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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유애자(下) 원조 '미녀스타'가 보는 여자배구 인기-올림픽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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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유애자(下) 원조 '미녀스타'가 보는 여자배구 인기-올림픽 전망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4.24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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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V리그 스타 경기감독관인 유애자(58)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위원 겸 대한민국배구협회 홍보부위원장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원조 미녀 배구스타다. 1980년대 실업팀 한일합섬과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서 미들 블로커(센터)로 맹위를 떨쳤다.

최근 여자배구 상승세가 매섭다. 배구 해설위원이자 경기감독관이기 앞서 선배로서 여자배구 제1전성기를 누렸던 유애자 위원이 바라보는 현재 여자배구 인기요인은 뭘까. 또 당대와 현재의 차이를 논하는 일은 올드 팬들에게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협회에서 대표팀의 미디어 접촉에 관여하며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유애자 위원과 함께 내년 도쿄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짚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 본 기사는 [SQ인터뷰] 유애자(上) 해설 겸 감독관의 '화수분' 배구사랑, 그 열정과 자부심에서 이어집니다.

왕년의 배구스타 유애자 위원은 이제 경기감독관으로 또 해설위원으로 다른 결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 거침없던 성공가도, 여자배구 원조 미녀스타

- 핸드볼 선수 제의를 거절하고 배구를 택했다. 배구계 입장에선 고마운 선택 아닐까.

“어렸을 때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중학교 3학년 때 173㎝였고, 현재 180㎝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 트랙과 높이뛰기를 겸해 전국대회 3위까지 한 적 있기는 하나 중학교 때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키가 크다보니 선생님들이 핸드볼 팀 가입을 권유했는데, 당시 핸드볼은 밖에서 운동하기도 해 ‘안 하겠다’며 3년을 버텼다. 공부도 상위권이었고, 임원도 줄곧 맡았기 때문에 딱히 운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연합고사에 체력장 점수가 포함되던 시기다. 서문여고에서 체력장 만점을 받았다. 당시 배구명문 서문여고 감독님께서 배구를 시켜보자 해서, 체육시간에 배운 토스를 보여줬는데 일단 신장이 크다보니 좋게 봤다.” 

“당시 경복여상 배구 팀이 창단했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이적료 60만 원에 넘겼다더라. 창단멤버가 돼 기초부터 배웠다. 고1 때 배구를 시작했으니 늦은 셈이다. 당시에는 많이 때리고 억압해 연애도 쉽게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친구들이 말리기도 했다. 그때는 여자 키가 큰 게 단점으로 비쳐지던 시절이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우리 팀에서 가장 늦게까지 운동한 건 나였다.”

“창단 팀이라 선배가 없다보니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됐다. 우리 아이들(프로골퍼 박시현-박성호)을 운동시킨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운동할 때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지원이 좋았다. 우리 숙소, 식단이 미도파 등 실업 팀보다도 좋을 정도였다.”

- 배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태극마크도 달고, 한일합섬 에이스로 활약했다.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도 목에 걸었다.

“배구 시작 3년 만에 주니어대표가 됐고, 실업팀 한일합섬에 가게 됐다. 입단 당시 선배가 많지 않아 그 때도 동기들 위주로 팀이 구성됐으니 운동을 하면 할수록 재미를 느꼈다. 운이 좋았다.”

“데뷔 시즌 주전은 아니었지만 가끔 투입되면 해설위원님들께서 ‘유애자’하며 이름을 많이 불러주셨다. 그 기운을 받은 덕인지 대표팀에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미도파와 현대건설이 양대 산맥이고 한일합섬은 만년 3인자였던 때다. 요새는 순위에 상관없이 골고루 선발하지만 예전에는 상위권 팀이 아니면 발탁되기 어려웠고, 대표팀에 한 번 입성하면 10년씩은 했다.”

오른쪽 사진은 한일합섬 시절 유애자 위원. 왼쪽 사진은 1986 서울 아시안게임 동메달 멤버의 단체사진. 윗 줄 가운데가 유애자 위원이고, 아랫줄 왼쪽 두 번째가 이재영·다영 쌍둥이 어머니인 김경희 씨다. [사진=유애자 본인 제공]

- 당시 센터는 지금과 결이 달랐다. 현재와 비교하자면.

