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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유애자(上) 해설 겸 감독관의 '화수분' 배구사랑, 그 열정과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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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유애자(上) 해설 겸 감독관의 '화수분' 배구사랑, 그 열정과 자부심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4.23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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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여자배구 인기가 절정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더 애석하게 느껴졌을 법한 2019~2020시즌이었다. ‘여제’ 김연경(32·엑자시바시)은 물론 V리그 인기를 ‘쌍끌이’ 하고 있는 이재영-이다영(24·이상 흥국생명) 쌍둥이 자매, ‘얼짱’ 배구선수로 꼽히는 고예림(26·현대건설)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이돌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 앞서 언급한 선수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인기를 실감 중인 한 중년 ‘배구돌’이 있다. 바로 유애자(58)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위원 겸 대한민국배구협회 홍보부위원장이다. 올드 배구 팬들에게는 1980년대를 풍미한 국가대표 미들 블로커(센터), 근래 배구를 접하기 시작한 이들에게는 프로배구의 여성 경기감독관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페네르바체(터키) 시절 김연경 경기와 지난 1월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등을 중계했던 해설위원이며, 현재 리그와 대표팀을 막론하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유애자 위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예상대로 화끈하고 시원한 입담을 과시했고, 그와 대화 속에서 배구가 어떻게 동계스포츠의 강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유애자 위원이 왜 아직도 큰 사랑을 받으며 이따금씩 화제의 중심에 서는지 그 배경을 파악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유 위원의 한국배구 사랑과 그 자부심을 스포츠Q(큐)와 함께 파헤쳐보자.

유애자 위원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 특별한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

◆ 해설위원도 함께 뛴다? 그 특별한 사명감

- ‘해설위원 유애자’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서브에이스!’ 등 어록이 많다. 비단 해설할 때만 그런 게 아니라 대표팀 기자회견을 관장할 때도 진정 선수들을 위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기본적으로 응원의 마음이 담겼다. 중계를 하다보면 ‘서브에이스’하고 외쳐줄 때 실제로 더 많은 서브에이스가 나오는 것을 느낀다.”

“기술적인 분석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많이 호명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팬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려 노력한다. 선수들이 고마워하더라. 내 장점은 선수들 단점도 장점으로 보듬어주고, 잘한 것은 더 부각한다는 점이다. 다른 이들이면 ‘크로스로 잘 때렸다’고 표현했을 걸 ‘코트에 말뚝을 박는다’ 같은 강한 표현으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고자 했다. 내가 원하는 건 팬들과 선수들이 그런 방식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처음 스포티비(SPOTV)에서 터키리그를 중계하게 됐을 때 당시 (김연경의 소속팀) 페네르바체는 리그 4강을 장담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바키프방크, 엑자시바시가 너무 강했다. 힘든 상황이었기에 한국에서 김연경에게 힘을 불어넣고 싶었다. 내가 해설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게 바로 멘트다. 내 멘트에 시청자들을 끌어들여 ‘응원 모드’로 만들고자 했다.”

“내가 아무리 기술적인 디테일을 설명하더라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캐스터와 해설의 ‘케미’는 물론 쉽고 재밌게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김연경과 항상 이야기를 나눴다. ‘너는 거기서 최선을 다해. 한국에서는 내가 최선을 다할게’하고.”

- 김연경과 궁합이 그렇게 좋다더라.

“중계하면서 김연경과 궁합이 좋다. 2016~2017시즌 페네르바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리그에서 우승하더라. (김)연경이가 크리스마스 휴식기에 국내에 들어오면서 ‘위원님 터키컵도 중계해주세요’하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스포티비에 ‘연경이가 자신 있다더라’하며 중계권을 사자고 제안했고, 스포티비가 중계권을 산 그해 페네르바체는 터키컵도 정상에 섰다. 챔피언스리그는 시간대가 너무 늦다보니 녹화중계로 진행됐는데, ‘생중계로 가자’고 했고, 스포티비에서 받아들여주기도 했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경기할 때마다 (해설이) 늘었다. 내가 김연경 경기를 중계했을 때 진 건 손에 꼽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MBN에서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해설을 맡게 되자 주변에서 ‘위원님이 마이크 잡으면 이긴다’는 응원을 받기도 했다.”

