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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캡틴' 차미네이터의 마지막 미션, 뜨거웠던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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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캡틴' 차미네이터의 마지막 미션, 뜨거웠던 42분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3.31 2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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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전 주장 완장차고 마지막 A매치…14년 A매치 76경기, 대표팀 공식 은퇴

[상암=스포츠Q 박상현 기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을 알아주셔서 마지막에 행복하게 대표팀 유니폼을 벗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앞으로 러시아 월드컵 예선전을 치러야 하고 후배들도 계속 열심히 경기를 뛰어야 합니다. 잘할 때는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시고 못하더라도 더 큰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축구 선수로 대표팀을 그만둘 수 있게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A매치를 치르고 하프타임에 공식 은퇴식을 가진 '차미네이터' 차두리(35·FC 서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떨렸다.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뉴질랜드와 하나은행 초청 축구국가대표팀 친성경기를 통해 자신의 마지막인 76번째 A매치를 가진 차두리는 자신의 말대로 그 순간 가장 행복한 선수였다.

차두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차범근(62) 전 수원 삼성 감독의 아들이다. 큰 아들이자 누나 차하나 씨에 이은 둘째로 태어나서 이름이 '두리'다. 이 때문에 14년 전인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대표팀에 발탁돼 A매치 데뷔전을 치를 당시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선수"라는 편견의 시선이 있었다. 이도 무리가 아닌 것이 차두리는 한일 월드컵 4강 주역 가운데 유일한 대학 재학(고려대) 선수였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뉴질랜드와 평가전 하프타임에 열린 은퇴식에서 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그러나 차두리는 14년 뒤 가장 큰 환호성과 박수를 받으며 대표팀을 떠나는 레전드가 됐다. 2001년 11월 8일 세네갈과 가진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차두리는 13년 143일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뛰며 이운재(42) 올림픽 대표팀 골키퍼 코치, 이동국(36·전북 현대), 김남일(38·교토 상가),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 황선홍(47) 포항 감독에 이어 역대 6번째로 최장기간 대표팀에서 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이 됐다.

더 이상 그는 차범근 감독의 아들인 차두리가 아닌, 당당한 축구 레전드 차두리였다.

◆ 주장 완장을 찬 차두리, 활발한 움직임으로 오른쪽 측면 지배

차두리는 예정대로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했다. 지난 1월 호주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전을 끝으로 A매치 출전경력 75경기에서 끝날 것 같았던 차두리는 자신의 대표팀 경기 출전 회수를 76경기로 늘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은 차두리였다. 경기 전 전광판을 통해 소개되는 출전 선수 명단에서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선수는 역시 차두리였다. 손흥민(23·바이어 레버쿠젠)과 기성용(26·스완지 시티)의 이름이 나올 때도 환호가 나왔지만 가장 큰 함성은 차두리 소개에서 나왔다.

함께 출전한 기성용은 차두리에게 주장 완장을 기꺼이 양보했다. 또 손흥민은 자신의 축구화에 '두리형 고마워'을 새겼다. '두리 삼촌'을 위한 조카 손흥민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왼쪽)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 전반 42분 교체로 나가면서 기성용에게 주장 완장을 돌려준 뒤 포옹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킥오프로 시작한 전반전에서 가장 먼저 공을 잡은 선수는 역시 차두리였다. 한 차례 볼 터치를 한 뒤 가슴 트래핑으로 전방으로 패스를 찔러주며 공격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온 한교원(25·전북 현대)과 호흡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만 뉴질랜드의 탄탄한 수비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해 결정적인 기회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차두리는 후배들의 공격 때마다 뒤에서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때로는 머리를 감싸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을 격려하며 박수를 쳤다.

전반 20분 손흥민의 왼쪽 코너킥 때 김주영(27·상하이 상강)의 방아찧기 헤딩슛이 나왔다. 공은 골문 왼쪽으로 살짝 벗어났고 차두리를 아쉬운 마음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전반 22분에도 박주호(28·마인츠)가 크로스를 올리려할 때 코너킥을 얻어냈다.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 중앙 수비수 김영권(25·광저우 에버그란데)에게 얘기를 하며 효과적인 공략법을 지시하기도 헀다. 계속된 공격 실패 속에서도 차두리는 후배들에게 괜찮다고 격려하며 박수를 쳤다. 기성용의 헤딩슛이 빗나갔을 때도 그의 박수는 계속 이어졌다.

◆ 두 차례 결정적인 득점 기회 무산, 차두리에 바치는 헌정 세리머니가 없었다

차두리는 후배들을 독려하는 차원을 벗어나 스스로 열심히 뛰었다. 그는 전반 42분 김창수(30·가시와 레이솔)와 교체돼 물러날 때까지 38차례 볼터치를 하면서 4.5km를 뛰었다. 순간 최고 스피드는 시속 30.6km로 전성기에 비하면 다소 느렸지만 30대 중반의 나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직까지 전성기였다. 주위에서는 "저렇게 잘 뛰는 선수가 왜 대표팀 은퇴를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더욱 큰 탄식은 전반 37분과 39분에 나왔다. 기성용의 롱패스가 결정적인 킬패스가 되면서 한교원까지 이어졌다. 한교원은 뉴질랜드 골키퍼 스테판 마리노비치에게 걸려 넘어졌다. 주심은 곧바로 후슬을 불며 페널티킥 지점을 찍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손흥민이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 전반 페널티킥을 차려 하고 있다. 그의 축구화에 새겨진 '두리형 고마워'는 이날 대표팀 선수에서 은퇴하는 차두리를 향한 것이다.