“당시에는 미들 블로커가 주 공격수였다. 나도 공격랭킹 1위를 많이 했다. 미도파는 박미희, 현대건설은 김정순, 한일합섬에서는 내가 주포였다. 속공과 이동공격, 개인 시간차가 주 공격루트였던 때다. 대표팀에서도 많은 기회를 얻었다. 좋은 선수가 많았고, 늦게 시작했음에도 운이 많이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센터가 후위로 오면 리베로와 바꿔주지 않나. 당시에는 센터가 수비까지 했다. 수비는 무릎에 큰 영향을 끼친다. 현재는 수비 부담이 줄어 센터가 롱런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신장이 좋은 유망주들에게 세터나 센터를 추천한다.” 

- 당대 인기가 엄청났다던데.

“매일 구단에 전화도 많이 오고 팬레터가 50~80개씩 날아왔다. 당시에는 감독님들이 행여나 선수들이 연애할까봐 뜯어보던 때다. 그나마 우리 팀은 매일 오는 편지를 모아서 따로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해줬다. 팬들이 역삼동 숙소로 찾아오는 일도 빈번했다. 우리 팀은 '2강'을 위협할 수 있던 유일한 팀이었고, 인기도 제법 많았다.” 

- 은퇴는 언제, 어떻게 하게 됐나.

“스물일곱 때 오한남 현 대한민국배구협회장이 감독이던 시절,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팀 주장을 맡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선배들이 모두 빠지면서 대표팀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그때 나도 은퇴를 생각했다. 남편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를 놓치면 키 큰 여자가 서른 넘어 결혼하기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팀에서는 반대했다. 오한남 감독님이 2년만 더 뛰어달라고 했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운동할 정도였다. 팀에서 ‘결혼하고 쉬다 와라. 기다려주겠다’고 했는데, (박)시현이가 생겨 복귀가 미뤄졌다. 팀에서는 계속 월급을 챙겨주면서 복귀를 종용했지만 바로 둘째가 생겼다. 그렇게 3년이 지났고 한일합섬이 재정적으로 흔들리면서 은퇴하게 됐다. 어쨌든 팀 간판으로서 수고했다는 의미로 잘 챙겨줘 고마웠다.”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유애자 위원.

◆ 여자배구, 왜 잘나갈까? 유애자의 시선

- 요즘 여자배구 왜 잘될까.

“선수들이 실력과 외모를 겸비했다. 팬들이 좋아할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우선 실력이 없으면 안 된다. 실력 있는 선수들이 자기표현도 할 줄 아니까 각자 팬 층을 형성하는 것 아니겠나. 현장 가면 ‘위원님, 저 OO 팬이에요’하는 분들도 많다.”

“야구보다 배구가 참 콤팩트한 종목이다. 이야깃거리도 많지 않나. 캐스터들도 배구에 욕심을 많이 낸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보람을 갖고 재밌게 해서 좋다. 기자들도 재밌어서 일하는 게 느껴진다. 최고 인기를 맞고 있고, 더 올라갈 여지가 충분하다.”

- 이번에 여자부 샐러리캡(팀 연봉 총액 상한)이 인상됐다. 인기와 상승세를 감안하면 합당한 대우 아닌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옵션을 공개했으니 사실 기존 연봉 규모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소진율이 줄어 우려되는 부분도 있긴 하다. 하지만 시장 입장에서 보면 좋아진 게 분명하다.” 

“예전에 실업 팀 10개 체제였을 때는 팀당 선수가 20명이 넘었다. 현재는 현대건설도 14명을 채우기 쉽지 않을 만큼 선수풀이 적다. 팀별 2~3명이라도 더 많아야 프로 아래 레벨도 더 활성화 될 것이다. 지난해 KOVO컵에 외국 팀이 아닌 실업 팀을 초청했을 때 느낀 점이 많다. KOVO는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근래 좋은 신인들도 많이 나왔다.

“이다현이나 정지윤(이상 현대건설), 박현주 이주아(이상 흥국생명), 박은진(KGC인삼공사) 등은 정말 잘해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다. 세대교체가 되면서 자연스레 대표팀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다현이는 코트에 잠깐 들어오더라도 임팩트를 남길 줄 안다. 외모도 좋고, 키도 크니 스타성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대표 경기를 관장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 홍보부에서 일하고 있는 유애자 위원은 누구보다 가까이서 '라바리니호'와 김연경을 지켜봤다.

- 김연경도 언젠가 V리그로 복귀할 텐데.