유애자 위원이 해설로 마이크를 잡았던 지난 1월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우승했고, 시청률도 소위 대박이 났다. [사진=유애자 본인 제공]

- MBN에서 마이크를 잡는 게 결정된 날 거실에 ‘대한민국 올림픽 본선 진출 확정, 대박 시청률’이라고 써 붙여놨다고 들었다.

“MBN에 ‘(내가 해설을 하게 됐으니) 이겼다. 우리 애들 우승 하겠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람들에게도 시청률 대박날 것이라 자신했는데, 실제로 대박 났다. 시청률 1%가 넘으면 프로야구를 넘는 수치인데, 5%를 넘겼다. 열심히 했는데 좋은 결과로도 이어져 기뻤다.”

- 이번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남자배구 대표팀 경기는 TV 중계되지 않았다.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나섰고, 또 정말 잘 싸웠기에 더 아쉽다.

“여자배구 중계를 준비하면서 사실 내 것(여자배구)만 생각했었다. 그동안 태릉이나 진천선수촌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면 남자배구가 소외될 때가 많았다. 최종예선 전 진천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취재진이 모두 여자배구 대표팀에 몰려 기자들에게 ‘남자배구도 잘 챙겨달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협회에 남자배구 중계권 관련 상황을 물어본 뒤 스포티비에 연락해 ‘남자배구 중계권을 살 생각이 없느냐’ 물었더니 ‘너무 늦었다’고 하더라. 국제대회 중계권이란 게 누군가 발로 뛰지 않는 한 절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배구인 누구라도 노력했어야 했다.”

“어떤 조직에서든 너무 나서면 ‘나선다’, ‘설레발을 친다’며 욕하고, 앞장서는 사람을 좋게 보진 않는다. 스포티비에서 여자배구를 맡았을 때도 남자배구 (국제대회) 중계권을 사달라고 이야기해 샀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너무 늦어 못 샀다. 남자 대표팀 경기력이 참 좋았다. 정말 잘했다. 중계를 내보냈으면 그 기운을 받아 이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다.”

- 대표팀이 더 많은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게 된 배경에도 유 위원의 몫이 있다고.

“2017년에 협회 유소년상임이사로 들어갔다. 그때는 대표팀이 주어진 포인트 대회 외에 국제대회를 많이 나가지 않았다. 내가 선수로 뛰던 때는 국제대회가 절반이었다. 선수들이 국제대회를 경험할 기회가 없더라. 살림이 어렵다보니 대회 접수를 못했다. 그래서 배구 인기가 없었다고도 생각한다. 회장님께 ‘그랑프리대회 접수 안하시면 이미 접수했다고 언론에 터뜨리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국제배구연맹(FIVB) 네이션스리그에 출전하게 된 계기였다. 남들은 몰라도 정말 보람을 느낀 순간이다.”

배구판에 돌아온 유애자 해설위원 겸 한국배구연맹 운영위원은 그야말로 '열일' 행보 중이다.

◆ 여자배구 ‘중년돌’, 감독관으로 돌아온 배구판

- V리그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경기감독관이다.  

“출근하면 개인적인 매뉴얼대로 경기장 구석구석을 돌면서 체크하는 데 인사를 건네는 팬들이 많다. ‘직관(직접 관전)’ 오는 팬들하고는 항상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김연경 출입국 인터뷰 때나 국가대표 관련 현장에서 늘 ‘위원님’하며 이름도 불러주고 박수 쳐주고 또 협조해주고 하니 팬들과 독특한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 유튜브에 내가 감독관으로서 일하는 동영상도 있어 놀랐다. 정말 감사하다. 일하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 어떻게 열심히 안 할 수 있겠나.”

“해설위원 시절 멘트를 흉내 내시는 분들이 많아 재밌다. 처음 경기감독관으로 투입됐을 때 ‘서브에이스’, ‘나이스 블록’하고 외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요새는 ‘확인 결과’, ‘판독 불가’를 많이 외쳐주신다. 관중이 많거나 중요한 경기에서는 더 힘차게 외치려 노력한다. 팬들이 프로배구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 철두철미한 편이라 같이 일하기 까다로울 것 같다.