키커는 손흥민이었다. 관중석에서는 페널티킥을 차두리가 차야한다며 연호하기도 했지만 이미 페널티킥 전담은 손흥민으로 정해져 있었다. 손흥민은 입술을 꽉 물고 차두리 삼촌에게 바치는 골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슛이 너무 골키퍼 쪽으로 향했다. 조금 더 골문 왼쪽 구석으로 향해야 했다.

손흥민은 자신의 페널티킥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전반 39분 단독 돌파에 이은 기회를 만들었고 지동원(24·아우크스부르크)의 그림과 같은 다이빙 헤딩슛이 나왔지만 끝내 뉴질랜드의 골문을 열리지 않았다.

전반 42분이 되자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은 김창수를 터치라인에 세우고 교체를 지시했다. 차두리가 빠져나가는 순간 모든 관중들이 기립했다. 그라운드에 있는 한국 선수는 물론이고 비가 흩날리는 상황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인 상대팀 뉴질랜드 선수들도 함께 박수를 치며 차두리를 환송했다. 차두리는 기성용에게 주장 완장을 다시 물려줬고 주심과 악수를 나눴다. 조카 손흥민을 비롯해 교체되어 들어가는 김창수와 포옹했다.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와 자신의 A매치를 정말로 끝낸 차두리는 관중들을 향해 머리 숙여 인사했고 곧바로 슈틸리케 감독과 포옹했다. 차두리는 코칭스태프와 벤치에 남아있는 모든 선수와 일일이 포옹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은퇴식을 위한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위해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차두리의 뒷모습을 보며 "차두리와 여러 경기를 뛰었지만 오늘 뒷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뉴질랜드와 평가전 하프타임에 진행된 은퇴식에서 자신의 경기 모습이 담긴 은퇴 헌정 영상이 방영되는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 차미네이터의 눈물, 그도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전반이 끝난 뒤 터미네이터의 웅장한 배경음악이 나오면서 차두리의 공식 은퇴식이 시작됐다. 대표팀 모든 선수와 슈틸리케 감독, 코칭스태프가 입장 통로를 따라 배열했고 그 사이를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가 황금색으로 치장된 특별한 유니폼을 입은 차두리가 걸어나왔다. 차두리의 유니폼 가슴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뛴 세네갈전 날짜부터 마지막 경기를 치른 뉴질랜드전 날짜 2015년 3월 31일까지 새겨져 있었다.

차두리는 자신의 헌정 영상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세네갈과 경기를 통해 처음 A매치에 출전한 14년전 자신의 대학생 모습부터 이탈리아와 한일 월드컵 16강전의 오버헤드킥 모습, 그리고 지난 1월 우즈베키스탄과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 후반 단독 돌파로 손흥민의 골을 돕는 장면까지 나왔다. 골을 넣고 그라운드에 누워있는 손흥민을 위에서 얼굴을 감싸는 차두리의 사진에서 모든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절정을 이렀다.

그는 오른쪽의 지배자였다. 공교롭게도 A매치 76경기를 치르면서 공격수로 38경기, 오른쪽 풀백으로 38경기씩 뛰었다. 그런 그도,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차두리도 눈물을 흘렸다. 손바닥으로 눈을 감싸며 감격에 젖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A매치 기록이 담긴 공로패를 선사하고 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 악마의 기념 액자가 증정됐다. 기념 액자에는 1000여명의 팬들의 사진으로 만든 '차두리 고마워 모자이크 사진이 들어있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왼쪽)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뉴질랜드와 평가전 하프타임에 진행된 은퇴식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고 있다.

이윽고 아버지 차범근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축하와 격려를 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들어선 차 감독을 보고 차두리는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악수를 하고 포옹한 뒤 한동안 아버지의 왼쪽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떨어질줄 몰랐다. 사나이의 진한 눈물과 흐느낌이었다.

마지막 인사말을 전한 차두리는 그라운드를 한바퀴 돌았다. 장내 아나운서는 "차미네이터는 누구, 한국 축구의 레전드는 누구"라며 외치며 차두리의 이름을 유도했다. 차두리가 E석을 돌 때는 '차두리 고마워' 대형 통천이 펼쳐졌다. 팬들은 '차미네이터 4년만 더 뛰면 안되나요'라는 피켓을 들고 떠나가는 그의 모습을 아쉬워했다.

그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는 아들의 모습에 마음이 졸여 좀처럼 경기장을 찾지 않았던 어머니 오은미 씨도 아들의 은퇴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아들의 은퇴 경기를 조용하게 지켜보고 싶다며 인터뷰나 기자와 개인적인 만남을 극구 사양했다"며 "경기장을 찾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아들의 은퇴경기다보니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반에 골이 들어가지 않아 후배들이 '특급 비밀'로 숨겨놨던 축하 세리머니는 없었지만 차두리는 하프타임 15분 동안 3만3514명 관중 앞에서 진행한 은퇴식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였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뉴질랜드와 평가전 하프타임에 진행된 은퇴식에서 아버지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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