“올해 올림픽 진출권 따냈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김연경도 언젠가 국내에 돌아올 테니 구단들도 계획을 세울 것이다. V리그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된다. 선수든, 감독으로든 이슈메이커가 될 것이다.”

- 며느리 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선수는 없나.

“이다영 같은 친구는 며느리 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이재영 못잖게 (이)다영이도 실력이 많이 올라왔다. 세리머니며 애교며 팬들이 좋아할만한 요소에서 많이 노력해주니 고맙다. 배구란 종목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신사적인 스포츠다보니 나를 표현하는 데 있어 보수적이다. 튀지 않으려 하는 게 몸에 배다 보니 내성적인 선수들이 많다. 쉽지 않은 일이라 더 고맙다.” 

“패러다임을 바꾼 게 바로 김연경이었다. 서브하러 가면서 관중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배짱을 갖췄다. 운동 잘하는 선수들은 이런 쇼맨십과 팬서비스 정신도 필요하다. (이)재영이도 액션이 과하진 않다. (이)다영이가 보여주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그런 친구에게 박수 보내줘야 한다.”

- 이제 대표팀 이야기를 해보자. 라바리니 감독과 계약 연장을 논의 중이다. 라바리니 감독 부임 후 대표팀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결과가 좋지 않나. 선수들은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변화가 나타난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역량을 발현할 수 있다. 라바리니 감독은 가지고 있는 걸 십분 활용하는 지도자다. 젊은 선수를 기용하는 것도 그렇다. 올림픽 최종예선 준결승 대만전에서 김연경이 부상을 참고 뛰겠다고 했지만 말렸다. 중요한 경기였고, 1세트도 내주면서 위험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치가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줬다.”

“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100% 나올 게 120%, 150%까지 나올 수 있다. 라바리니 감독을 지켜보니 그런 면에서 선수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어려워하지 않는 게 보인다. 운동할 때는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쉴 틈 없이 운동한다. 하지만 연습이 끝나면 바로 서로를 친구처럼 대한다. 김연경이나 이재영이나 김희진이나 감독하고 친구처럼 장난치고는 한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어색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서로 신뢰를 쌓는 방법 중 하나다. 최종예선 때 선수들이 많이 아팠다. 물론 올림픽 진출 목표도 있었지만 스태프에 대한 믿음이 컸다. 부상 관리하면서 함께 가겠다고 하니 선수들도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됐다. 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사진=FIVB 제공]

- 올림픽 연기는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미뤄지지 않았다면 못해도 동메달까지는 가능할 거라 자신한다. 일본에서 한다는 이점도 있다. 1년 미뤄졌으니 준비할 시간이 더 길어졌다. 라바리니 감독의 배구를 이해하고 습득할 시간이 더 길어져 유리하다고도 볼 수 있다.”

- 김연경은 여전히 최고지만 매년 기량에 하락이 올 수 있는 나이라는 분석도 따른다.

“김연경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할 선수다. 김연경-이재영 윙 스파이커(레프트) 라인은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이다영도 자신을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감독을 만나 성장했다. 염혜선도 마찬가지고, 양효진도 정말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인다.”

- 이재영이 있어 김연경이 대표팀을 떠난 뒤에도 괜찮을까.

“김연경은 코트에서 뛰지 않아도 대표팀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다.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리베로를 시켜도 40세까지 대표팀에서 뛸 수 있을 만한 선수다. 체력이 떨어지면 원 포인트로 들어가더라도 팀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다.”

“이재영은 김연경 다음으로 공수 모든 면에서 독보적이다. 허리 쓰는 것 보면 스스로 습득한 결과물이다. 크로스를 바라보면서 직선으로 때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타고난 감각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선수 출신 부모에게 물려받은 근육 역시 타고났다.” 

- 여자배구 올림픽 조 편성이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림픽 메달 가능할까.

“조 편성 좋다. 그래서 메달 획득 전망이 밝다. 해설 욕심이 나는 이유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내가 김연경 경기를 중계했을 때 진 경기를 찾기 쉽지 않다.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때 중계하지 못했던 게 참 아쉬웠다. 그래서 다른 방면으로 보필하고자 노력한 것도 있다. 최종예선 전에 (김)연경이한테 ‘내가 중계하니 우승이지?’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유애자 위원은 물심양면으로 여자배구판과 국가대표팀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의 바람대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올림픽(동메달) 이후 45년 만의 메달 획득이 가능할까. 또 그는 그때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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