴스와 특집기사로 현대축구의 창조적인 혁명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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