“처음 왔을 때는 안전에 가장 신경 썼다. 잘 모르시겠지만 A보드도 위험한 요소가 제법 많았다. 담당자 입장에선 까탈스럽다고 생각했겠지만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책임을 다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다영 등 다치는 선수들이 나오기도 했다. 관철될 때까지 이야기했고, 결국 위험요소가 상당히 제거된 형태로 바뀌었다. 코트 안 갖가지 위험요소도 체크한다. 굴러다니는 물병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감독관이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체육관에서는 코트 매니저, 장비 매니저, 음향 팀 할 것 없이 모두 ‘원팀’이다. 그 중에서 음향에 신경을 많이 쓴다. 연맹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이기도 하고 경기장 안이 적정 데시벨 이하로 유지되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노력 덕에 소리가 많이 좋아졌다. 너무 시끄러우면 선수들이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음향 팀에 수신호로 데시벨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 비디오 판독 결과를 발표할 때 핀 마이크 덕에 방송에는 목소리가 나가지만, 장내에는 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어 늘 루틴대로 마이크를 세팅하는 게 첫 번째다.”

-은퇴 후 28년간 태권도장을 운영하다 다시 배구 판에 돌아왔다. 대화를 나눠보니 예전의 열정을 되찾는 중인 것 같다는 인상이 짙다.

“다른 데 에너지를 쏟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하는 일마다 잘 됐고, 원하는 대로 되다보니 기쁘다. KOVO 유소년위원을 4년 정도 했다. 이번 시즌 감독관에게 매 경기 페어플레이 포인트를 매기는 임무가 추가됐다. 페어플레이상을 받은 IBK기업은행이 상금을 유소년 사업에 기부했는데 내가 다 뿌듯하더라. 매 경기 정말 신중하게 매겼던 포인트가 쌓여 그런 결과로 이어졌다니 너무 보람찼다.”

유애자(가운데) 위원은 직캠 영상도 있을 만큼 V리그 '스타' 경기감독관이다. [사진=KOVO 제공]

- 박미희, 이도희 등 선수시절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 감독이 됐다. 감독들이 거세게 항의할 때도 제법 있는데.

“이게 내 직업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감독이 팀을 위해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수들 사기를 위해 일부러 액션을 취할 때도 있다. 나는 사실 해설위원으로서도 감독관으로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이렇게 어느 팬들 사이에서는 조명받기도 하는 게 신기하고 참 감사하다. 선수 시절 느꼈던 걸 다시 느끼는 것 같아 좋다.”

- 다음 시즌까지는 당분간 휴식하는 건가.

“최근에는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관련 화상회의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8년째 스페셜올림픽 쪽에서 일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할애한다. 지적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뛰는 ‘통합배구’란 종목이 있다. 한국이 스페셜올림픽에서 2연패를 했다. 통합배구 사업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발품을 팔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이 이런 일에 나서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명한 선수가 힘써주면 환경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여자국가대표은퇴선수회 총무를 30년째 하고 있는데 이도희, 박미희, 김경희(이재영·다영 어머니), 류연수(이다현 어머니)는 물론 후배들에게도 원 포인트 레슨을 부탁하기도 한다. 김연경도 물질적인 후원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른 종목에 지는 것은 싫다.” 

- 인터뷰를 하자고 했을 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무엇일까.

“현재 프로배구 인기를 만든 선수들만큼이나 뒤에서 숨은 노력을 쏟아내고 있는 일꾼들도 칭찬받았으면 한다. 예전에는 감독관으로서 지시사항이 많아 부담스러워 했지만 이제는 정말 구성원 모두가 100% 완벽히 갖춰놓고 나를 부른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원팀으로 하나의 경기를 이끌어간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시켜서 하는 게 아닌 모름지기 그래야하기 때문에 만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변화와 노력을 알아줬으면 한다. 모든 구성원이 든든하게 잘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프로배구가 잘되고 있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선수들도 신나게 100%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 본 기사는 [SQ인터뷰] 유애자(下) 원조 '미녀스타'가 보는 여자배구 인기-올림픽 전망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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